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행복한 삶을 꿈꾸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그 꿈이 모두 실현되는 것은 아니지요. 행복이 실현되지 못하는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노력이 부족해서 혹은 잘못된 노력이어서일 수도 있습니다. ‘그 잘못’ 중의 하나는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대상을 잘못 정한 것입니다. 잘못된 선택의 원인은 상대의 속임수가 아니라 대부분 자신의 그릇된 욕망입니다. 욕망에 사로잡히면 속이는 자가 되거나 스스로 속는 자가 됩니다. 그는 신기루를 만들고 그를 통하여 자신의 바람을 실현하려고 하지요. 하지만 남는 것은 허탈감과 후회뿐입니다. 신기루는 실체가 없으니까요.

성경에 나오는 사마리아 여인의 예도 그렇지 않을까요? 그녀에게도 꿈 많은 소녀 시절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의 소녀들이 갖는 꿈은 지금과는 달리 매우 제한적이었고 개인적이었습니다. 가장 큰 꿈은 남편을 잘 만나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녀는 신변을 보호해 주고,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며, 정서적 외로움을 덜어줄 수 있는 남자를 간절히 찾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찾은 ‘그 남편’은 결과적으로 빈자리를 채워 주지 못했습니다. 그 후에 만난 다섯 명이나 되는 ‘남편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이 무능하거나 악해서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더 근원적으로는 ‘그 남편들’은 애초부터 의지할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그 남편들도 같은 바람을 가지고 필요에 의해 여인을 취했을 것입니다.

불완전한 인간이 어떤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타인을 사랑할 때 그 마지막은 어떻게 될까요? 건강한 사랑의 결과는 평안과 평화입니다. 평안이 개인적인 것이라면 평화는 관계적인 것입니다. 사랑을 받으면 그 사람은 평안을 누리게 되고, 사랑을 하면 둘 사이에 평화가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잘못된 사랑이라면 평화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사랑할수록 갈등이 생기고 그 끝에는 상처와 분노가 남습니다. 상처는 한계로부터 오는 것이요, 분노는 실망에 따른 부정적 반응입니다. 이 분노는 상대에 대한 것일 수도 있고, 자신의 어리석음과 한계에 대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분노는 파괴적이고 소모적입니다.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지 않습니다. 분노를 투사하며 불안을 잊으려는 사람들도 있지만, 결국은 파멸의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됩니다. 여인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사랑이 답인 줄 알았는데 ‘그 사랑’때문에 더 괴로웠던 사람.

어떻게 하면 참된 행복을 향한 지혜로운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을까요? “사랑을 모르는 사람은 상대를 바꾼다고 행복해지지 않는다”라는 시구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 다음 구절에 “모든 문제의 근원은 내 자신이다”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답은 행복의 통로가 될 줄 알았던 상대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행복을 바라는 ‘자신’에게 있습니다. 그러니 해결도 자신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내 안에 선한 것이 하나도 없는데 어떻게 하냐구요? 그러니 결국 다시 타자를 찾을 수 밖에 없다구요? 그렇다면 이제는 다른 타자를 찾아야 합니다. 누구를 만나야 할까요? 예수님은 “메시야가 오시면” 이라고 말하는 여인에게 “내가 그니라”고 답하십니다. 그러자 여인은 사람들에게 달려가 “내가 메시야를 만났다”고 선포합니다.

우리는 그 여인이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았으리라 추측합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그 여인과 함께 살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주신 것은 예수의 몸이 아니라 깨달음이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그니라”는 말씀 속에 어떤 의미가 숨겨져 있는 것일까요? 사람들은 이 문장의 주어와 보어에 관심을 쏟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이 동사의 시제가 미래형이 아니라 현재형이라는 점입니다. 예수께서는 행복, 사랑, 평안이 멀리 있거나, 언젠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현재 속에 있으니 마음을 열고 다시 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으로 인해 여인이 미래가 아닌 현재 속에서 답을 찾았고, 먼곳이 아닌 가까운 곳, 즉 자신에게서 사랑을 찾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을 사랑해줄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자신이 되는 순간, 의존은 사라지고 원망도 해소되는 것입니다. 사랑 때문에 발생하는 우리들의 문제들도 바로 ‘자신’을 사랑하는 태도의 변화로부터 풀리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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