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중국도 그리스도화하고, 일본도 예수화하는 날이 반드시 오지 않겠는가"

김교신 선생(앞줄 왼쪽에서 세번째)

최근 김교신(金敎臣, 1901-1945) 선생에 대한 글을 써서 「한국성결신문」에 기고했다. 그분은 한국 기독교 역사에서 무교회주의운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했던 인물로 매우 잘 알려져 있다. 무교회주의라면 함석헌 선생도 치지만, 실상 그 운동으로 조선총독부 시절 감옥생활도 겪었고 혹독한 고문도 받았다. 무엇보다 그분이 개인 재산을 털어 발행했던 신앙잡지 「성서조선」(聖書朝鮮)이 한국무교회주의 운동 대변지였다. 그 잡지도 조선총독부에 의해 강제로 폐간되었다.

하지만 그분을 ‘무교회주의자’의 대표인물처럼 소개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무교회주의자라기보다 오히려 참교회추구자였다는 것이 맞다. 특히 그분의 부인 한매(韓梅) 권사께서 필자가 담임목회를 했던 유니온교회에서 매우 성실하고 존경받는 신앙생활의 모범이셨기 때문이다. 한매 권사님 신앙이야기는 2011년 6월 9일자 본 난에 소개했다. 

이번에는 기독교의 경전을 성경(聖經)이라고도 하고, 또 성서(聖書)라고도 하는 문제를 좀 생각해 보려고 한다. 김교신 선생이 주도해 발행했던 신앙잡지 이름도 「성서조선」이다. 결코 「성경조선」이 아니다. 왜 그럴까. 한국에서 기독교선교 초기부터 성경을 발행해온 기관 이름이 ‘대한성서공회’이다. 그런데 대한성서공회가 발행해 보급하는 책들은 거의 모두가 『성경전서』이다. 『공동번역 성서』 같은 특별한 사례를 빼고는 모두 성경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그렇게 된 원인이 있다. 성경은 중국을 통해 들어온 이름이고, 성서는 일본을 통해 들어온 이름이라는 차이 때문이다. 일본을 통해 들어온 기독교는 진보의 색채가 강했다. 그래서 성서라는 이름을 더 선호한다. 반면에 중국을 통해 들어온 기독교는 보수 색채가 강했다. 그래서 성경이라는 말을 고집스레 사용한다. 예외도 더러 있다. 가령 한국의 천주교회는 중국을 통해 먼저 들어왔다. 하기는 임진왜란 때에 천주교 신자들이 왜군 장군과 사병이었다니까 일본을 통해 들어온 것이 앞선다고 할 수도 있다.

아무튼 천주교회는 성경이란 이름보다 성서를 더 선호한다. 그런데 또 흥미로운 일들이 있다. 책 이름은 『공동번역 성서』인데 그 안에 담긴 말씀에는 성서라고 일관되게 쓰지 않고 성경이라고 적어 놓았다. “성경은 전부가 하느님의 계시로 이루어진 책으로서....”(공동번역 성서, 딤후 3:16).

어떻게 생각하면 우리 모국인 한국은 일본과 중국이 서로 잡아먹으려고 줄다리기를 하는 가련한 존재 같은 기분도 든다. 그래서 이름은 ‘대한성서공회’이면서도 거기에서 출판하는 책은 ‘성경’이 되어야 하는가보다. 영어로는 바이블(Bible), 독일말로는 비벨(Bibel)인데 말이다. 

금년 2020년은 한 나라였던 한국이 남북으로 갈린 지 75년째 되는 해란다. 남북분단의 비극이 어쩌면 중국계통의 언어인 성경과 일본계통의 언어인 성서에 그토록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고 한숨만 푹푹 내쉬며 운명 탓만 할 것은 아니다. 언젠가 한국이 중국도 그리스도화하고, 일본도 예수화하는 날이 반드시 오지 않겠는가. 먼저 믿은 우리가 제대로 십자가만 진다면 말이다.

(대표 저서 : 『목회자의 최고표준 예수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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