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는 누구나 진리를 말해줄 수 있는 내면의 선생, 즉 성령이 계시다는 것"

 

2014년 드디어 5년만에 신학교를 졸업하였다. 목회자의 길로 가야 할지 말지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나는 원래 목회를 하기 위해 목회학을 전공하지는 않았다. 2009년 신학교에 입학할 당시 나는 완전히 지쳐 있었다. 하루 24시간 주 7일, 일에 미쳐 있었다.

그래서 어느 날 모든 일을 내려놓고, 가족과 함께 국경을 건너 미국 인디애나 주의 메노나이트 신학교로 내려갔다. 신학교 캠퍼스에서 공부하는 5년여의 기간은 나에게 이 세상의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치유와 회복의 기간이었다.

이제는 세상으로 다시 나갈 시간이다. 어디로 가야 하나? 비영리기관으로 돌아가야 하는가, 아니면 배운 것을 사용하기 위해 다른 곳으로 가야 하는가? 내가 선교 지향이니 선교사로 나가야 하는 것은 아닌지? 아니지, 목회학을 마쳤으니 목사로 나가야 하는 것 아니야? 한국인 메노나이트 목사?

이러는 와중에 세간에 널리 알려진 초기 기독교 역사학자인 알렌 크라이더 선생이 종이 뭉치 하나를 건네 주면서 읽어보라고 했다. 그것은 퀘이커 공동체의 전통적인 분별 방법인 ‘클리어니스 커미티’(Clearness Committee: 한국어로 하면 ‘명료화 위원회’ 정도가 되겠다)에 대한 세계적인 교육운동가이자 교사들의 멘토라 일컫는 파커 파머의 소개 글이었다.

파커 파머는  『가르칠 수 있는 용기』라는 책으로 온 세상 교육계에서 일약 스타가 된 작가였다. 미국 조지타운 대학에서 잘 나가는 사회학과 교수였던 파머는 어느 순간 나와 비슷한, 모든 것이 좋은 상황에서 영혼이 바닥을 치는 경험을 하고는 안식년을 찾아 떠난다. 우연하게도 그곳은 퀘이커 교도들이 운영하는 학습 공동체인 펜들 힐이라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그는 대학에서의 삶과는 정반대의 생활을 한다. 그의 말에 의하면, “매일 아침 고요하게 드리는 예배, 하루 세 끼의 공동 식사, 학습, 육체적인 노동, 의사 결정, 사회 봉사 등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공동생활을 통해 퀘이커 공동체의 신앙과 실천에 대한 실시간 실험을 하고 있었다.”

1년만 머무르기로 했던 펜들 힐에서의 생활이 10년으로 늘어나면서 파머는 대학을 아예 떠났고, 대안 교육자로서의 삶으로 전향했다. 무엇이 그 야심만만한 제도권 대학의 사회학자를 조그마한 시골의 대안학교 교장으로 이동시켰는가? 그는 거기서 “인간적 가능성의 비전에 뿌리를 둔 공동체”를 봤기 때문이다. 비인격적이고 개인주의적으로 변해가는 도시생활의 한가운데에서 허우적대고 살아왔던 그가 펜들 힐에서 깨달은 것은, “진정한 풍요는 든든하게 쌓아놓은 음식이나 현금, 권력, 애정에 있는 게 아니라 그런 것들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나눠줄 수 있는 공동체 안에 속해 있을 때 찾아온다.”는 것이다. 도시인이었던 그는 거기서 공동체의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배웠고, 그것에 매료되었으며, 특히 퀘이커 공동체의 분별 방법인 ‘명료화 위원회’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진정한 소명을 발견한다.

퀘이커 공동체의 명료화 위원회

명료화 위원회란 무엇인가? 파머가 펜들 힐에 있을 때 어느 그럴싸한 대학의 학장직을 제안받는다. 가야 할지 말지를 결정해야만 했다. 그는 퀘이커의 전통대로, 자기 주변에서 여섯 명의 신뢰할 만한 친구들을 불러모아 자신의 소명을 분별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요청한다. 명료화 위원회가 소집된 것이다. 이 모임에는, 지난 350년 동안 지켜온(퀘이커의 역사와 함께) 룰들이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우선 분별을 원하는 자는 자신이 신뢰할 수 있고 다양한 배경을 가진 대여섯 명의 사람들을 지목하고 이 위원회의 소집을 요청한다. 그 다음에는 자신이 현재 가지고 있는 문제와 자신이 생각하는 대안들을 상세히 적어 참가자들에게 미리 보낸다. 모든 참가자들이 이 문제를 가지고 미리 고민하고 기도하면서 이 모임을 준비한다. 드디어 위원회가 소집된다.

이 위원회는 분별자에게 조언하기 위한 모임이 아니다, 그를 바로 고쳐 주기 위함도 아니다, 전문적인 조언을 주는 것도 아니다. 겸손하고 정직한 질문으로 분별자 스스로 문제의 핵심을 알고 스스로 소명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듣기’에 있다고 봐야 한다. 참가자의 자격은 분별자가 신뢰하거나 존경할 수 있는 자여야 하고, 말을 잘하기보다는 잘 듣고, 정직하고 개방된 질문을 하는 자여야 한다. 이 모임의 시작부터 끝까지 성령의 인도하심에 충실해야 하므로, 분위기를 조작하거나 농담으로 가볍게 만드는 게 아니라 지정된 시간인 3시간 동안 진지해야 한다. 모임 후에는 모임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함구해야 한다. 그러니 입 큰 사람들은 이 모임에 참가 자격이 없다.

이런 공동 분별의 핵심은, '우리에게는 누구나 진리를 말해줄 수 있는 내면의 선생, 즉 성령이 계시다는 것이며, 이 성령의 인도하심과 권능에 따라 우리의 문제들을 다룰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과정에 어떤 권위를 가진 특정한 자나 어느 분야의 최고 전문가를 모셔올 필요는 없다. 우리 안에 있는 유일한 권위이신 성령의 말씀에 귀 기울이며 기다릴 수 있는 인내를 가진 자면 된다. 따라서 이 모임에서는 분명히 하나님의 뜻을 가려야 한다는 의무감조차 교만이 된다. 그렇다면 이 모임은 결론 내기에 급급한 여느 회사의 이사회와 다름없이, 어느 의견이 좋은지 나쁜지를 가지고 격렬히 다툴 것이고, 누군가는 상처받고 회의장을 뛰쳐나갈 것이다.

아니다! 명료화 위원회는 문제를 바로 잡고 그 자리에서 해답을 내기 위한 ‘해결사’ 집합이 아니다. 모임이 끝난 후에도 분별자의 마음 가장 깊은 곳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그 권위를 내어드리는 겸손한 모임이다. 모임에 참가한 자들은, 따라서 모임 후에도 그 분별자를 위해서 계속 기도한다, 그가 참된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올바른 결정을 할 때까지. 이 위원회의 주인은 성령님이시기 때문이다.

파커를 위한 이 명료화 모임 시간이 중반을 넘었을 때 누군가 이런 단도직입적인 질문을 했다고 한다. “당신이 그곳 학장이 되면 어떤 점이 제일 좋습니까?” 당황한 파커는 이것저것 갔다 대면서 장황한 대답을 하기 시작했다. “어, 그것은...” 다시 질문이 반복됐다. “내 질문은 뭐가 가장 좋으냐는 것이었습니다.” “음, 음...” 맨 마지막에 파커의 양심이 작동했다. “아마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신문에 내 사진과 함께 그 밑에 ‘학장’이라는 글자가 실리는 것 같습니다.” 주변에 있는 자들은 파커의 우스운 대답에 전혀 웃지 않고 도리어 깊은 침묵으로 빠져들었다고 한다. 다시 누군가가 이렇게 물었다. “파커, 신문에 날 만한 더 쉬운 방법을 생각할 수는 없나요?” 마침내 공동의 침묵이 깨지고 폭소가 터졌다.

회의가 끝나고 그는 그 학교에 전화를 걸어 자기 이름을 후보 명단에서 빼달라고 한다. 그에게는 이 학장 자리가 소명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자신의 명예를 위한 것으로 판명된 것이다. 그는 이 모임의 권위에 진실했고, 자신의 양심에 진실했고, 이런 과정에 함께 계신 성령에게 진실했다. 파커는 결코 잘못된 결정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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