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에서 감정을 빼면 남는 건 건조한 교리밖에 없다."

로욜라의 이그나티우스(위키피디아)

로욜라의 이그나티우스

분별 과정에서 감정이 중요하다는 것을‘구체적으로’ 알려준 이는 로욜라의 이그나티우스 성인(1491~1556)이다. 그는 하늘에 속한 소위 ‘영성’을 우리가 속한 땅으로 가져온, 실질적인 방법으로 영성훈련을 하도록 안내한 영적 지도자이다. 그가 창시한 가톨릭 예수회는 그의 정신과 실질적인 영성훈련 방법을 통해 일체감을 만들어 왔다. 모든 분별 기준은 이그나티우스가 세운 ‘영성훈련’에 기초하고 있다. 이것은 공동체의 문제 해결에서 예수회 소속 신부들의 공통분모가 되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그나티우스의 영성훈련과 분별의 기초가 바로 ‘감정’이라는 점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분별 과정은 우리의 감정 상태를 점검하는 데서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런 내적 감정이나 정서적 성찰을 위해 그는 ‘양심’과 ‘의식’의 점검을 권고한다. ‘하루에 20~30분 정도!’ 『분별의 기술』의 저자이자 가톨릭 갈멜수도회의 영적 지도자인 어니스트 라르킨(Ernest Larkin)의 말은 이때 적절하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것이 일상의 삶과는 이질적인, 하나의 부차적인 행위일 뿐이라고 생각한다면 결코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잘 살아가는 만큼 잘 분별할 수 있으며 잘 분별하는 만큼 잘 살아갈 수 있다.”

날마다 의식적이고 이성적인 접근을 통해 우리는 감정이 어떻게 반응하고 행동하는지를 면밀히 관찰하면서 성령의 움직임에 민감해진다.

이그나티우스가 다루는 영성과 분별의 핵심에 ‘가장 믿을 수 없고 증명하기 힘든’ 감정이 자리잡고 있다고 해서, 이 성인이 남긴 분별의 지혜를 무시하는 것은,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것과 같다. 신앙에서 감정을 빼면 남는 건 건조한 교리밖에 없다. ‘감정 없는 신앙은 없다!’

존 웨슬리(위키피디아)

존 웨슬리

감리교의 설립자 존 웨슬리(1703~1791) 목사가 살았던 18세기 영국에선 신앙의 영역까지 ‘이성’이 독차지하고 있었다. ‘오직 성경으로(Sola Scriptura)’의 주창자 마르틴 루터의 영향이 가시지 않은 시대였다. 웨슬리는 옥스포드 출신답게 성경을 우선시했고, 거기에 전통과 이성을 포함시켰는데, 마지막으로 ‘체험적 신앙’ 즉 성령의 증거를 포함하여 ‘자랑스런’ 광신자 반열에 올랐다.

웨슬리에게 신앙은 성령 체험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의 회심의 결정적 증거는 엠마오의 제자들처럼 마음이 뜨거워지는 경험이었다. 그래야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이었다.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롬 8:16).

그에게 분별 과정은 성령의 내적 증거와 그에 수반하는 내적 평화와 기쁨에 근거해 이루어졌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자신이 상상해 낸 목소리를 하나님의 성령의 증언이라고 착각하며, 사탄의 일을 행하면서도 자신들은 하나님의 자녀라고 제멋대로 상상하고 있는가?”
웨슬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감정은 ‘기쁨’이다. 하나님과의 연합에서 오는 기쁨이요, 하나님의 양자가 됨으로써 얻는 기쁨이다. 그 기쁨을 원천으로 그가 창시한 감리교는 이웃을 위한 섬김의 모범이 되었다. 의무적인 봉사와 섬김이 아니라, 주의 자녀라는 특권을 얻은 데 따르는 자연스런 반응이었다.

위대한 사상가이자 수학자인 블레이즈 파스칼이 회고록에서 밝힌 ‘기쁨’은 곧 그의 믿음의 상징이기도 했다. “오, 의로우신 아버지, 세상은 당신을 알지 못했어도 나는 당신을 알았나이다. 기쁨, 기쁨, 기쁨, 기쁨의 눈물.”

조나단 에드워즈(위키피디아)

조나단 에드워즈

영국의 존 웨슬리와 동시대인이면서, 미국 식민지 시대에 대각성 운동을 이끈 청교도 조나단 에드워즈(1703~1758)는 신앙에서 감정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구체적으로 연구한 선각자이다. “진정한 종교는 상당 부분 거룩한 정서로 구성된다.”고 말한 그는 감정을 좀 더 복합적인 의미를 가진 ‘정서(affectivity)’로 격상시켰다. 그가 말하는 정서란, “단순한 감정이나 정신적 선호 이상의 것으로, 생각, 느낌, 그리고 행동의 조화로운 상호작용, 다시 말해 정신과 의지와 느낌의 조화로운 상호작용”이다. 그는 일례로 회개는 잘못에 대한 단순한 자책 이상의 감정이라고 말했다. 베드로는 회개 후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기까지, 멀리서 닭 우는 소리만 들려도 울었다는 일화만 보더라도, 회개는 일회성 감정이 아니라 우리의 영혼 가운데 새겨진 감정과 정신과 의지의 결합체라고 보아야 한다.

에드워즈는 『종교적 정서론』에서 정서나 감정이 성령의 역사인지 아닌지를 구분할 수 있는 구체적인 기준들을 제시했다.

제임스 패커를 비롯한 이성적인 성경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인간의 상상력과 성령의 감동 간의 혼동에 대해서, 에드워즈는 “상상 안에서 대단한 인상을 받았다는 것 때문에 하나님의 영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고 주장할 수 없다.”고 말한다. 상상력과 성령의 역사를 구분할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또한  그는 성령을 받거나 성령 안에 있다고 해서, 행위적으로 완전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성령의 역사는 인간적인 척도로 판단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그는 성령과 성경의 연관관계에 대해서 “정서가 놀랍게 성경 구절을 마음에 불러일으켰다고 해도, 그 종교적 정서가 진정 거룩하고 영적이라는 표지는 아니다.”라고도 말했다. 이는 성경만이 답이라고 생각하는 자들에 대한 경고였다. 그러면서 에드워즈는 성령 받은 자는 본성이 변하게 되고, 하나님의 명령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 사랑, 그리고 삶과 믿음에서 조화와 균형을 찾게 된다고 말했다.

그의 주장은 그의 신앙적 배경인 미 동부 뉴잉글랜드 지방의 영적 대각성 운동과 이를 반대하는 자들 사이에서 성령의 역사에 대한 분명한 기준을 제시하려는 의도에서 시작됐다. 그의 성령론은 3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또한‘무엇이 성령의 역사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때, 『성령과 분별』에 기록된 제임스 패커의 주장도 좋지만, 조나단 에드워즈의 기준이 더 구체적이고 실질적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 건 성령의 은혜로운 정서나 감정을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는 목회자적 권위로 이런 주장과 기준을 제시했지만, 이런 성령의 역사에 대한 우리의 감정적 혼동과 복잡성에 대한 대안인 공동체적인 분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가 살았던 18세기에 하늘이 내려준 신분인 목사가 회중과 공동으로 분별을 논한다는 것은, 조선시대에 양반과 상놈이 한 자리에서 밥을 먹는 수준의 배은망덕이 아니었을까? 공동체적인 분별은 나중에 다루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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