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펴냄(2019)

 

‘추방과 멀미 / 상처를 몽땅 흡수한 물건들로부터 달아나기 / 오직 현재 / 여행하는 인간, 호모 비아토르 /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여행 / 그림자를 판 사나이 / 아폴로 8호에서 보내온 사진 / 노바디의 여행 / 여행으로 돌아가다’라는 제목의 산문 아홉 편은 소설가의 유년 시절과, 여행과 소설과 고전과 역사와 철학, 그리고 사진 한 장을 두루 오가며 여행에 대해 사색한다. 여행을 정의하고 여행의 목적과 이유를 다각적으로 포착하는 동안, 인생 자체가 여행이며, 인간 모두 여행자라는 결론에 이른다.

 

“인류는 오랜 세월 서로를 적대하고 살육해왔지만 한편으로는 낯선 이들을 손님으로 맞아들이고 그들에게 절실한 것들을 제공하고 안전한 여행을 기원하며 떠나보내기도 했다. 거의 모든 문명에, 특히 이동이 잦은 유목민들에게는 손님을 잘 대접하라는 계율이 남아 있다.” (‘아폴로 8호에서 보내온 사진’ 일부)

 

“여행자는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든, 결국은 아무것도 아닌 자, 노바디일 뿐이다. 그리스어로는 '우티스', 영어로는 '노바디', 우리말로는 '아무도 안'이다. 허영과 자만은 여행자의 적이다. 달라진 정체성에 적응하라. 자기를 낮추고 노바디가 될 때 위험을 피하고 온전히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노바디의 여행’ 일부)

 

“인간은 왜 여행을 꿈꾸는가? 우리는 이 안전하고 지루한 일상을 벗어나 여행을 떠나고 싶어 한다. 거기서 우리 몸은 세상을 다시 느끼기 시작하고, 경험들은 연결되고 통합되며, 우리의 정신은 한껏 고양된다. 그렇게 고양된 정신으로 다시 어지러운 일상으로 복귀한다. 아니 일상을 여행할 힘을 얻게 된다, 라고도 말할 수 있다.”(‘여행으로 돌아가자’ 일부)

 

“긴 여행을 하다보면 짧은 구간을 함께하는 동행이 생긴다. 며칠 동안 함께 움직이다가 어떤 이는 먼저 떠나고 어떤 이는 방향이 다른 길로 간다. 때로는 내가 먼저 귀국하기도 한다. 그렇게 헤어져 영영 안 만나게 되는 이도 있다. 인간이든 동물이든 그렇게 모두 여행자라고 생각하면 떠나보내는 마음이 덜 괴롭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환대했다면, 그리고 그들로부터 신뢰를 받았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우리는 모두 여행자이며, 타인의 신뢰와 환대를 절실히 필요로 한다. 여행에서뿐 아니라 ‘지금, 여기’의 삶도 많은 이들의 도움 덕분에 굴러간다. 낯선 곳에 도착한 이들을 반기고, 그들이 와 있는 동안 편안하고 즐겁게 지내다 가도록 안내하는 것, 그것이 이 지구에 잠깐 머물다 떠나는 여행자들이 서로에게 해왔으며 앞으로도 계속될 일이다.“(작가의 말 일부)

 

김영하 소설가는 1995년 계간 『리뷰』에 「거울에 대한 명상」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해, 장편소설 『살인자의 기억법』 『너의 목소리가 들려』 『퀴즈쇼』 『빛의 제국』 『검은 꽃』 『아랑은 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소설집 『오직 두 사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오빠가 돌아왔다』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호출』, 산문집 삼부작 『보다』 『말하다』 『읽다』 등을 출간했다.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를 번역했다. 문학동네작가상, 동인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만해문학상, 현대문학상, 이상문학상, 김유정문학상, 오영수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그의 작품들은 현재 미국, 프랑스, 독일, 일본, 네덜란드, 터키, 일본, 이탈리아 등 해외 각국에서 번역 출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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