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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요한복음 6:1-15
허영진 목사  |  revhu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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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6.26  01:3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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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젊은이들은 배고픔이 어떤 것인지 잘 모릅니다. 굶주리는 사람을 보아도 무감각합니다. 배고파 우는 자녀에게 먹을 것을 줄 수 없는 부모의 마음은 짐작조차 못합니다. 굶주림은 오늘도 전 세계의 당면 문제입니다. 부자 나라인 미국에도 굶주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배고픈 사람들이 허다한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주린 자들을 보내버릴 수 있습니다. 제자들이 무리를 마을로 보내자고 말합니다(마 14:15; 막 6:36; 눅 9:12). 빌립은 2백 데나리온의 떡도 모자란다고 말합니다. 결국 사람들을 보내서 각자 해결하게 하자는 뜻입니다.

우리도 이런 문제를 만나면 다른 데로 보내 버리고 싶은 유혹을 받습니다. TV 화면이나 신문 잡지의 광고나 선교 보고 자료에서 우리를 바라보는 굶주린 자들의 퀭한 눈을 떠올리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I fight poverty. I work.”라는 문구의 스티커가 있었습니다. “굶주리는 것은 일을 안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입니다. 그러나 해마다 굶어 죽는 수백만 명을 보내버릴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혁명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어떤 주석가는 무리 중에 혁명분자들이 많았다고 말합니다. 예수님께 왕관을 바치고 억지로 임금을 삼으려 했다는 것을 보면 그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들은 한적한 광야에 모였습니다. 혁명을 모의하는 데 적당한 장소입니다. 예수님 주변에 “오고가는 사람이 많았습니다”(막 6:31). 사람들이 많이 동원되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무리를 “목자 없는 양”(막 6:34)같이 여기셨습니다. 구약에서 “목자 없는 양”은 지휘관 없는 군대라는 뜻입니다(민 27:16). 그리고 무리의 대다수는 남자였습니다. 외국에 점령당한 식민지의 한적한 광야에 오천 명이 모여서 왕을 세우려 했다면 그것은 분명 혁명 내지 독립운동입니다.

압박과 착취가 극심하면 혁명이 일어납니다. 견디다 못해 목숨 걸고 나서는 것입니다. 빵을 가진 자들이 못 가진 자들과 적절히 나누지 않으면 결국 양쪽 모두 가지지 못하게 되는 사태가 벌어집니다.

예수님은 동족의 고난을 이해하시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자신이 그들을 먹일 수 있다는 것도 아시고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참 구원은 혁명 지도자 곧 “빵과 총”의 메시아가 되는 데 있지 않았습니다. 사람은 빵이 필요합니다(요 6:5-11). 그래서 주님 기도에서 일용할 양식을 구합니다. 그러나 빵만으로 살 수는 없습니다(마 4;4).

가진 것을 나눌 수 있습니다. 빵은 나누어 먹어야 합니다. 오병이어의 소년보다 훨씬 더 많이 가진 우리에게는 나눔의 사명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주린 자를 먹이고, 목마른 자의 갈증을 풀어 주라고 하셨습니다. 지극히 작은 자에게 그렇게 하기를 예수님은 기대하십니다(마 25:34-46).

우리가 나누면, 주님이 축사하십니다(요 6:11). 우리가 바치면 하나님이 그것을 증가시키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일에 협력하는 방법입니다. 나누고 축사된 것은 넉넉하고 넘치게 됩니다(요 6:12-13).

우리가 가진 것이 다 본래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기억한다면 나누는 일이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이런 동시가 있습니다. “빵 덩이 뒤에 흰 가루가 있고 / 흰 가루 뒤에 방앗간이 있다 / 방앗간 뒤에는 밀밭이 있고 / 그 뒤에 햇빛과 비와 하나님의 뜻이 있지”

마하트마 간디는 “땅에는 모든 사람이 다 쓸 만큼 넉넉한 자원이 있지만, 모든 사람의 탐욕을 채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소년에게 굶주린 무리를 먹이는 일의 동역자가 될 기회를 주셨습니다. 우리에게도 같은 기회를 주십니다. 그 일을 하려면 “남들이 검소하게나마 살 수 있게 하기 위해, 우리가 좀 더 검소하게 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엘리자베스 시튼)

빵이 중요하므로 나누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처럼, 사람은 떡으로만 살 수 없습니다. 우리는 육신의 떡뿐 아니라, 영적으로 주린 자들에게 생명의 떡을 나누어 줄 사명이 있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고 알고 있는 것을 나누기 위해 바치면, 예수님이 축사하시고 넉넉하게 만드십니다. 가진 것을 나눕시다. 이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입니다. 가지지 않은 것은 줄 수 없습니다. 가진 것을 나눕시다. 내가 주어야 할 것을 다른 사람이 줄 수 없습니다. 내가 나누어야 할 것이 넉넉하지 못해 보여도, 가진 것을 하나님께 바칠 때 상상도 못할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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