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3월 6일에 개봉되는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영화 ‘Onward’에 공개적으로 LGBTQ 캐릭터가 등장한다. 지난해에는 영화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에서 동성애자의 키스 장면이 나왔고, ‘마녀와 야수’ 리메이크 작에는 디즈니 역사상 첫 게이 캐릭터가 등장했다.

놀랄 필요는 없다. 디즈니 월드는 1991년부터 게이의 날 행사를 후원해왔다. 1996년, 디즈니사는 게이 파트너들에게 혜택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디즈니사는 오랫동안 문화적인 영향을 끼치면서, 선두에서 LGBTQ 행위들을 정상화시켜 왔다.

이것은 오늘의 문화를 보여 주는 일례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복음주의자들은 최근 미국의 도덕적 궤적에 실망하고 있다. 1960년대의 성의 혁명, 1973년의 낙태 합법화, 무과실 이혼의 증가와 그것이 결혼과 가족에 미치는 악영향, TV와 영화를 통한 게이 캐릭터의 대중화, 온라인 포르노의 수요 급증, 동성결혼의 합법화 그리고 안락사 증가를 지켜봐 왔다.

나타나엘 블레이크는 「페더럴리스트」에 기고한 글에서 우리의 세속 문화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세속 문화권의 많은 사람들이 고대인의 선악의 관점에서 생각하지 않으며, 원죄와 개인의 죄에 관한 기독교의 가르침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세계와 사회 질서와 우리 자신의 불완전성은 날마다 경험하는 근본적인 인간 현실로 남아 있다.”

다수의 사람들은 대안적인 세계관을 구축해 왔다. “권력과 특권, 억압에 대한 분석과 아울러 그들의 상호교차적 좌익 이론들은 기독교의 원죄 교리와 흡사한 기능을 한다. 사회 정의와 불의에 대한 그들의 생각에 따르면, 세상의 문제는 우리가 인종, 계급, 성별, 성 정체성을 중심으로 구축된 계층 및 권력 구조에 의해 나뉘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이러한 구조 하에 태어났으며, 이는 우리 문화에서 일종의 원죄로 기능한다. 그러나 그의 말에 따르면, “우리는 우리의 특권을 확인할 수 있고, 거기서 비롯된 억압의 시스템들을 해체하기 위해 일할 수 있다.”

“다양한 노력들과 소외 계층의 수용”은 일반적인 억압 체제 속에서 우리가 저지를 수밖에 없는 잘못에 대한 보상으로 필요하다.“ 크리스천들이 원죄와 개인의 죄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하나도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그들도 소수자에 대한 제도적 차별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하나도 없다고 말한다.

그 결과, 낙태의 권리, 성소수자의 권리 혹은 안락사의 권리를 지지하는 것이 인종적 소수의 시민권을 지지하는 것과 유사해졌다. 희생자에 대한 사회적 억압에 저항하는 것이라 말한다.

어제 하비 와인스타인의 유죄 판결은 미국에 성범죄가 만연해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질병통제예방센터에 따르면 여성 인구의 1/3, 남성 인구의 1/4이 물리적 접촉을 포함한 성폭행을 경험했다. 여성의 1/5은 강간이나 강간 시도를 당했다.

어제(24일), 영화 ‘히든 피겨스’의 실제 주인공인 수학자 캐서린 존슨이 101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그녀는 나사에서 그녀를 비롯한 흑인 여성이 경험한 인종차별을 상기시켜 준다. 우리 사역 팀과의 인터뷰에서 작가 제마르 티스비는 인종차별이 우리 문화에서 비극적으로 지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폭력의 희생자(시편 11:5), 가난한 자(잠언 17:5), 억압받는 자(시편 103:6)와 인종차별을 당하는 자(행 10:34-35)의 편에 서신다고 분명히 말한다. 예수님은 반복적으로 소외된 자(요한복음 4장)와 희생자(마 8:28-34; 눅 10:25-37)의 편에 서셨다.

그런데 그들이 말하는 희생이 성경적인 도덕과 충돌할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낙태 지지자들은 여성이 낙태 반대자에 의해 희생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낙태 반대자들은 순진무구한 태아가 낙태에 의해 희생되는 거라 말한다. 트랜스젠더 운동가들은 젠더 불쾌감을 주는 사람들을 희생자라고 생각한다. 젠더는 양자택일이며 출생 시에 결정된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트랜스젠더 이데올로기에 복종하는 사람들을 피해자로 본다.

그렇다면 종교적인 신념 때문에 희생당하는 이들은 어떠한가? 영국의 새로운 보고서에 따르면, 예술이나 문화에 종사하는 열 명 중 여덟 명은 보수적인 의견을 말하면 “직업적으로 배척당하거나 괴롭힘을 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유사한 미국 보고서에 따르면, 보수주의자들의 2/3는 후폭풍이 두려워 자신의 생각을 교실에서 말하지 않는다.

우리는 내일도 중요한 토론을 할 것이다. 신앙적 확신 때문에 대가를 치르는 것은 크리스천들에게 새로운 일이 아니다. 구타당하고 살해당한 사도들로부터(행 5:40; 7:58-60) 화형을 당한 순교자들과 오늘날 대량학살의 위기에 직면한 신자들에 이르기까지, 크리스천들은 “세상에서 환난을 당할 것”(요 16:33)이라는 예수님의 경고를 이미 알고 있다.

그러나 박해 속에서의 담대함은 우리의 복음 증거를 강화시켜 준다. 신앙 때문에 치르는 대가가 클수록, 더 많은 이들이 우리의 신앙적 확신의 진실성을 볼 것이다. 이 세상에서 예수를 위해 고통을 겪으면 겪을수록, 다음 세상에서 받게 될 상은 더 커질 것이다(계 6:9-11; 7:14).

(* 편집자 주 : 문화사역자 짐 데니슨 박사의 2월 26일 칼럼 일부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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