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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문을 두드릴 때요한복음 11:17-37
허영진 목사  |  revhu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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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4.15  03:3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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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찾아와 문을 두드립니다. 지금은 행복해 보여도 언젠가 슬픔이 찾아옵니다. 마리아와 마르다는 예수님의 친구였지만, 오라비 나사로의 죽음으로 찾아온 슬픔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슬픔이 을 때 어디서 도움을 얻을 수 있을까요?

슬픔이 찾아온 곳에 친구도 찾아옵니다. 사람들이 마리아와 마르다의 집에 문상을 왔습니다. 사랑과 믿음의 공동체 안에 살면, 슬픔을 당할 때 친구들로부터 위로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슬플 때 혼자 있기를 바랄 것이라고들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가장 큰 선물이 친구입니다. 슬플 때 친구들의 방문과 위로가 꼭 필요합니다. 슬픔은 나누면 가벼워지고 감당하기 쉬워집니다. 슬픔이 찾아간 곳에 사람도 찾아가야 합니다.

슬픔의 표현은 서로 다를 수 있습니다. 마르다는 나가서 예수님을 맞았고, 마리아는 집에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울었고(33) 마르다는 울지 않았습니다. 예수님도 우시고 유대인들도 울고 마리아도 울었지만 마르다는 울지 않았습니다. 나사로를 덜 사랑했기 때문일까요? 믿음이 더 강했던 것일까요?

슬플 때에는 당연히 울어야 한다고도 하고, 믿음이 강하면 울지 않는다고도 합니다. 사내대장부는 울면 못 쓴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두 근거 없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이 우셨습니다. 슬프면 울어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억지로 울 것은 없습니다. 자기 감정에 정직하면 됩니다. 나사로를 한 결같이 사랑했던 자매 중 마르다는 울지 않았고, 마리아는 울었습니다. 슬픔의 표현은 각각 다를 수 있습니다.

죽음을 통보 받으면 그 반응이 네 단계로 나타납니다. 첫 단계는 거부와 분노입니다. “그럴 리 없다.”고 반박합니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느냐?”고 항변합니다. “저 친구는 멀쩡한데, 왜 하필이면 나냐?”고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화를 내도 좋습니다. 하나님은 너그러우셔서 “요놈!” 하고 혼내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 물어도 좋지만 일정을 정해 놓고 응답을 강요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둘째 단계는 흥정입니다. “하나님, 살려만 주시면, 평생 하나님만 섬기겠습니다. 고쳐 주시면 봉사하겠습니다. 십일조를 바치겠습니다.”

셋째 단계는 낙심입니다. 캄캄한 절망의 먹구름에 둘러싸여 주저앉습니다.

넷째 단계는 현실 수용입니다. 절망에서 일어섭니다. 소망을 찾기 시작합니다. 포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합니다.

슬픔이 오면 하나님께 “왜?”냐고 묻습니다. 마리아와 마르다가 말했습니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내가 필요할 때 하나님은 왜 여기 계시지 않았습니까?” 이런 질문입니다.

고난의 이유는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기독교 신학이 오랜 씨름 끝에 찾아낸 몇 가지 대답이 있습니다. 우리의 유익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고난을 허용하셨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고난을 통해 우리를 연단하신다고 합니다. 하나님 자신의 고난이 인생을 변화시킨다고 합니다. 왜 고난 당하고 왜 슬퍼해야 하는지 알고 싶습니다. 그러나 안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지지 않습니다. 지식이 잃은 것을 찾아 주거나 죽은 것을 살려내지 못합니다. 대답을 얻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오셔서 함께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마리아와 마르다가 슬퍼할 때 찾아가셨습니다. 우리가 필요할 때 위로의 성령이 찾아오십니다. 오신 하나님께 귀를 기울이길 바랍니다.

슬픔이 오면 주님 말씀을 기억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 11:25-26). 이것을 믿는다면 슬픔이 찾아와도 살아남고, 성장하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사망을 이기신 그 승리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슬픔이 영적 유익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슬픔이 찾아와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게 되기를 기다릴 필요는 없습니다. 고난이 사람을 좋게 만들기도 하지만, 나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성도는 원치 않는 인생의 변화에 미리 대처합니다. 음침한 골짜기와 고통스러운 결별을 미리 준비합니다. 슬픔이 무엇을 주든지 믿음으로 접근하는 사람은 고통을 느끼고, 분노가 있고, 대답을 기다리고, 예수님의 말씀이 믿는 자에게 약속한 승리를 기대할 수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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