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릴리 마을 공동체에서 운영하는 쉼터

사람은 좀처럼 안 바뀝니다. 예수를 오래 믿어도 예수 믿기 전의 못된 성품과 인격이 잘 안 바뀝니다. 어느 원로 목사님의 탄식처럼, "예수를 믿어도 지 생긴 대로 믿는다"가 맞는 것 같습니다. 예수 믿어도 기질적 특성은 잘 안 바뀌는 것 같습니다. 예수 믿기 전에 세상의 지위와 명예와 권위를 좇던 사람은 예수 믿고 나서도 교회 안에서 지위와 명예와 권위를 좇습니다. 장로, 권사, 총회장이 인생 최대의 목표가 되고, 자신의 권위가 조금이라도 손상을 입고 무시당하면 불같이 화를 냅니다. 예수 믿어도 잘 삐지는 사람은 여전히 잘 삐지고, 인정머리 없던 사람은 예수 믿어도 크게 인정머리가 생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잘 안 바뀐다"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전적으로 옳은 말도 아닙니다.

사람은 바뀝니다. 변합니다. 절대로 그렇습니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만나면 바뀝니다. 인생관이 바뀌고, 가치관이 바뀌고, 나아가 인격과 성품도 바뀝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산전수전 겪으며 깎이고 다듬어질수록 신앙의 깊이와 넓이도 달라집니다.

제게도 지난 생애 동안 최소한 세 번의 대전환점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마지막 한 번은 정말 '죽었습니다'. 육체적 생명이 끊어진 게 아니라 다른 의미에서 말입니다.

마흔 셋 되던 해, 어부동 갈릴리마을 공동체에 대전에서 한 목회자께서 방문하셔서, 함께 호숫가로 산책 가는 길에 제게 조심스럽게 물으셨습니다. "저~ 최간사님, 지금도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 그 노래를 가사 그대로의 마음으로 부르십니까?"

만약 한 달 전에 그분이 오셔서 같은 질문을 했다면 제 눈이 휘둥그레져서 "그럼요. 여전히 그렇지요" 하고 대답했을 터인데, 그날 그 자리에서 그 질문을 받았을 때 저는 그분을 바라보며 씨익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닙니다. 지금 저는 그렇게 노래하지 않습니다. 물론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 그렇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지만 저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님, 저기 저 하늘에서 희미하게 깜빡깜빡하는 저 별빛 만큼이라도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자 그분이 제 손을 꼭 잡으면서 따스한 얼굴로 말씀하셨습니다. "참 다행입니다."

네, 저는 그분 말씀의 의미를 알고 있었습니다. 바로 한 달 전부터 주님께서 저를 다듬고 계셨습니다. '완벽주의자'가 예수 믿고 나서 얼마나 무섭고 가혹한 사람일 수 있는지요. 예수님은 그런 저를 혹독하게 다루시고 깨트리셨습니다. 옳은 것, 거룩한 것, 정의로운 것, 경건한 것을 통해서 가장 잔인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한 달 동안 깨닫게 하셨습니다. 내 전공인 회개와 겸손조차  '바리새인'의 무서운 교만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어쨌든 그 한 달 동안이 제게는 영적인 대전환점이었습니다. 적어도 그 전의 저와 그 후의 저는 완전히 다른 사람입니다. 몇 번의 그런 전환점이 있었고, 그 때마다 조금씩 저는 변화되었고 성장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이젠 제법 성숙했습니다" 라고 소리칠 순 없습니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이 얼마나 먼지 너무도 잘 압니다. 아직도 얼마나 자주 넘어지고, 죄의 유혹 앞에서 얼마나 자주 고꾸라지는지! 아직도 저는 먼저 손내밀지 못하고, 먼저 화해를 청하지 못하는 쫌생이입니다. 그러나 이런 저를 예전엔 미워했지만 지금은 사랑하고 존중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나를 불쌍히 여기고 긍휼하게 여기며 위로하고 격려하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그러니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이나 <오늘 나는>과 같은 노래를 여전히 불러도 그 당시의 마음과 지금의 마음은 전혀 다릅니다.

사람은 잘 안 바뀌지만, 언제라도 바뀔 수 있는 게 또 사람입니다. 그러니 누군가를 평가하고 비판할 때, 과거 일을 가지고 판단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입니다. 심지어 10년, 20년 전의 일을 가지고 지금의 그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자칫하면 큰 죄가 될 수 있습니다. 남 이야기를 할 때 이 사실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조심 또 조심할 일입니다.

사람은 좀처럼 안 바뀌는 존재인데 저를 조금씩 다듬어 주신 예수님을 찬양하고, 늘 감사드립니다. 하루 아침에 성자가 되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지만 지금은 그런 망상을 품지 않습니다. 그런 정신 나간 소리 안합니다. 제가 한때 너무 거룩하니까 제 곁에 있던 사람들이 다들 힘들어 했습니다. 제가 예수님 닮겠다고 낮고 낮은 노예가 되어 사무실 청소 다 하고, 쓰레기통 다 비우고, 하루 세 끼 설거지 다 하고, 화장실 청소 다 하겠다고 나서니까 제 주위 사람들이 다 불행해졌습니다. 동역자들이 안절부절못하고 초긴장 상태가 되었습니다. 청교도주의자가 되어 청빈, 검소하게 사니까 아내가 너무 힘들어 했습니다. 남편 못 따라가는 자신을 탓하며 우울증에 걸렸습니다. 입만 열면 성경구절, 입만 열면 예수 제자 타령을 하니 퇴로를 차단당한 아내가 숨막힌다고 했습니다. 나는 나대로 그 거룩함과 경건함이 의로움이 되어, 그렇게 안 사는 사람들을 비판하고 정죄하는 무서운 죄를 짓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하루 한 끼 설거지합니다. 요령도 피우고 안하기도 합니다. 때때로 스태프들 데리고 나가서 비싼 음식도 사 먹고 별로 경건해 보이지 않는 영화도 같이 봅니다. 예전엔 "나를 따르라!"였는데 요즘은 보폭을 가까운 사람들에게 맞출 수 있게 되었습니다. 조용히 기도하며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게 거룩하고 경건하고 정의롭게 사는 것보다 훨씬 가치 있는 일이라는 걸 배웠습니다.

예전에 경건한 최간사를 흠모하던 이들이 저를 보면 시험에 들 지경인데, 지금의 제가 너무 좋습니다. 한심하기 짝이 없었던 제자들을 한없이 기다리고 기다리셨던 주님! 배반할 것을 다 아시면서도, 또 기어이 스승을 배반한 뒤에도 그 제자들을 찾아가 멱살잡고 호통치지 아니하시고 조용히 아침밥상을 차리시곤 "얘들아, 와서 먹어라" 하셨던 주님! 그 주님을 닮아가고 싶습니다. 그거면 됐습니다.

* 편집자 주 :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을 지은 최용덕 선교사가 운영하는 웹페이지 '해와달 갈릴리 마을'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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