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료를 받았다. 원고료만큼은 귀하게 써야지 하면서도 마음뿐이다. 통장에 입금된 원고료는 그냥 그렇게 의미 없이 쓰고 만다. 한 시인은 오래 전 원고료를 「긍정적인 밥」이란 시로 읊었다. 내가 좋아하는 함민복 시인이다.

詩 한 편에 삼만 원이면 /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 국밥이 한 그릇인데 /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 만큼 /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데워줄 수 있을까 /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 시집이 한 권 팔리면 /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 박리다 싶다가도 /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나는 아직 전문성을 갖춘 작가가 아니기 때문에 원고료를 운운할 때는 아니다. 하지만 더러 원고료를 받게 되면 그 돈의 가치를 나름 고상하게 생각한다. 하긴 요즘 현금보다 문화상품권이나 다른 대용화폐로 받아 요긴하게 쓰기도 한다.
나의 본격적인 글쓰기는 교도관이 되고부터이다. 교도관의 교양 잡지인 월간 ‘교정(矯正)’은 내게 여러 모로 유익했다. 당시만 해도 200자 원고지에 육필로 써서 등기 우편으로 투고했다. 원고료도 박하여 매우 적었지만 소중했다. 더 소중하게 여긴 건 야근 수당이었다. 지금처럼 현실화되지 않은 미미한 액수였다. 선번이면 20시에서 01까지, 후번이면 01시에서 06까지 격일 야근은 그야말로 파김치가 되는 비번 날이었다. 그렇게 고통의 산물로 여겨지는 야근비였다. 

소설가 김훈 선생은 자신의 원고료를 야근비에 비유했다. 잠을 자지 않고 밤을 새워 원고를 썼다면 보통 야근비가 아닐 터이다. 그는 여전히 연필로 육필 원고를 쓰고 있는데, 원고지 10장을 쓰려면 50장 이상은 버려야 하고, 책상 옆에는 지우개 가루가 눈처럼 쌓인다고 하였다.

또 김훈 선생은 「돈」이란 제목의 산문에서 이런 고백을 하고 있다. “돈을 벌어야 한다. 우리는 기어코 돈을 벌어야 하는 것이다. 노동의 고난으로 돈을 버는 사내들은 돈을 사랑할 수 있게 된다. 돈은 지엄(至嚴)한 것이다.” 

돈은 이렇게 노동이라는 고통의 산물일 때 진정한 가치가 있다. 그런 원고료와 야근비이기에 정말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쓰고 싶었다. 생각하다가 무기수를 비롯한 장기수에게 가죽 성경과 찬송가를 사서 선물로 주기 시작했다. 그들은 일찍이 기도하며 전도로 맺은 열매들이었다. 형(刑)이 확정되면 지방에 있는 교도소로 이감(移監)을 가게 되는데, 나는 그 형제들에게 이 값진 선물을 안겨 준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그 돈은 영적(靈的)인 가치를 지녔다고나 할까. 그 까닭에 나와 특별한 관계가 된 장기수 형제들과는 편지를 주고받았다. 그게 15년 동안이나 기쁘게 감당한 ‘민들레 편지’ 사역의 시초였다.

확실히 돈은 귀하다. 그렇게 번 돈을 잘 써야 한다. 잘 쓰는 만큼 가치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돈으로 망하게 하는 게 아니라 흥하게 해야 한다. 죽게 하는 게 아니라 살게 만든다면, 돈은 ‘악의 뿌리’가 아니라, 얼마든지 ‘선의 뿌리’가 될 수 있다. 성경에 나오는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처럼.

모처럼 나도 시 한 편을 탈고했다. 엄밀하게 말하면 미욱한 습작이기에 탈고라고도 볼 수 없다. 그럼에도 이 칼럼의 끝자락에 자작시 한 편을 소개할 참이다. 

 

마가렛

쌍떡잎식물 초롱꽃목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

여왕처럼 다가온 오월이 지날 무렵
흰 꽃들이 오종종 보란 듯 피어
못 본 듯이 볼 수 없네

때 이른 들국화인 줄 알았다가
마가렛이라는 서양 이름이
덜 정겨웠지만

어쩌랴, 온 천지 초록으로 물들고
담장 안 비탈길에 하얗게 하얗게
고개 들고 꿈꾸는 환한 얼굴

얼굴마다 하늘빛 마구 쏟아졌다
나무들 풀들 한들한들 춤을 추고
어린 천사들, 까르르 웃고 있네
 
* 우리말샘(국립국어원)에서 따옴

(* 편집자 주 - 최기훈 장로는 교도소 수감자들의 고충을 들어 주고, ‘민들레편지’라는 쪽지를 만들어 장기수들에게 꿈과 사랑을 심는 일을 오랫동안 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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