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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지의 위력
곽성환 목사  |  PMI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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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3.19  06:4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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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시도 끝에 드디어 화장지 구입에 성공했습니다. 남들이 산다기에 사려 했던 것은 아니고 실제로 화장지가 떨어져가고 있었습니다. ‘몇일 가다 말겠지’ 했는데, 휴교 조치로 아이들이 돌아오게 되어 늘어날 소비량에 대한 최소의 준비가 필요했습니다. 네 번째 시도하는 오늘,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을 가지고 개장시간에 맞추어 마트에 도착했습니다.

뉴스에 나올 정도는 아니었지만 매장 문 앞에 10여 명이 서 있었고, 7시가 임박하자 주차되어 있던 차 안에서 하나둘씩 나오더니 금세 20여 명이 되었습니다. 비장함마저 느껴지는 표정들. 그때 누군가가 미국인 특유의 스몰 토크를 건네며 농담을 했습니다. 피식하며 보일 듯 말 듯 입가에 미소만 짓던 사람들이 계속되는 그의 말에 하나둘씩 반응하면서, 긴장감도 줄고 분위기도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그는 말 그대로 화평케 하는 자였습니다.

드디어 점원이 문을 열었습니다. 어떤 매장은 5분만에 다 팔렸다는데 오늘 간 곳은 그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한 시간 안에 하루 분량이 다 팔린다고 했습니다. 드디어 한 팩을 집어 들었습니다. 안도감과 성취감. 화장지를 산 데 대한 기쁨이 이 정도일 줄이야. 사재기 현상을 심리학적으로 분석한 기사의 사례가 된 셈이었습니다.

혹시 ‘아빠 오늘도 무사히’라는 문구가 적힌 그림을 기억하십니까? 어렸을 적 시외버스 운전석 위에서 자주 보았지요. “밤새 안녕하셨어요?”, “식사하셨어요?”라는 인사말이 새삼스럽게 마음에 다가듭니다. 요 며칠 동안 “화장지 사셨어요?”라는 인사를 들었습니다. ‘사회적 거리 두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고립감이 주는 불안을 이겨내 보고자 여기저기 전화하며 안부를 묻습니다. 어떤 이들은 상대의 입에서 힘들다는 말을 들으면서 불안감을 덜어냅니다. 자기 혼자 힘든 게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지요.

고난 속에서 살아왔던 유대인들이나 초기 기독교 성도들이 만났을 때 하는 인사말은 “샬롬”(히브리어) 또는 “에이레네”(헬라어)였습니다. 원치 않는 사건과 상황 때문에 기본권을 누릴 수 없었던 시대, 안전에 대한 기본적 바람이 충족되지 못했던 시대에 서로 격려하던 인사말이자 기원의 말입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제자들이 모인 곳에 오신 장면을 기억하시나요? 그때 하신 말씀도 “평강이 있을찌어다(peace be with you)” 였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장면 하나. 주님은 “그들 한가운데(in the midst of)”에 서셨습니다. 상실감과 두려움으로 문을 닫아걸고 모여 있는 그들에게 평화의 진원이 되신 것입니다. 부활의 첫 열매, 죽음을 극복한 첫 우승자의 자격과 권위로 말입니다. 예수님은 그곳과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마음을 다스리기 시작하셨습니다.

불안한 뉴스로 불안한 자신을 위로하는 것은 어리석은 방법입니다. 막연한 염려는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 부활의 주님을 마음과 걱정의 ‘한가운데로’ 모시길 빕니다. 그러면 그분에게서 나오는 평강의 파문이 동심원을 그리며 마음의 바다로 펴져나갈 것입니다.

의심스러우면 도마처럼 검증해 보십시오. 성경을 읽고 말씀을 하나하나 실습해 보십시오. 일주일 또는 한 달 동안 유효한 화장지의 위력보다, 근원적이고 영속적인 생명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풍랑이 잔잔해지는 오늘 하루가 되길 빕니다. 풍랑 속에서 바다 위를 걷는 하루가 되길 빕니다.

멀지 않은 장래에 오늘을 돌아보며 남들에게 말할 수 없는 부끄러운 행적을 남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반대로 그때 이렇게 행동했다고 자랑스레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행동을 하게 만든 믿음의 주, 온전함의 모델이신 예수 믿기를 참 잘했다고 감사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통치 아래 우리에게 주어진 특별한 시간입니다. 강퍅함과 완고함, 공멸로 이어지는 시간이 아니라, 믿음의 실체가 드러나는 시간, 그리고 참 평강의 근원을 새롭게 발견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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