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린도후서 12:7-10).

소설가 나다니엘 호손의 『점』이라는 단편 소설은 왼쪽 뺨에 작은 점을 가진 아름다운 여자와 결혼한 한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부인은 예쁜 점이라고 생각했지만, 남편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 점 때문에 그녀의 외모가 완전하지 못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부인의 아름다움은 더 이상 보이지 않고 남편은 점에만 신경을 썼습니다. 할 수 없이 부인은 점을 없애기 위해 치료를 받았습니다. 치료로 점은 사라졌지만, 부인은 점점 쇠약해지더니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남편은 부인의 완전한 아름다움을 원했다가 부인마저 잃어 버렸습니다.

이 소설은 약점을 견디지 못하는 인간을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약점을 못 견뎌합니다. 수많은 장점들을 보지 못하고 소설처럼 작은 약점에 매달려 인생을 즐기지 못합니다. 자신의 약점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지 못합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약점에 대해선 비교적 관대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약점에 대해선 무자비하곤 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약점을 가리려고 애를 쓰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약점을 감추지 않고 오히려 자랑했습니다.

바울의 원래 이름은 사울이었습니다. 사울은 ‘큰 자’를 의미합니다. 반대로 바울은 ‘작은 자’를 의미합니다. 이름만 바뀐 것이 아니라, 그의 삶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원래 사울은 가문이 좋고, 재력과 학식을 겸비하고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울이란 이름 그대로 그는 장점이 많은 큰 자였습니다.

그런데 다메섹으로 가던 도중 기적을 경험합니다. 그가 핍박했던 예수를 만난 것입니다. 그 후 그는 자신의 기득권인 모든 장점을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만을 전하는 전도자로 변했습니다. 그는 장점을 가리고 약점을 드러내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약점을 알면서도 자신을 영접한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몸에는 여러분에게 시험이 될 만한 것이 있는데도 여러분은 나를 멸시하지도 않고 외면하지도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해 주었습니다”(갈 4:14).

사도 바울은 고칠 수 없는 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일설은 눈병이라 하고 어떤 학자는 간질병이라 합니다. 그의 병이 무엇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그 병은 바울에게 엄청난 고통을 주었고, 다른 사람들에게 감출 수 없었습니다. 지도자에게 병이 있다는 것은 치명적인 일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병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교인들이 자신의 약점까지 사랑해 주기를 원했습니다. 자신의 약점을 받아들이면 다행이고, 그러지 않아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갈라디아 교인들은 바울을 받아 주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했습니다. 바울은 그런 갈라디아교인들을 칭찬하고 감사하게 여겼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바울의 위대함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약점을 사랑하고 노출하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다행히 갈라디아 교인들이 바울을 잘 영접했습니다. 그런데 약점을 다시 거론하고 약점을 부각시키는 건 세상의 눈으로 보면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일입니다. 바울은 한 걸음을 더 나아가, 육체의 연약함을 교회 공동체의 논리에 적용하여 가르치기까지 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사람이 몸 가운데서 더 약하다고 여기는 지체가 오히려 더 요긴합니다 그리고 몸 가운데서 덜 귀하다고 생각하는 지체들을 더욱 귀한 것으로 입히고, 볼품없는 지체들을 더욱더 아름답게 꾸며줍니다”(고전 12:22-23). 교회의 약한 사람들을 더 귀하게 여기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신과 교회의 유익이 된다는 것입니다.

시간이 흐른 다음, 이번에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편지를 씁니다. 고린도후서 12:7-10에서 약점을 밝히는 정도가 아니라 그 약점이 복음을 위해 그리고 자신의 사역에 있어 어떤 역할을 했는지 깊은 통찰을 가지고 정리해 줍니다.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7). 그는 육체의 병이 사단의 사자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사단의 가시는 하나님께서 목적을 가지고 허락하신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하늘나라의 비밀들을 보고 들었습니다. 그 내용이 엄청난 것이었기 때문에, 그는 스스로를 대단하게 여길 수 있었습니다. 교만해질 수 있었고, 스스로를 높여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챌 수 있었습니다. 그것을 막기 위해 하나님께서 병을 주셨습니다.

그래도 바울은 기도했습니다.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8) 세 번의 기도는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처럼 생사를 건 기도였습니다. 병은 낫지 않았지만, 그는 주님의 응답을 받았습니다.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9). 그는 가장 중요한 기독교 진리를 깨닫습니다. 그리스도의 능력은 약한데서 온전하여진다는 것입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우리는 병이 낫고, 문제가 해결되고, 힘이 펄펄 넘쳐야 능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능력이 창조주의 능력이라는 것과 인간의 모든 생각과 능력을 합친 것보다 주님의 판단이 높고 의로우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육체의 병뿐만 아니라 자신의 약점들을 자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결론을 내립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때에 강함이니라”(10).

인간의 실존을 사도 바울보다 깊이 깨달은 사람은 없는 것 같습니다. 인간이 왜 전적으로 타락한 존재인가를 사도 바울은 잘 알고 있습니다. 강하고 좋은 것이 주어지는 순간, 인간은 반드시 하나님을 떠나고 마는 존재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습니다. 조그만 성공해도, 인간은 자신이 죽어야만 하는 존재이며 죄의 노예라는 것을 잊어버립니다.

약점을 감추고 싶은 건 당연지사입니다. 경쟁 세상에서 약점은 치명적입니다. 게다가 사람들은 남의 약점을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공격의 대상이 됩니다. 약점은 항상 우리를 위험에 처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을 자랑할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능력을 경험하게 됩니다. ‘내가 약할 그때에 강함이라’라고 말하는 진짜 그리스도인들이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말씀을 기록하기 전에, 고린도전서 1:31을 통해 분쟁을 일으키고, 분당 지어 잘난 척하는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경고했습니다. ‘자랑하려거든 주 안에서 자랑하라!’ 그 누구도 주님 앞에서 자랑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주께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받지 않은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자랑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약점입니다. 약점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약점을 자랑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약점을 자랑하는 것은 자신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동료 그리스도인들과 더불어 화평을 이루는 일입니다.

자신의 약점을 고백하고, 상대방의 약점을 존중하고, 나아가 약점에 상관없이 이웃을 천사 대하듯, 그리스도 대하듯 영접하고 섬길 수 있다면, 우리의 약점은 화평을 부르는 도구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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