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본질 ‘사랑’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사랑에는 세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 연인끼리의 사랑입니다.

1980년대 인기가요들 중에서‘사랑만은 않겠어요’ 라는 제목의 가요가 있습니다.  “사랑이 이렇게 괴로울 줄 알았다면 차라리 당신만을 만나지 말았을 것을  (...) 그 시절 그 추억이 또 다시 온다 해도 사랑만은 않겠어요”라면서 사랑의 아픔을 노래한 가요입니다.

유명 가곡들 중에도 ‘사랑의 기쁨’이라는 제목의 가곡이 있고, 인기 있는 바이올린 연주곡들 중에는 크라이슬러가 작곡한 ‘사랑의 슬픔’ 과 ‘사랑의 기쁨’ 이 있습니다. 곡이 간단하면서 아름다워서 바이올리니스트들이 즐겨 연주하며 앙코르로도 많이 연주되는 곡입니다.

‘사랑’은 참으로 귀한 단어입니다. 창조 원리도, 하나님과 인간 관계의 핵심도 오직 사랑입니다. 인류 역사와 개인의 삶 모두 사랑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한편 사랑이란 단어만큼 흔해빠진 단어도 없습니다. 이 귀한 단어를 남발하여 흔해빠진 단어로 전락시킨 것도 엄연한 현실입니다.

like와 love의 의미와 쓰임새가 엄연히 다른데도, 사람들은 그 뜻을 아는지 모르는지 love만 과잉으로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음식에 대해 “It’s delicious.” 혹은 “That taste is really good”이라 말하는 대신, “I love it!”이라 표현합니다.  음식뿐 아니라 물건, 지역에도 love 라는 단어를 쓰면서, love의 품격을 떨어뜨립니다.

죽고 못 살겠다고 love를 남발하며 결혼해 놓고, 얼마 안 가 서로 맘에 들지 않는다며 말다툼을 하고 미워하다가 이혼하는 젊은이들을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목격합니다.

TV 뉴스를 진행하는 아나운서들은 가장 바른말을 구사해야 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은 모습을 보게 될 때마다, 미국 사회에 언어의 혁신이 필요하다고 느낍니다. 특히 영어로 된 합창곡을 연습할 때 언어의 중요성을 실감합니다.

 

대부분의 오페라와 연극, 유행가의 주제는 사랑입니다. 그러나 사랑에 수반되는 기다림과 인내, 희생과 고뇌와 아픔이 행복보다 더 많이 다루어지고, 사랑의 행복보다 사랑의 아픔이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합니다.

경제적인 용어로 사랑은 투자에 비해 수익이 적은 것 같습니다.  사실 사랑에는 득보다 실이 많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의 장’ 이라 불립니다. 그 말씀대로 준행하는 일은 모든 예술품 가운데 최고의 예술품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최고의 예술가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우리가 살아갈 수 있도록 말씀으로 자연을 조정하시는 참으로 자상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태양으로부터 멀리 떨어지지도 않고 가까이 있지도 않게 딱 맞는 장소에 우리들이 사는 지구를 배치하신 최고의 예술가입니다. 지구의 모든 피조물이  서로 어우러지게 하시고, 태양과 달,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별들의 운행을 주관하시는 전능하신 분입니다.

음악 활동을 오랜 세월 해오면서, 저는 음악 속에서 하나님을 끊임없이 느끼곤 합니다. 음악 역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의 한 부분임을 믿습니다.

음악뿐 아니라 모든 예술이 그러합니다. 연주자는 음악으로 듣는 이에게 기쁨과 위안을 주고, 시인은 시를 통해 독자에게 용기와 위안을 주며, 화가는 그림으로 감상하는 사람에게 아름다움을 전합니다. 모든 장르의 예술이 정서를 함양시켜 줍니다.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음악을 선택하는 음악가는 없을 것입니다. 현실적으로‘득’보다 ‘실’이 많은 줄 알면서도, 음악가는 연주할 때 행복을 느낍니다.

모든 연주자들은 고뇌와 인내의 연습 과정을 거쳐 소리가 완성될 때 커다란 행복을 느낍니다. 하지만 그 행복이 오래 가지 않습니다. 단 며칠만 연습하지 않아도 금방 소리가 녹슬고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는 느낌이 듭니다. 연주가들이 항상 겪는 일입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연주가들은 늘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눈-두뇌-근육(손과 발), 이 세 가지 반사신경을 통해 연주가 숙달되어야 하므로, 운동 선수들처럼 날마다 훈련하지 않으면 절대로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습니다.

원하는 결과를 얻기까지, 낙담과 실족, 슬럼프와 신경질, 답답함 을 이겨내고, 두되가 미세한 근육의 움직임을 기억할 수 있을 때까지 반복에 반복을 거듭합니다. 숙달되었다는 것은 두뇌의 명령에 근육 조직들이 즉각적으로 정확하게 반응한다는 것입니다.

일확천금을 꿈꾸며 음악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음악가가 아니라고 서슴없이 말할 수 있습니다.  연주자들은 음악을 진정으로 좋아하기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훈련에 훈련을 거듭합니다. 평생토록 날마다 연습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연주자 모두가 가지고 있습니다.

여담이지만, 연주자들이 저녁 식사 초대를 받아 가정집에서 식사를 할 경우, 피아노나 바이올린 등 전공 악기의 연주를 부탁받는 경우가 있어 당황하곤 합니다. 모임의 여흥으로 지인들이 노래 한 곡 뽑아보라고 성악가에게 가볍게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음악가들에 결례가 된다는 것을 기억해 주길 바랍니다.

예술적으로나 학문적으로 깊게 공부하고 정식 예술무대에서 활동하는 사람에게는 즉석 연주 요청이 잘못일 수 있습니다.  물론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을 기쁘게한다는 점에서 무대나 식사자리에 일맥상통한 면이 있겠지만, 여흥의 자리에 연주를 부탁하는 것은 정식 무대에서 자기를 드러내는 연주자들에게는 거부감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그 곤란한 상황을 목격하고 필자가 잘 설명하여 바로 잡아 준 적이 꽤 많습니다.

미주 한인 교회들 역시 예배를 위해 지휘자니 솔로 성악가를 채용할 때, 실수와 결례를 범하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필자는 성가대 세미나에서 이 점에 대해 자주 설명합니다.

음악가들에게 음악은 자존심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정식무대가 아닌 사적인 자리에서 혼과 땀으로 연마해온 곡들을 연주해 달라면서, “안 나오면 쳐들어간다” 는 식으로 강요하는 건 연주자의 자존심에 생채기를 내는 것과 같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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