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성장 9

오늘 “영적 성장” 아홉 번째 시간에는 “고난”이라는 주제를 계속 나눕니다. 우리는 삶에서 많은 고난을 경험합니다. 믿는 사람에게도 삶의 고난이 찾아옵니다. 우리가 고난을 어떻게 이해하고, 대응하느냐가 영적 침체를 극복하고 신앙의 성장을 이루는 데 중요합니다. 고난에는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가 숨어 있습니다. 이 은혜를 존 파이퍼 목사의 『암을 낭비하지 마세요』라는 책과 함께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고난은 온전히 하나님만 의지하게 합니다

먼저 고난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만 의지하게 만듭니다. 존 파이퍼는 고난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주께서 암을 허락하신 목적은, 우리 마음을 완전히 무너뜨려 순전히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려는 것이다.” 여기에 고난의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의 고난은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의지하는 마음을 모두 끊고, 하나님만을 온전히 의지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1:9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바울은 마치 사형선고를 받은 듯한 고난을 경험합니다. 그런데 이 고난 속에서 바울은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난의 의미를 찾아냅니다. 자신이 당하는 고난이 나를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는 도구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고난을 통해 나의 교만과 욕심을 내려놓고, 하나님만이 생명과 죽음을 관장하는 삶의 주인임을 인정하고, 그래서 고난 속에서 우리는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을 배웁니다.

중세의 영성가 메히틸트(Mechthild)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메히틸트가 하루는 자기가 오랫동안 겪고 있는 육신의 고통 때문에 괴로워하며 하나님께 그것을 없애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오히려 그것 때문에 기뻐하라고 말씀하시면서 하나의 환상을 보여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왼손에는 고통이라는 붉은 포도주를, 오른손에는 하늘의 위로라는 흰 포도주를 들고 나타나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가장 고결한 사람은 붉은색과 흰색의 포도주를 모두 마시는 사람이다.” 이 환상은 메히틸트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었습니다. 삶의 고난은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와 동일한 무게의 축복이라는 응답입니다. 왜냐하면 고난을 통해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을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삶의 고난 속에서 교만과 욕심과 집착을 모두 내려놓고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는 것을 배우지 못한다면, 우리는 고난을 낭비하는 것입니다.

 

 

고난은 죽음과 그 너머를 묵상하게 해줍니다

고난은 죽음에 대해서 묵상하게 해줍니다. 고난은 우리의 연약함의 끝인 죽음을 묵상하게 하고, 그 속에서 우리의 한계와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을 붙들게 만듭니다. 존 파이퍼가 암 투병을 하면서 가장 은혜 받은 말씀이 데살로니가전서 5:9-10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벌하기 위해 택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을 얻도록 하기 위해 부르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 죽으셔서 우리가 살든지 죽든지 상관없이 그분과 함께 살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쉬운성경)

이 말씀에서 존 파이퍼는 두 가지 은혜를 경험합니다. 먼저 하나님은 우리를 벌하기 위해 택하신 것이 아니라, 살도록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고난을 당할 때, ‘내가 하나님의 벌을 받나? 하나님은 나를 버리셨나?’ 하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고난은 하나님이 벌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살도록 부르신 일입니다.

또 하나 이 말씀에서 경험하는 은혜는 “우리가 살든지 죽든지 상관없이 주님과 함께 산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시각을 넓혀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생명만이 아니라 죽음까지도 관장하시는 주님과 함께 살아가도록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암 투병으로 혹시 생명이 끝난다고 하더라도, 살든지 죽든지 상관없이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을 발견하면 삶에 대한 시각이 확 넓어집니다.

이 말씀의 은혜를 경험하고서 존 파이퍼는 암의 두려움을 넘어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것으로 충분합니다. 우리는 벌 받는 게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살기로 되어 있습니다. 주님을 만나는 그날까지 건강과 질병 그 무엇도 낭비하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모든 것을 사용하길 원합니다.”

고난은 우리에게 생명과 죽음을 넘어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을 갖게 해줍니다. 우리는 살든지 죽든지 상관없이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죽음조차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롬 8:38-39). 고난이 믿음의 사람들에게 죽음을 넘어서는 은혜를 묵상하게 함을 깨닫지 못하면, 우리는 고난을 낭비하는 것입니다.

 

고난은 사랑할 기회를 줍니다

고난은 또한 사랑할 기회를 줍니다. 고난을 당할 때 가장 많이 범하는 실수는 고난이 우리를 고립시킨다는 것입니다. 내가 당하는 고난이 너무나 크고 아파서 다른 사람을 신경쓸 여유를 갖지 못합니다. 오히려 ‘내가 지금 힘든데, 남이 무슨 상관이야?’ 생각하며 이기적인 모습을 정당화합니다. 그런데 빌립보서에는 고난을 당한 한 사람이 보여 주는 믿음의 모습이 소개됩니다. 에바브로디도라는 바울의 동역자는 자신이 당한 고난을 사람들이 알게 되어 걱정한다는 소식을 듣고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너희 무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자기가 병든 것을 너희가 들은 줄을 알고 심히 근심한지라”(빌 2:26). 에바브로디도는 위중한 병중에 자신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소식을 들은 빌립보 교인들을 걱정합니다. 고난조차도 에바브로디도가 사랑하는 자로 살아가는 것을 막지 못한 것입니다.

존 파이퍼는 “고독 속에 숨어 사랑할 기회를 낭비하지 마세요”라고 강조합니다. 고난은 오히려 우리에게 사랑할 기회를 줍니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공감할 수 있는 눈과 귀를 갖게 되기 때문입니다. 고난을 핑계삼아 다른 사람을 사랑할 기회를 놓친다면, 우리는 고난을 낭비하는 것입니다.

 

고난은 예수님을 바라보며 십자가를 지게 해줍니다

마지막으로 고난은 예수님을 바라보게 만듭니다. 존 파이퍼는 암에게 패배하는 순간을 이렇게 말합니다. “암에게 패배하는 순간은 암으로 죽음에 이르렀을 때가 아닙니다. 암 때문에 예수님을 사랑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가 암에 굴복하는 시점입니다.” 우리는 고난을 통해 주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을 배워야 하는데, 오히려 고난 속에서 주님을 바라보기는커녕 삶의 문제만을 바라봅니다. 우리가 삶의 문제에서 눈을 떼서 주님을 바라보기 시작할 때, 고난 속에서 주님을 온전히 의지하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지난 시간 소개해드렸던 참척의 슬픔을 겪었던 박완서 작가의 『한 말씀만 하소서』에는 주님을 만난 순간이 소개됩니다. 아들을 잃은 슬픔으로 몸부림치던 박완서 작가가 어느 날 방안에 있는 십자가상에서 주님을 만납니다. 주님이 십자가 위에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듣습니다. “오냐, 실컷 욕하고 원망하고 죽이고 또 죽이려무나. 네가 그럴 수 있으라고 나 여기 있지 않으냐.” 십자가에서 자신의 모든 고통과 슬픔을 받아내신 주님의 사랑을 발견합니다. 우리의 고난을 대신 짊어지시고, 치유를 주시는 주님의 십자가 사랑입니다. 우리는 고난 속에서 예수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주시는 치유를 의지하고, 주님이 나의 고난 속에 함께하고 계심을 의지해야 합니다.

주님의 음성을 들은 후 박완서 작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저의 경우에 고통은 극복되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고통과 더불어 살 수 있게는 되었습니다.” 예수를 만나면서 이제는 주님과 함께, 고통과 함께 살아가는 것을 배웁니다. 주님처럼 십자가를 지는 삶으로 나아갑니다. 문제를 보지 않고 예수를 바라보니, 주님께서 이 고난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그 힘으로 주님처럼 십자가를 지며 살아가는 삶으로 나아갑니다.

우리의 고난 중에는 때로 주님께서 감당하라고 말씀하시는 고난이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신 십자가입니다. 고난을 당할 때 주님을 바라보며 십자가를 짊어지는 순종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고난을 낭비하는 것입니다.

저작권자 © 크리스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