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부터 주일예배의 목회기도 순서에 들어가게 되었다. 지난해까지 주일예배 목회기도는 장로님과 안수집사님들이 번갈아 가며 했으나, 올해부터 각 사역팀의 팀장들도 기도위원에 포함된 것이다. 필자는 성가대(주사랑성가 사역팀) 팀장 자격으로 기도위원에 추천됐다. (우리 교회는 서리집사를 따로 임명하지 않아 모든 집사가 안수집사인데, 안수집사가 되기 위한 요건이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그래서 출석 인원에 비해 장로님과 안수집사님 숫자가 많지 않은 편이다.)

아직 집사도 아닌 데다, 공예배 중에 대표기도를 해본 적이 없어 처음에는 사양했으나, 앞으로 집사가 되어 대표기도도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아내의 말에 마음을 바꾸려던 즈음, 교회 사무실 앞에서 담임목사님과 마주쳤고, 덥석 “예, 해야지요.”하고 대답하고 말았다. 아직 대표기도를 할 만한 신앙이 못 된다며 계속 빼는 것도 교만의 가장된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필자는 지난 3월과 5월에 2부 예배의 목회기도를 하게 되었다. 기도 순서 담당자는 주보에 보통 2주 전에 올라온다. 예배 담당 목사님께서 일정 확인차 미리 전화를 주셔서 주보에 실린 이름을 보고도 크게 떨리지는 않았다. 주보를 본 성가대원들이 성가대를 대표해서 기도하는 것이라며 격려도 많이 해주시고, 함께 기도해 주신 것이 큰 힘이 됐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차분한 마음으로 무슨 내용을 기도할지 준비하고 생각할 수 있었다. 

우리 교회가 LA 한인타운과 다운타운 사이 라티노들이 많이 사는 지역에 세워진 이유는 무엇이고, 또 현재 우리 교회의 상황은 어떤지에 대해 한 번씩 생각하게 되었고, 교회가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멕시코 선교나 커뮤니티 선교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되었다. 담임목사님과 목회자, 그리고 각 사역팀의 리더들을 위해 기도하게 되었고, 우리 교회 교인들이 처한 상황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경제적인 이유나 신분 문제로 고생하고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교인들의 아픔이 남의 일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은혜로운 것은 2주 정도 대표기도를 준비하면서 예배를 준비하고 갈망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저 수려한 문장으로 만든 기도문을 통해 나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예배에 하나님의 영광이 온전히 임해서 예배에 참여한 성도 모두가 그 영광의 임재에 참예할 수 있길 진정으로 갈망하게 된 것이다. 또 예배를 기다리면서 혹시라도 하나님 앞에 범죄하는 일은 없어야겠다는 ‘긴장감’을 갖고 일상에서 더욱 말씀을 묵상하고, 성령님의 임재와 도우심을 간구하게 되었다.

기도하기 전에 팀원들에게도 기도 부탁을 했더니 마치 물가에 아이를 내놓는 것마냥 염려하며 기도해 주셨다. 기도 중에는 더 큰 소리로 “아멘”하며 화답해 주셔서 큰 힘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개인적으로는 예배 중에 더 큰 은혜를 경험할 수 있었고, 예배를 드린 뒤에는 기도를 통해 많은 은혜를 받았다고 말씀해 주시는 성도님들도 계셨다. 

지난해 처음 성가대 팀장을 맡았을 때에도 이번과 같은 부담감과 준비로 예배를 드렸을 때 더 큰 은혜가 임했던 경험이 있다. 그냥 성가대원일 때와 팀장일 때 갖게 되는 예배에 대한 부담감과 기대의 차원이 달랐기에, 주일예배 때 부를 찬양을 미리 들어보고 불러보는가 하면, 토요일 오후부터 예배를 준비하고, TV 시청도 자제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준비가 다르니 예배에 임하는 은혜도 그만큼 달랐던 것이다.

혹시 주일 하루 아무 때나 원하는 시간에 예배를 드릴 수 있다는 생각에 너무 쉽게 준비 없이 예배를 드리는 것은 아닌가? 또 공연 관람하듯 예배를 드리는 것은 아닌가? 진지한 고민을 하게 된다. 예배는 설교하는 목사님이나 순서를 맡은 사역자들만 준비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준비하고 갈망하는 자의 예배를 기뻐하시고, 더 큰 은혜를 주시기 때문이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요 4:23).

(jungdy1821@hotmail.com)
 

저작권자 © 크리스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