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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영성으로야고보서
최태선 목사  |  어지니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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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4.30  07:0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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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적

야고보서는 세상 속에 흩어진 하나님의 교회가 세속의 거센 물결을 당당히 헤쳐 나갈 것을 명령합니다. 교회의 적은 교회가 적대시하는 세상이 아닙니다. 교회를 유혹하는 세상도 아닙니다. 교회의 적은 교회가 품은 두 마음입니다. 야고보서는 그것을 날카롭게 지적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품고 있는 두 마음, 하나님을 향해 전심이 되지 못하고 나뉜 마음, 그것이 오늘 세상의 지탄을 받는 교회가 앓고 있는 중병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세상을 사모하는 두 마음으로는 결코 세상을 이길 수 없습니다. 세상 속에 있으나 세상에 속하지 않은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세상에 속한 교회는 치욕과 수치를 양산할 뿐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그것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목격하고 있으면서도 분노가 일지 않는다면 그의 마음은 하나님을 향한 전심이 아닙니다. 기독교의 신뢰도가 떨어지고 하나님의 이름이 조롱거리가 되고 있는데도 감정의 변화가 없다면 그는 온전한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두 마음을 가지고 자신의 이익으로 저울질하는, 야고보 사도가 지적한 두 마음을 품은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베드로전서에서 말하고 있는 '나그네와 행인'처럼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오늘날 교회와 교인들은 이 세상에 취해 있습니다. 두 마음을 당연시하는 순전하지 못한 복음으로 복음이 가리키는 것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복음은 '예수 믿어서 복 받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 자신이 복이십니다. 그것이 다입니다. 예수님보다 더 크고 영광스럽고 명예롭고 풍요롭고 영원한 복은 없습니다.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본받아 그분이 가신 길을 따라갈 뿐입니다. 그분은 하나님 아버지를 향한 전심으로 그 길을 가셨습니다. 우리도, 교회도 그 길을 가야 합니다.

야고보서에서 야고보 사도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거의 인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럴 필요가 없었습니다. 야고보 자신이 예수님의 가르침 속에 푹 젖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자신이 예수님의 길을 걸어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야고보서를 '지푸라기 복음'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속에 율법이 아니라 은혜가, 행위가 아니라 믿음이, 사람들이 믿고 있는 것과 다른 것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제 힘으로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은혜는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입니다.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행위란 자기 의를 내세우는 공로 주의로 보입니다. 하지만 야고보서는 바울 서신과 다릅니다. 유대인 율법주의자가 아니라 마음이 둘로 나뉜 그리스도인 형제들과 교회들에게 보내는 서신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교회들에게는 야고보서가 더 적실합니다. 오늘날 교회들이 두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기초는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입니다. 오직 그분에 대한 믿음뿐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이 두 마음으로 나뉘면 그 모든 기초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세상에 속하지 말아야 할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 속하여 복음이 말하는 진리를 헛것으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왜 그리스도인들이 '가나안 성도'가 되고,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향하여 손가락질을 할까요? 그 이유는 교회가 세상과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이지만 그 기초 위에 세상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 세상이 가득합니다. 오히려 세상보다 더 불합리한 세상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교회 안에 들어와도 세상에서 맞는 비바람을 피할 도리가 없습니다. 돈이 없으면 무시를 당합니다. 정욕에 이끌려 재물과 권력을 탐하는 사람들의 희생양이 됩니다. 그런 곳에 하나님 나라의 '샬롬'이 있을 리 만무합니다. 교회 안에 참된 안식이 없습니다. 세상을 이기는 능력도 없습니다. 참된 경건도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정의와 평화와 기쁨이 없습니다(롬 14:17). 세상에 무방비 상태인 교회에 하나님의 영광과 임재가 가득할 리 없습니다.

전심으로 말씀을 따라 사는 사람들

야고보 사도는 말과 삶이 하나이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라갑니다. 예수님은 전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셨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신자의 중생을 성령의 역사로 표현하지 않습니다. 신자의 가장 큰 특징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흩어진 교회의 가장 큰 특징은 '진리의 말씀'이라고 야고보 사도는 강조합니다. 그들은 '말씀'으로 태어났습니다. 그 말씀이 그들 속에 심겨 있습니다. 이것이 야고보 사도가 말하는 복음의 특징입니다. 하나님께서 종말의 백성들에게 새 언약을 따라 성령을 부어주셨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 그분의 말씀을 심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성령 충만해야 하고 지혜로워야 하는 건 그들 속에 심긴 말씀을 따라 살기 위해서입니다.

그들 속에 심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에서 성취된 율법의 핵심, 곧 깨끗하고 긍휼하신 말씀입니다. 그들은 이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아야 합니다. 율법은 이미 심긴 말씀을 통해 성취되었습니다. 이제 마음에 심긴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는 자는 그리스도를 따라 율법을 성취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긍휼을 행해야 합니다. 그들은 자신을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는 경건을 얻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그들은 자신의 혀, 곧 말을 다스리는 온전한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야고보 사도는 우리 속에 심긴 말씀이 우리의 말을 통제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것이 온전함에 이르는 길이라고 말합니다. 사람의 말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신학적인 응답입니다. 아담은 마귀의 말을 듣고 불신앙의 말로 응답하여 실패했습니다. 이스라엘도 율법을 받았지만 불평과 원망과 세속적인 기도와 간구의 말 때문에 멸망했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세상 속에 흩어져 있는 교회에게 권면합니다. 너희의 말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스려지게 하라! 거짓을 버리라! '예' 라고 해야 할 때에는 '예'하고 '아니요'라고 해야 할 때에는 '아니요' 하라.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 하나님을 선택하라. 두 마음을 버리라. 두 마음에서 나오는 헛된 자랑, 하나님께 대한 불평과 형제에 대한 비방과 고소 그리고 온갖 오만한 세상의 지혜들을 버리라!! 그것이 바로 전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자들이 마땅히 행해야 할 도리다.

하나의 영성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시고, 그분은 일편단심으로 당신의 백성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의 언행은 일관되게 참되시고, 언제나 신실하십니다. 야고보 사도의 영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가르침처럼 '하나의 영성'입니다. 십자가는 마음에 심긴 긍휼의 복음입니다. 그 복음에 온유함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오신 길이고, 우리가 주님께로 가는 길입니다. 예수님의 복음과 가르침은 둘로 분리되지 않습니다. 그분의 가르침과 행동은 분리되지 않습니다. 야고보 사도 역시 믿음과 행동의 분리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교회 안에서의 생활과 일상의 삶이 하나입니다. 교회 안에서의 모습과 교회 밖의 모습이 다를 수 없습니다. 예배 드릴 때와 세상에 나가 사업할 때가 다를 수 없습니다. 아는 것과 실제 행동이 다를 수 없습니다. 말하는 것과 실제 행동이 다를 수 없습니다. 힘 있는 자를 대하는 태도와 소자를 대하는 태도가 다를 수 없습니다. 특히 돈의 유무에 따라 일에 대한 열정과 관심이 달라질 수 없습니다. 구분은 있지만 분리는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의 영성은 온전함에 이르게 하는 영성입니다. 온전함에 이르지 못하는 믿음은 처음부터 가짜입니다. 약해질 수 있고, 흔들릴 수 있지만 넘어져서 영영 일어나지 못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시작과 끝도 하나로 이어집니다. 시작은 믿음이었는데 끝은 탐욕이 될 수 없습니다. 믿음과 행위가 하나가 되어 온전함에 이르게 합니다. 행하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습니다. 말씀이 다스리는 말이 그 사람을 온전하게 합니다. 마음에 심긴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아,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말로 응답해야 합니다. 시험을 당해도 불평하지 말고 온전히 감사해야 합니다.

믿음의 길에 들어서고도 말과 삶에서 실패하는 이유는 두 마음 때문입니다. 하나의 영성이 되지 못해서입니다. 두 마음은 마음속에 깊은 골이 패는 것입니다. 거기서 온갖 혼돈과 패악이 나옵니다. 하지만 우리 안에는 말씀이 심겨 있습니다. 그 말씀을 붙들면 깊이 패인 골이 메워집니다. 치유가 일어납니다. 말씀을 버리지만 않는다면, 그 말씀이 우리를 붙들어 우리를 온전케 할 것입니다. 결국 머리이신 주님을 따르는 온전한 그리스도인, 온전한 교회로 회복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러므로 주님 앞에 우리 자신을 낮추어야 합니다. 그때 그분의 한결같은 사랑, 순전하고 아낌없는 사랑이 우리의 영혼 속으로 흘러듭니다. 그 사랑이 차고 넘쳐야 합니다.

그러므로 인내해야 합니다. 오래 참고 견뎌야 합니다. 풀무 불 속에 들어간 금처럼 모든 불순물이 걸러질 것입니다. 세상의 영광은 지나가고, 우리는 우리 안에 심긴 영원한 말씀과 더불어 영영히 설 것입니다. 온 세상으로 하여금 우리를 통해 생명의 말씀을 보고 느낄 수 있게 해주어야 합니다. 야고보 사도는 감히 말합니다. 인내는 달콤하고, 값지고, 살아 있는 소망으로 뜨겁다고 말입니다. 이제 곧 그분이 완성하실 것입니다. 그 끝은 생명의 면류관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유업으로 주실 새 하늘과 새 땅, 곧 그분의 나라를 다스릴 온전한 사람으로 우리를 완성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흩어진 열두 지파, 곧 교회에게 말씀하십니다. 교회여, 인내하라. 모든 기쁨으로 인내하라. 전심으로 주를 사랑하라. 긍휼에 풍성하신 주님께서 주시는 놀라운 결말을 보라!!

이 시대는 너무도 당당하게 두 마음을 자랑합니다. 세상에서 복을 받고 잘 사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거리낌 없이 말합니다. 가난한 사람에게 믿음이 없어 그렇다며 손가락질합니다. 그 결과 교회 안은 시기와 질투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경쟁과 힘과 영향력의 추구로 하나님 나라가 아니라 에녹 성이 되었습니다(하나님을 떠난 가인이 쌓은 최초의 城) 서로 죄를 고백하기는커녕 책잡힐까 두려워 웃는 얼굴로 평화를 가장하는 위선자들이 되었습니다. 서로를 위해 기도하지만 그 내용 역시 세상적이고 물질적인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가장 밑바닥에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깔아놓고 그 위에 거대한 세상의 아방궁을 지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믿음의 눈으로 그것을 볼 수 있다면, 우리에게 맡겨진 막중한 책임을 하나의 영성으로 온전히 하나 된 마음으로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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