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성장" 1

 

오늘부터 영적 성장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오래 전 대학생 때 제자도에 대한 책을 읽었습니다. 후안 카를로스 오르티즈 목사의 『제자입니까』라는 책입니다. 오르티즈 목사는 교인이 200명일 때 한 교회에 부임하여 600명으로 성장시킨 분입니다. 아마도 오르티즈 목사는 자신의 목회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하나님이 오르티즈 목사를 찾아와 말씀하십니다. “너는 교인이 200명에서 600명으로 늘었다고 기뻐하느냐? 기뻐할 것 없다. 너는 그저 삶이 달라지지 않은 교인들을 400명 더 확보했을 뿐이다. 그 누구도 자라지 않았다. 전에는 네가 200명의 영적 갓난아기들을 거느렸다면, 지금은 600명을 거느리고 있는 것뿐이다.” 오르티즈 목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합니다. 교인의 숫자만 늘었지, 아무도 영적으로 성장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오르티즈 목사에게 주신 말씀은 사실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오래하였지만, 영적으로 항상 제자리 걸음을 걷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에서도 자라나지 않고,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이 되는 것에서도 제자리 걸음입니다. 부모가 아이에게 사랑과 정성으로 먹을 것을 주고 돌보아도 그 아이가 자라지 않는다면 부모에게는 큰 걱정거리일 것입니다. 우리가 바로 하나님의 걱정거리입니다. 우리는 신앙의 연륜만 쌓일 뿐, 영적으로 성장하지 않은 아이와 같을 때가 많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자라나야 합니다. 어린 아이 같은 믿음에서 성숙한 믿음으로 자라야 합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엡 4:13) 이르러야 합니다. 예수를 닮아가는 삶으로 자라가는 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예기치 못한 기쁨

믿음이 자라나는 것은 의무 사항이 아닙니다. 엄청난 축복입니다. 영적으로 성장하면,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풍성한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영적 성장으로 경험하는 은혜들은 이런 것들입니다. 평안입니다. 영적으로 성장하면 주님이 주시는 평안을 경험합니다. 기쁨입니다.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기쁨이 찾아옵니다. 삶의 목적입니다. 내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주님 안에서 비로소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행복입니다. 하나님 안에 거하면 진정한 행복을 소유하게 됩니다.

이러한 은혜를 경험한 예는 주변에서 너무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C. S. 루이스는 그의 회심을 다룬 『예기치 못한 기쁨』에서 하나님을 만나면서 경험한 기쁨과 자유를 소개합니다. 무신론자였던 루이스를 하나님이 지속적으로 찾아와 도전하십니다. 하지만 루이스는 계속해서 하나님을 거부합니다. 나중에야 깨닫게 되지만, 하나님은 루이스에게 하나님을 거부할 수 있는 자유도 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방법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를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선택하지 않을 자유도, 하나님을 떠날 자유도, 하나님 없이 살아갈 자유도 허락하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루이스를 한없이 기다리시면서 하나님께 돌아올 기회를 지속적으로 주십니다. 루이스의 표현에 따르면 “하나님이 꾸준히, 또한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다가오시는 것을 매일 경험”합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은 오늘도 꾸준히, 그리고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마침내 루이스가 하나님의 초대 앞에 항복하고,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 앞에 무릎을 꿇었을 때, 그는 진정한 자유를 경험합니다. 그래서 그의 회심 이야기를 이렇게 마칩니다. “하나님의 강요는 우리를 해방시킨다.”

하나님을 만나는 순간, 우리는 삶의 문제, 두려움과 절망, 미움과 욕심, 뿌리 깊은 불안과 공허함에서 해방되는 것을 경험합니다. 삶이 안정되어 있어도 무언가 해결되지 않는 불안감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을 만나는 순간 진정한 기쁨을 소유하게 됩니다. 진짜 자유를 발견합니다. 하나님을 떠나는 자유를 누리려고 했던 나에서 하나님 안에서 진짜 자유를 경험하는 나로 변하게 됩니다. 이것이 영적 성장에서 누리게 되는 축복입니다.

 

영적 성장의 의미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이면서 동시에 우리에게는 축복인 영적 성장은 과연 무엇입니까? 영적 성장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까?

영적 성장을 다른 말로 하면 “영성이 깊어진다”는 것입니다. 영성이란 정의하기 어려운 복잡한 개념입니다. 사실 이러한 단어는 정의를 내리는 것이 안하는 것보다 못할 때가 있습니다. 사랑이라는 단어의 정의를 내리기가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을 정의하기보다는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영성도 정의를 내리기보다는 영성이 깊어지는 노력과 실천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하지만 영성에 대한 정의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영적 성숙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많은 것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영성을 정의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영성이란 인식된 궁극적 가치를 목표로 하여 자기 초월을 통한 삶의 통합 프로젝트에 의식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얻는 경험입니다.”(샌드라 슈나이더스 Sandra Schneiders, 이강학 교수 번역) 이 정의를 보면 영성이 참 복잡한 개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 소개하는 영성의 정의(혹은 영적 성숙의 의미)에는 다섯 가지 중요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오늘은 첫 번째 주제인 “궁극적 가치”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궁극적 가치

슈나이더스 교수에게 영성이란 궁극적 가치를 인식하는 것입니다. 궁극적 가치란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어떤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에게는 돈이 궁극적 가치이고, 또 다른 사람에게는 성공이 궁극적 가치이고, 명예가 궁극적 가치인 사람도 있고, 건강이 궁극적 가치인 사람도 있습니다.

이 궁극적 가치가 크리스천인 우리에게는 종교이고 하나님입니다. 『습관의 영성』이라는 책에서 제임스 스미스는 이런 말을 합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것을 당신은 예배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것을 예배합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이 바로 예배의 대상이자 하나님입니다.

하지만 영성은 가짜가 아니라 진짜를 붙드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이라는 궁극적 가치를 붙드는 것입니다. 궁극적 가치의 자리에 두었던 돈과 성공과 명예를 밀어내고, 하나님을 제일의 가치로 두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 성숙의 의미입니다.

조희선 시인이 지은 시 <주일 예배당>은 예배당에 나와서 예배하는 그 시간에도 하나님을 온전히 바라보지 않는 우리의 모습을 꼬집습니다. 시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기 빈 자리, 참 부산하게도 앉았다들 떠난 자리, 당신은, 침묵으로, 고요로 이제야 임하십니다. 신을 벗어야 할 자리, 그러나 모두들 바빠서, 입은 옷들 그대로 잠시 머물다 가버린 자리, 이렇게 당신의 주일은, 참 쓸쓸합니다.” 하나님을 만나고자 예배당에 왔지만, 자기 생각에 너무 바빠서, 모세처럼 하나님 앞에서 신을 벗기는 커녕, 입은 옷들 그대로 잠시 머물다가 가버리니, 어떻게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시인은 모두가 가버린 예배당의 빈자리에 비로소 하나님이 고요히 임하신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각자의 삶에서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일들 때문에 늘 분주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옷을 벗어버리기보다, 각자 입은 옷을 움켜쥐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영적으로 성장한다는 것은 붙들고 있는 옷을 벗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고집, 욕심, 계획을 모두 내려놓고, 하나님이라는 궁극적 가치를 붙드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삶에서 궁극적 가치가 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붙들고, 삶의 의미와 행복을 발견하는 것이 영적으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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