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달에 이스라엘 자손 곧 온 회중이 신 광야에 이르러 백성이 가데스에 이르더니 미리암이 거기서 죽으매 거기에 장사되니라 회중이 물이 없으므로 모세와 아론에게로 모여드니라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말하여 이르되 우리 형제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을 때에 우리도 죽었더라면 좋을 뻔하였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회중을 이 광야로 인도하여 우리와 우리 짐승이 다 여기서 죽게 하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여 이 나쁜 곳으로 인도하였느냐 이 곳에는 파종할 곳이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도다”(민수기 20:1-5).

에픽투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일어나는 모든 일에 항상 만족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것이 내가 선택한 것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에픽투스처럼 모든 일에 만족하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시련과 불확실성 속에서 만족을 찾으려면,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허락하신 상황을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만약 ...했더라면’ 이라고 시작하는 ‘만약’ 병에서 벗어나는 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시련과 유혹에 직면해 ‘만약... 했더라면’이라는 ‘만약’ 병에 걸립니다. 그렇게 자기연민에 빠져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허비하는지 모릅니다. 믿음의 사람은 ‘만약’을 가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삶에 허락하신 것에 만족하기 때문입니다.

『가뭄 속의 푸른 잎』(Green Leaf in Drought)라는 책에 ‘만약’ 병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1947년 중국 공산당이 모든 선교사들을 추방했을 때, 아더와 윌마 매튜 부부는 중국 내지로 들어갔고, 출국 금지를 당했습니다. 동료들이 탈출하는 동안, ‘만약’병이 그들의 마음과 생각을 괴롭혔습니다. “만약 우리를 이곳으로 초청하는 그 편지가 오지 않았더라면... 만약 아더가 공산당 정부를 화나게 만든 세계평화성명에 서명하지 않았더라면... 만약 출국 금지를 당하기 전에 과감하게 출국했더라면... 만약, 만약...” 윌마는 ‘만약’의 가정들 때문에 머리가 마비되는 것 같았습니다. 부활절인데도 그분이 사셨다는 찬양을 부를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셨다고 생각했습니다. 윌마는 우중충한 부엌에 혼자 앉아 A. B. 심슨의 소책자 『당신 삶에 있는 ‘만약’』을 집어 들었습니다. 그녀는 나사로의 죽음에 관한 기사를 읽었습니다. 그 기사에서 마르다는 “주님, ‘만약’ 당신이 여기에 계셨더라면, 내 오라비는 죽지 않았을 거에요.”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거기에 계실 수도 있었지만 멀리 계시지도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셨고 나사로를 죽게 내버려두셨습니다.

윌마는 그 기사를 읽으며 위대한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모든 삶에는 ‘만약’이 있습니다. 마르다는 나사로가 죽지 않고 병에서 낫기를 바랐지만 예수님께서는 나사로가 죽음을 이기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를 바라셨습니다. 예수님은 마르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요 11:40).

윌마는 심문이 아무리 극샘하고 환경이 끔찍해도 ‘만약’을 생각하지 않기로 굳게 결심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에 초점을 맞추기로 한 것입니다. 그들은 내적인 평안을 갖게 되었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서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2년 후, 매튜 부부는 중국을 떠나도록 허락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쉬지 않고 ‘만약’을 가정하는 영적인 불구자들입니다. 그럴 듯한 가능성들을 생각하고 걱정에 빠지는 영적인 불구자들입니다. 가진 것 대신에 갖지 못한 것을 생각하면, ‘만약’ 병에 걸리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주신 것에 만족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 병에 걸리면 균형을 상실합니다. 민수기 20:1-5에 등장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로 ‘만약’병에 걸린 영적 불구자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문제에 직면했습니다. 물이 없었습니다. ‘만약’ 병은 현실적인 문제에서 비롯됩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아니라 문제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균형을 잃고 애굽 생활을 그리워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애굽에서 노예로 살았고 그들의 탄식 소리가 하나님께 들릴 정도로 그곳을 싫어했습니다.

그런데 형제들과 함께 죽는 게 더 나았다고 말합니다. 그들이 말하는 형제들은 고라 자손들과 그들의 동조자들입니다. 하나님께 거역하다 땅이 갈라져서 음부에 빠져버린, 저주의 죽음을 당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런 그들과 함께 죽는 게 더 나았다고 말합니다.

하나의 문제가 불어나 한 무더기의 불평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불평을 늘어놓고 마지막에 그 불평이 타당하다는 증거로 “마실 물도 없도다.”를 덧붙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로에게 닥친 열 가지 재앙과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을 목격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 음식이 없을 때, 하나님께서는 만나를 내리게 해서 그들을 먹이셨습니다. 사십 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여인들은 하나님이 주신 양식을 주웠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잊어버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시선은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문제에 맞춰져 있었습니다.

20:12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평에 어떻게 반응하시는가를 보여 줍니다. 모세와 아론은 그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지 못할 뻔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총회를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떠한 상황에 있든지, 하나님을 신뢰하길 원하십니다. 결과적으로 애굽에서 나온 20세 이상의 성인들 중에서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광야에서 생명을 잃었습니다. 광야에서 태어난 후손들만이 약속의 땅에 들어갔습니다.

살아가면서 어려움과 시련에 봉착하지 않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하나님이 주신 분깃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우리의 문제가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해결되건 안 되건 하나님에 의해 최선의 방법으로 해결될 것입니다.

다음으로 우리는 주님의 행사를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 하나님께서 과거에 무슨 일을 하셨는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생활을 기억하는 것도 좋은 일일 것입니다. 복음서의 예수님의 행적을 따라가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입니다. 시편 기자들의 고백을 따라가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입니다.(77편) 무엇보다도 우리의 삶 속에 역사하셨던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들을 기억하는 방법은 기록입니다.

앤드류 머레이 목사에게도 어려운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는 어둠 속에서 바른 길로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기 위해 목록을 작성했습니다. 1895년, 영국에서 머레이 목사는 등이 몹시 아파서 고생하고 있었습니다. 몇 년 전에 입은 부상 때문이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그가 방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있을 때 여관 주인이 찾아 왔습니다. 아래층에 묵고 있는 여자가 어려움에 처했는데 조언을 해줄 수 없겠냐는 것이었습니다. 앤드류 머레이 목사는 종이 한 장을 건네 주며 말했습니다. “나 자신을 위해 적어둔 충고입니다. 이걸 그녀에게 전해주십시오.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 종이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습니다.

‘역경의 시간에 이렇게 말하라. “우선, 그가 나를 여기로 데려오셨다. 내가 이 협착한 장소에 있는 것은 그의 뜻이다. 나는 여기서 안식할 것이다.“ 그 다음 이렇게 말하라. “그가 사랑으로 나를 보호하실 것이고, 이 시련 중에도 그의 자녀로서 행동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실 것이다.” 또 이렇게 말하라. “그가 시련을 축복으로 만드실 것이고, 내가 배워야 할 교훈을 가르치실 것이며, 주려고 작정하신 은혜를 부으실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하라. “그의 선하신 때에 그가 나를 다시 데리러 오실 것이다. 그 방법과 시기는 그만이 아신다.” 그러므로 이렇게 말하라 “나는 (1) 하나님의 약속에 의해, (2) 하나님의 보호하심 가운데, (3) 하나님의 훈련 아래, (4)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여기에 있다.’

앤드류 머레이는 문제에 초점을 맞추지 않기로, “만약 이 고통으로 고생하지 않았더라면” 하고 가정하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그의 초점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목적에 있었습니다.

믿음의 길은 생명의 길입니다. 믿음의 삶을 살기로 결정했다면, 불평하지 말아야 합니다. ‘만약’을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상황에 놓이든 그것을 하나님의 분깃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어렵고 힘든 바로 그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분이 과거 믿음의 선진들에게 행하셨던 일, 그리고 나의 삶에 역사하셨던 일들을 생각하면서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배우게 됩니다.

그곳은 내 인생의 광야입니다. 광야의 삶이 없으면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에게든 광야가 주어집니다. 그 광야에서 우리는 약속의 땅에 합당한 존재로 훈련받고 변화되어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요 6:29)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인생의 모든 것을 하나님의 분깃으로 받아들이고, 주님의 역사를 기억하며,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가장 원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런 존재로 바뀌는 것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며, 예수를 진짜로 믿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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