일제강점기의 한국 문단에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작가 몇 명을 꼽으라면 톨스토이와 함께 안톤 체호프를 빼놓을 수 없다. 이효석은 1940년 <문장>지 2월호에 게재한 「가마의 십년」이란 글에서 “가장 많이 읽은 것은 체호프의 단편집”이었다고 고백했으며, 문학 활동 초기에 러시아 작가의 작품을 직접 번역하기도 했던 현진건도 “체홉의 영향을 받은 건 사실”(이상룡, <체홉과 현진건의 담론: 주제 구성의 미학>성곡논총 29-1, 1998, p. 482)임이 분명하다 하겠다.

이같이 한국의 현대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준 체호프는 거의 동시대 러시아 사실주의 작가인 도스토엡스키나 톨스토이처럼  심오한 철학적 사색을 펼친 작가는 아니라 할지라도, 인간의 내밀한 심리를 사실적 인물을 통하여 문학적으로 형상화하는 데 성공한 작가임에는 분명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체호프는 희곡 작가로도 많이 알려져 있지만, 그의 소설 역시 여간 감동을 주는 게 아니다. 대표 단편 소설 중, 「귀여운 여인」은 사랑의 힘이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인간 내부에서 생성되는 것임을 잘 보여 주는 작품이라 한다면, 또 다른 수작인 「우수」는 고독한 인간의 진면목을 언어의 발신과 수신 관계를 통해 보여 준 작품이라 하겠다. 「우수」는 겨울의 거리 풍경과 말이 끄는 썰매 옆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외로운 마부의 서술로 시작한다.

“내 슬픔을 누구에게 하소연하리......?”
황혼. 크고 축축한 눈송이는 너울너울 춤추면서, 방금 불이 켜진 가로등 옆을 지나, 지붕이며 말 잔등이며 어깨며 모자 위로 떨어져서는 얄팍하고 포근한 층을 이룬다. 마부 요나 포타포프는 유령처럼 새하얗다. 그는 살아 있는 육체가 굽힐 수 있는 데까지 최대한도로 몸을 굽히고 마부대에 앉은 채 꼼짝달싹 않고 있다. (중략) 그의 말 역시 새하얗고 움직일 줄 모른다. (중략) 그들은 점심 전에 숙소에서 나왔지만 여태껏 개시를 못했다.” (안톤 체호프, 김학수 옮김, 『체호프 단편선』 문예출판사, 2004, p.237)

여기까지 읽다 보면 「메밀꽃 필 무렵」의 하얀 메밀밭과 상실감의 분위기, 「운수 좋은 날」의 가족의 죽음과 대화의 단절 등이 떠오를 것이다.

어쨌거나 「우수」의 주인공 마부 요나는 오랜만에 손님을 맞이한다. 그런데 그 손님은 전혀 남에 대한 배려가 없는 무례한 군인이다. 무슨 마부가 말을 제대로 몰지 못하느냐고 불평을 쏟아내는 군인에게 요나는 자기 아들이 이번 주일에 죽었다고 고백한다. 잠시 이야기를 들어 주는 척하던 군인은 이렇게 천천히 가다간 언제 목적지에 당도하겠느냐고 핀잔을 주고는, 더 이상 마부의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은지 슬그머니 눈을 감고 자는 척한다.

하얀 눈은 계속 내리고, 요나는 다음 손님으로 난쟁이 꼽추와 세 명의 청년들을 태운다. 이들은 좁은 공간에서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가려고 서로에게 욕설을 퍼붓기도 하는데 이들의 말이 끊어진 틈을 타서 요나는 입을 연다.

“이번 주일에…… 제 아들놈이 죽었습니다!”
그러자 그들 중 하나가 이렇게 말한다.
“사람은 모두 죽게 마련이야.......” 
꼽추는 기침을 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자, 달려, 달려! 이렇게 천천히 간다면 난 도저히 참질 못하겠어!” (p. 242)

이 장면에 나오는 대화는 그냥 흘려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상징성과 함축성은 우리들의 일상적인 삶의 진면목을 드러내고 있다. 흔히 내게 상처가 된 것을 타인에게 말했을 때 타인의 반응은 내가 발화한 내용에 상응하지 않을 때가 많다.

아픔을 토로했을 때 “그건 누구나 다 당하는 일인데 왜 혼자만 당한 것처럼 굴지?”,  “나는 그보다 더한 경우도 당해봤어. 네가 당한 건 아무 것도 아냐.”라는 반응을 대한 적 없는가? 나는 많았다. 그럴 때마다 차라리 고민을 토해내지 말걸, 그렇게 후회하다가 슬픔은 발화되기 전보다 더욱 단단한 고질적인 외로움으로 웅크리게 된다. 역으로 남이 내게 자신의 슬픔을 들려 주었을 때 나도 같은 식으로 그에게서 돌아선다. 그래서 우리는 외롭다. 그런 의미에서 이 몇 줄의 대화는 예사로 넘어가서는 안 되는, 생의 진리를 내포한 보물과 같은 문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손님들에게 슬픔을 전달할 수 없었던 요나는 일을 마친 후 말을 매어 둔 마구간으로 간다. 그는 말에게 이렇게 말해 본다.

“……갑자기 새끼 말이 어딘지 먼 곳으로 가버렸단 말이다……. 그런데도 넌 슬프지 않니?”

말은 주인의 말을 알아들은 것처럼 주인의 손에 입김을 불어넣어 주면서 주인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그러자 요나는 점차 흥분한 어조로 자초지종을 말에게 이야기한다.

기가 막힌 끝 장면이다. 아들을 잃은 마부의 말을 들어 준 존재가 사람이 아닌 짐승이었다는 것. 이는 다름 아닌 사람과 사람 사이의 단절을 의미한다. 이 고독의 끝장에서 짐승과 대화를 함으로써 막힘을 풀어나가는 이 저돌적인 힘. 나는 그래서 체호프를 좋아한다. 사람보다 짐승을 대상으로 택한 요나의 말도 안 되는 대화 방식. 이 고독한 대화 방식이 사랑스럽다. 인생은 이렇게 고독한 상처에서 사랑을 꽃피우기에 눈물조차 아름답다. 이는 「귀여운 여인」에서 모든 사람이 손가락질해도 대상이 사랑을 받을 만해서가 아니라 자기 속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의 힘을 어디엔가 쏟아 붓지 않으면 살맛이 안 나서 사랑을 쏟아 붓는 그 여인이 갖는 끈질긴 생명력과도 일맥상통한다고 하겠다.

가을이 되었다. 고독이 당도했으니 헤매는 사랑들, 헤매는 언어들에게 눈길을 한 번쯤 주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싶다. 대화가 막혔다면 차라리 입김으로 화답하면 어떨까. 입김으로 변해 버린 언어들,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지 내 안에 숨어든 고독을 풀어 함께 헤맬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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