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5일은 우리나라에서 정한 식목일이다. 

일제 강점기, 일본인들이 산의 나무란 나무는 모조리 베어서 자기 나라로 보내버리는 바람에 우리의 강산은 황폐해지고 말았다.

중학생 시절 방학 때에 마을 뒷산 사방공사에 나가서 민둥산에 나무를 심으며 생활비를 벌기도 했다. 농한기엔 동네 사람 모두가 산으로 올라가서 나무를 심었다. 감독이 일하는 것을 지켜 보았다가 등급을 매겨서 임금을 차별 지급했는데, 일을 대충 하고도 최고 등급을 받는 이들이 있어 씁쓸했던 기억도 있다.

경기도 양주군청 산림과에 근무할 때가 가장 바빴다. 커다란 짐차에 묘목을 가득 싣고 이 마을 저 마을 배당해 주려고 밤낮없이 돌아다녔다. 봄이 와서 물러진 땅에 차가 빠져서 고생을 하기 일쑤였고, 비탈길을 오르지 못해 뒤에서 밀며 흙탕물을 뒤집어 쓰는 일이 매일 같이 반복되던 고된 시절이었다.

인도의 어느 작은 마을의 촌장이 갑자기 사랑하는 어린 딸을 잃었다. 딸을 잃은 슬픔을 견디지 못하던 촌장은 며칠 후 털고 일어나서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무려 백 열한 그루를 심었다고 하는데 그 연유는 잘 모르겠다. 묵묵히 나무를 심는 촌장을 도와 마을 사람들도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그러다 누군가가 앞으로 마을에서 딸이 태어날 때마다 나무를 111그루씩 심으며 축하를 해주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그때부터 마을에 딸이 태어나면 사람들은 모두 111그루의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6년이 흐른 뒤 무려 4만여 그루의 나무들이 마을 주변에 심어졌다. 이후 어떤 나무들은 동물의 습격으로부터 마을을 지켜줬고, 어떤 나무들은 잔뜩 과실을 맺어 마을의 식량이 되었고, 이웃 마을에 내다 팔 상품이 되었다.

그러나 이보다 더 기쁜 일은 이 좋은 풍습으로 인해 여성의 인권을 중요시하지 않던 인도 전역의 모습과는 달리 이 마을에서는 딸의 탄생을 누구보다도 축복하고, 여자들이 매우 존중받는 문화가 생기게 된 것이다. 딸을 잃은 슬픔을 극복하고, 조금 더 나은 상황을 만들기 위한 작은 행동이 한 마을의 문화와 가치관을 통째로 바꿔놓았던 것이다. 사실 나무 111그루는 작은 행동일 수 없다. 눈물을 삼키는 커다란 결단이다.

오늘 기도하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Covid-19의 19라는 숫자를 깊이 묵상하면서 매년 열 아홉 번 혹은 그 이상의 선한 일을 하리라고 작정했다. 두어 달 전 손님 집에서 공사하며 무보수로 손님 집의 화장실 변기를 손봐 준 것과 달포 전 차가 고장이 나서 길에 갇혀 있던 이웃을 도와 준 일과 이틀 전 코로나바이러스 비말 방지용 플라스틱 가림막 설치를 해준 두 건을 더해 이미 4건의 선행을 했으니, 2020년에 남은 선행은 이제 열 다섯 번이다. 그까짓 거 못할 것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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