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는 모두가 평등해지는 나라다. 세상은 돈으로 인간의 가치를 매긴다. 능력과 학벌과 혈통과 외모와 그 밖의 서로 다른 특징들이 그 사람의 가치를 결정하고 값이 매겨지는 곳이다. 그래서 손흥민은 매주 일억 원을 받고 아르바이트 하는 분들은 일주일 내내 하루 종일 일하고도 몇 십만 원을 받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진다.

그런데 포도원 품꾼의 비유에서 보듯이 하나님 나라에선 일자리를 얻지 못해 하루 종일 빈둥거리다 한 시간 일한 사람과 가장 먼저 뽑혀 하루 종일 일한 사람이 똑같은 품삯을 받는다. 그것도 나중에 온, 빈둥거릴 수밖에 없었던 사람이 먼저 품삯을 받는다. 세상의 관점으로는 당연히 부당한 일이다. 공정하지 못한 처사이며, 심지어 불의한 일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런 일이 당연한 곳이 바로 하나님 나라이다. 그러한 일이 가능한 것은 바로 하나님 나라 백성들의 정체성이 주님의 사랑받는 자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마음은 늘 약자에게로 향한다. 그들이 보호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보호를 받으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모두가 평등한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진다!!

그렇다. 하나님 나라는 모두가 평등한 나라이다. 그 나라에는 큰 자도 없고 작은 자도 없다. 큰 자는 작은 자를 섬겨야 한다. 세상에서는 작은 자가 큰 자를 섬긴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그 반대의 일이 일어난다. 그렇게 함으로써 모두가 평등해지기 때문이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해야 한다. 선 줄로 생각한다는 것의 의미는 자신을 크게 생각하는 것이다. 자신을 남보다 낫다고 여기는 순간 넘어지게 되는 것이 하나님 나라이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어린아이와 같지 아니하면 결단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정리해보자. 하나님 나라 백성의 정체성은 ‘주님의 사랑받는 자’이다. 하나님 나라 백성들은 자신을 ‘어린아이’와 같이 여겨야 한다. 어린아이는 보잘 것 없는 존재를 의미한다. 성서는 그릇의 비유를 통해 알려 준다. 하나님 나라에는 금그릇, 은그릇, 나무그릇, 질그릇이 있다. 하지만 그릇 자체에는 아무 의미가 없다. 다만 그릇은 깨끗해야 한다. 그릇의 가치는 그릇에 담기는 그리스도에 의해 매겨지기 때문이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하나님 나라의 평등을 이해하지 못한다. 여전히 큰 사람이 존재한다. 세상보다 더 사람을 차별한다.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목회를 잘한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교회의 규모나 사람의 업적으로 큰 목사와 작은 목사, 목회의 잘잘못을 구별한다. 평생 교회에 다니면서 하나님 나라의 문외한이 된다는 것처럼 슬픈 일이 있을까. 그런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에서 살 수 있을까. 그런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을까. 나는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슬프다.

사람의 가치는 주님의 사랑받는 자라는 정체성에 의해 매겨져야 한다. 주님의 사랑받는 자들은 사람에 의해 가치가 매겨질 수도 차별을 받을 수도 없다. 그리스도인들은 사람들을 똑같이 대할 수 있어야 한다. 순서가 있을 수는 있다. 우선순위는 누가 가장 고통 받는 자인가, 누가 가장 가난한가, 누가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인가 하는 것들이다. 항상 자신을 어린아이와 같이 여겨야 한다. 어린아이는 사람을 셀 때 숫자에도 들지 못하는 가장 보잘 것 없는 존재를 상징한다.

하나님 나라는 모두가 평등한 나라이다. 내 옆의 가장 고통 받는 자가, 가장 가난한 자가, 가장 보잘 것 없는 자가 지금 내가 섬겨야 할 이웃이며 주님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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