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소식 한 가지. 한 설문조사에서 미국인들은 근면, 애국, 종교에의 헌신과 자녀 계획이라는 원칙들에 대한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나쁜 소식 한 가지. 그 설문조사는 21년 전에 실시된 것이다.

최근 월스트리트 저널과 NBC가 똑같은 설문조사를 실시했는데, “종교,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연장자(55~91세)들 중 67%가 중요하게 여긴 데 반해, 젊은 성인(18~38)들의 경우 30%만 중요하게 여긴다고 응답했다. 애국은 연장자의 79%와 젊은이의 42%가, 자녀 계획은 연장자의 54%와 젊은이의 32%가 중요한 가치라고 답했다.

연장자들보다 젊은이들이 더 중요하게 여긴 가치는 공동체 참여(61% vs 58%)와 타인에 대한 관용(83% vs 79%)이었다.

설문조사 요원 중 한 명은 “자녀 계획과 종교, 애국이 덜 중요해진 신흥 미국이 있다. 그리고 신흥 세대가 미국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를 알려 준다.”고 평했다.

존 F. 케네디는 “사람도 죽고 국가들은 흥하고 망하지만 신념은 살아남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미국의 젊은이들이 모든 진리는 개인적이고 주관적이라는 가치관을 계승하고 있다. 우리는 더 이상 결혼이나 젠더의 정의, 자연사나 종교의 중요성, 공동선과 같은 생명 가치에 대한 도덕적인 기준을 가지고 있지 않다.

공동체와 관용은 그러한 문화에 남겨진 최고의 가치다. 모든 진리가 “나의 진리”가 된 이후, 우리는 모든 사람들을 포용해야 하고,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모든 것을 용인해야 한다는 말을 듣는다.

그러한 가치관은 분명 비논리적이다. 절대적인 진리와 같은 것은 없다는 주장만이 절대적인 진실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은 비현실적이다. 모든 진리가 주관적이라면 반유대주의나 백인우월주의와 같은 끔찍한 이데올로기들을 비난할 객관적인 근거는 무엇인가?

우리는 이웃에게 해를 끼친다는 이유로 그런 이데올로기들을 거부할 수 있고 거부해야만 한다. 그러나 그런 사상의 지지자들은 우리의 거부가 그들과 그들을 대표하는 사람들에게 해를 끼친다고 반박할 것이다. 극단적인 지하디스트들은 수 세기 동안 서구가 이슬람을 공격했다면서 9/11을 정당화했다.

고로 공동체와 관용 너머로 나아갈 수 없는 윤리는 모두에게 해롭다는 결론이 나온다.

포스트 크리스천 시대에 크리스천들은 복음을 전파할 제3의 방법을 가지고 있다. 예수님은 세상을 놀라게 하고 변화시키는 수준에서 공동체와 관용을 옹호했다. 그는 이방인과 사마리아인과 세리와 나병환자와 창녀를 환대했다. 예수님은 그들의 실패와 도전에 관대하셨으며, 당신이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치유와 은혜를 베푸셨다.

예수의 제자들은 그분의 본을 따랐다. 그들은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했고”(행 2:44),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주었다”(행 2:45). 그들은 유대인과 헬라인과 종과 자유인과 남자와 여자를 환영했다(갈 3:28).

그 결과 천국은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무리”(계 7:9)로 채워질 것이다.

성경적인 크리스천들은 성서의 진리가 금지하는 가치들을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러나 동성애와 낙태와 같은 문제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증오가 아니라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한 이분법적인 주제에 대해 문화적 압력에 굴복하는 게 더 쉬울지 모르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항상 우리에게 최선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의 도전은 “탈 진리”의 문화에 대해 성경적 믿음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진리를 말하는 것이다. 우리의 문화는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가능한 공동체와 관용의 은혜를 갈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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