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평생을 의사로 봉직하신 분이 일 년에 몇 주일은 우리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다. 신앙생활의 연륜은 그리 오래지 않았다. 비록 뒤늦은 신앙생활이었지만 성경을 열심히 읽고 설교를 꼼꼼히 적어가며 신앙을 탄탄하게 키워갔다. 어느 해인가 추수감사주일 예배를 함께 드렸다. 마침,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살전 5:16-18)가 설교 본문이었다. 예배가 끝나고 친교 시간이 되었을 때 그분은 좋은 말씀 잘 들었다며 감사를 표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있네요. 목사님은 국어학을 가르치신 교수이시잖아요. 오늘 설교 본문의 ‘범사에 감사하라.’는 ‘만사에 감사하라.’로 번역해야 더 좋을 것 같아요. 영어로도 ‘In everything give thanks.’이니까요.” ‘범사’(凡事)는 보통 일 혹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고 설명을 붙였다. 확실히 ‘만사에 감사하라’가 더 좋은 번역이다. 지금은 ‘모든 일에 감사하라.’ 혹은, ‘모든 처지에서 감사하라.’는 번역도 보인다.
예수님은 ‘모든 일에 감사하라.’는 것을 시범으로 보여주셨다. 모든 일은 유익한 일에도 감사, 손해 보는 일에도 감사한다는 뜻이다. 빈 들에서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수많은 사람들을 먹이실 때였다. 공관복음서에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가지시고 하늘을 우러러 감사기도를 드리셨다고 했다. 그런데 요한복음에는 보리빵 다섯 개를 가지고 감사기도를 드리셨고, 물고기 두 마리를 들고 또 기도하셨음이 분명하다(요 6:11). 한국인들의 식탁으로 치면 밥 기도 따로, 반찬 기도 따로 하셨다는 뜻이다. 

여러 해 전에 그 이야기를 바로 이 난에 썼더니 독자로부터 좋은 은혜를 받았다는 전화가 왔다. 그‘좋은 은혜’란 말에 필자는 또 큰 은혜를 받았다. ‘축사하셨다/감사기도 하셨다’는 헬라 원어 ‘유카리스테오’는 바로 ‘좋은 은혜’ 혹은 ‘좋은 선물’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그것보다도 더 큰 비밀이 또 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처형되시기 전날 밤, 첫 번 성찬 예식 베푸실 때도“빵을 가지사 축복하셨고, 또 잔을 가지사 감사기도를 드리셨다”(마 26:26-27). 여기에서도 감사기도는 ‘좋은 은혜/선물을 나누어 주셨다’는 뜻이다.

성찬 예식은 바로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찢으신 살과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피를 우리들에게 은혜의 선물로 주신 일 아닌가. 예수님 입장에서는 누구라도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을 앞둔 때인데, 바로 그 십자가 고통을 하늘 아버님께 감사하셨다. 만약 부활이 없었다면 십자가는 최악의 실패였다.

십일월 추수감사절의 달이다. 성삼위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와 선물에 감사하는 달이다. 예수님 따르미인 우리들도 성공한 것, 주신 선물들에 대하여 기뻐하며 감사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손해 본 것, 실패한 것, 잃어버린 것, 고통스러웠던 일에 더욱더 감사해야 한다. 예수님은 우리의 성공을 통하여 큰일을 하시지만, 오히려 뼈아픈 고통을 통하여 더 큰일을 하신다. 베드로도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죽었고 바울도 목이 칼에 잘려 순교했다. 

<대표저서: 목회자의 최고표준 예수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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