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 명칭이 ‘궤도 잔해’(Orbital Debris)인 우주 쓰레기는 우주 공간 특히 지구 궤도를 따라 떠도는, 수명이 다한 인공위성이나 인공위성의 잔해를 말한다. 세계 각국이 우주 개발에 뛰어들면서 우주 쓰레기도 증가했다.

발사된 중국 로켓의 동체가 수십 년 후 지구에 통제 불능의 상태로 떨어진, 우주 쓰레기 중 가장 큰 조각으로 기록되었다. 미 우주군의 제18차 우주통제편대에 따르면, 14일 오전 다행히 부상자 소식이 없는 가운데, 아프리카 서안에 잔해가 흩어졌다 몇 분만 미리 대기권에 진입했어도, 사과 만한 크기의 잔해들이 쏟아졌을 것이다.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은 또 다른 나쁜 뉴스는 아시아의 “살인 말벌”이다. The Conversation에 실린 어느 곤충학자의 글에 따르면, 아시아의 거대한 말벌은 자신의 둥지를 방어하면서도 사람들이 공격하지 않으면 사람을 공격하지 않는다. 일본에서는 말벌의 침으로 인한 사망률이 0.00001%이다. 그런데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말벌은 길이가 2인치이며, 사람들에게도 치명적일 수 있는 침을 가지고 있다.

레드 삭스의 기자 크리스 코틸로는 야구 경기 시즌이 연기되어 시간이 많아지자, 자선단체를 돕기 위해 스포츠 물품들을 경매하여 5만7천 불을 모금했다. 다른 이들도 가담해 전체 모금액은 10만 불이 되었다.

Travel Travia 웹사이트는 “유행병 이후 세상의 변화를 위한 7가지 여행 비결”을 소개했다. 그중 한 가지를 소개하면, “집 가까이 여행하면 탄소 배출량을 줄일 수 있고 야생 동물은 늘어날 것이며, 우리는 더 자주 그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비행기와 호텔은 상상 이상으로 깨끗해질 것이다.“

보도되지 않는 나쁜 소식은 좋은 소식이다. 도전들은 기회가 될 수 있다. 우리 문화에서 참인 것은 우리 영혼에서도 참이다.

최근 성경 공부를 하다가, 하나님께서 얼마나 자주 당신의 말씀과 뜻에 전심으로 무조건 순종할 것을 요구하시는지를 보고 감탄했다. 일례로, 갈렙은 하나님께 전적으로 순종하여(민수기 14:24),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있었다. 최근 시편 119편을 읽고 있는데, ”내가 주의 말씀을 지키려고 발을 금하여 모든 악한 길로 가지 아니하였사오며‘(시119:101)와 “내가 범사에 모든 주의 법도들을 바르게 여기고 모든 거짓 행위를 미워하나이다”(시 119:128)란 구절들을 발견했다. 히스기야 왕의 기도 “내가 주 앞에서 진실과 진심으로 행하며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이사야 38:3)도 읽었다.

분명 주님은 우리가 당신의 말씀과 뜻에 굴복하기를 원하신다. 주님은 우리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길”(롬 12:1) 원하시고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길” 원하신다. 그리하여 우리는 “더 이상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갈 2:20)이라 말할 수 있다.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께 순종해도 하나님은 더 많은 순종을 원하신다. 이러한 부름은 나쁜 소식처럼 들린다. 이 나쁜 소식이 실제로 매우 좋은 소식이라는 걸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당신을 찾아온 마지막 유혹을 떠올려 보라, 그때 저항감이 마치 상실처럼 느껴지지 않았는가? 죄짓기를 거절한다는 건 아무런 보상 없이 당신이 행하고, 말하고, 가지고, 혹은 느끼고 싶은 무언가를 포기하는 일이다.

우리를 유혹하는 건 모두 눈에 보이고, 행하거나 말하거나 가지거나 느낄 수 있는 일들이다. 그것을 거부한다 해도 얻을 것은 없다. 이는 이윤 없는 기업에 돈을 투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럴 때 갈등을 느끼는 것은 믿음의 부족 때문이 아니다. 우리 모두 갈등을 겪는다. 우리가 어떻게 혹은 왜를 확인할 수 없을 때조차 하나님의 말씀과 뜻이 우리에게 최선이라 믿겠다고 결정하면 신앙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러한 헌신을 위해 하나님 아버지께서 과거에 당신에게 신실했던 시간을 모두 기억하라. 예를 들어, 신명기에서 모세는 약속의 땅에 들어갈 준비를 하는 유대인들을 격려하기 위해 기적 이야기들을 반복해 들려 주었다. 하나님의 성품은 변하시지 않기에(말 3:6), 하나님께서 하신 모든 일을 지금도 하실 수 있다.

당신이 마주치는 유혹과 도전들을 당신의 신앙과 성품을 키워 주는 기회로 바라보라. 보스턴에 있는 성공회의 성 요한 복음전도자협회의 커티스 암퀴스트 형제는 “인생의 숱한 환경 속에서 우리는 선택하지 않은 사람, 대하기 힘든 사람과는 삶을 나누지 않는다. 수도원의 전통은 종종 아주 많이 대하기 힘든 사람들을 ’스승‘이라 부른다. 그들은 우리 자신에 관해 가르쳐 준다. 그들은 스스로 보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게 해준다.”라는 글을 썼다.

어려움이 클수록 우리를 구해 줄 하나님을 더더욱 찾게 된다. 유행병 사태 속에서 미래와 관련해 하나님을 신뢰할 수 없다면 하나님께서 과거에 당신을 신앙으로 이끌어 주신 시간을 기억하라. 어려운 상황이 두렵다면, 아버지 하나님께서 필요를 채워 준 그때를 기억하라. 유혹을 받고 있다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순종을 축복해 준 때를 기억하라.

지금 그분께 믿음을 드러낼 기회를 주신 것에 감사하라. 그러한 믿음이 없다면,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막 9:24) 하고 믿음을 구하라.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선택할 힘을 달라고 기도하라.

모차르트는 이렇게 고백했다. “하나님은 우리의 현세적이고 영원한 행복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가장 잘 알고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이라면 모두 좋다는 생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우리 자신을 위로하게 하소서.”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를 신뢰하면 할수록 우리는 당신을 신뢰하는 이들에게만 주시는 것을 더 많이 받게 될 것이다. 톨스토이는 “생명은 하나님의 목적을 수행할 때에만 오직 생명이다.”라고 말했다. 오늘 당신은 “생명”을 경험하겠는가? 

(* 편집자 주 - 문화사역자 짐 데니슨 박사의 5월 14일 칼럼 발췌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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