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는 아프다. 아프니까 상처다. 깊은 상처가 아물고 나면 흉터가 남는다"

 

상처는 아프다. 아프니까 상처다. 깊은 상처가 아물고 나면 흉터가 남는다. 흉터는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흉터를 볼 때마다 아픈 기억이 되살아난다. 그래서 상처에 대한 나름의 철학이 필요하다. 어쩌면 진주조개처럼 아픈 상처를 끌어안는 눈물의 미학이다. 아니 용서의 힘일 터이다.

부음(訃音)을 듣고 달려가 편안히 누워 계신 아버지의 얼굴을 보다가 손을 만져 보았다. 유달리 손가락이 길고 억센 손이었다. 왼손 네 번째 손가락은 굽어 있었고 흉터가 있었다. 눈물이 났다. 이 손으로 우리 가족, 우리 오 남매를 먹이고 입히며 가르쳤구나, 그 생각에 다시금 뜨거운 눈물이 솟구쳤다. 아버지의 한 생애는 상처였다. 생각해보니 아버지의 상처는 지금 내 가슴에 별이 되었다.

문득 내 손을 살펴보았다. 아버지처럼 내 손도 큰 편이다. 아버지를 닮아 손가락이 길다. 어머니의 우렁이 손톱을 닮은 동생들과는 달리 통통하고 길쭉한 손톱이다. 자세히 보니 왼손가락 두 번째, 세 번째 손가락에서 흉터가 몇 개 보인다. 수십 년이 지났어도 그 흉터는 사라지지 않았다. 아마도 죽을 때까지 남을 흉터다. 흉터에 대한 기억을 더듬었지만 단박 생각나지 않았다. 다만 낫으로 베인 상처인 것은 분명하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나무 바퀴가 하나 달린 외발 수레를 끌고 논둑길로 풀을 베러 갔다. 풀은 쑥이었다. 소여물을 쑬 때 아버지는 쌀겨와 볏짚, 쑥을 한 보따리 썰어 구정물과 함께 푹 끓였다. 안채에 쑥 향기가 번지면 외양간의 어미 소는 그 냄새를 맡고 빨리 밥을 달라고 큰 소리로 울어댔다. 어미 소는 생각할수록 우리 집안에 고마운 식구였다. 멍에를 메고 쟁기를 끌며 논밭 일은 물론 송아지를 낳아 부(富)를 더해 주었던 복덩이였다. 어린 나는 낫질이 서툴러 쑥을 베다가 손가락을 베기 일쑤였다. 붉은 피가 손가락에서 송송 솟았다. 그럴 때마다 쑥을 으깨어 상처를 싸맸다. 아팠지만 상처는 쉬이 아물었다. 그 흉터가 입때껏 남아 빛나는 것이다.

이제 물리적인 상처 얘기는 그만해야겠다. 내면의 상처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솔직히 나는 상처를 쉬이 받는 편이다. 마음이 여리니 그럴 수밖에 없다. 심지어 아내가 언젠가 나에게 ‘당신, 참 답답하다!’는 가벼운 언질에도 상처가 됐다고 심드렁하게 대꾸한 적이 있다. 그렇다고 나만 상처를 입은 피해자인 양 드러내고 싶지는 않다. 상처의 가해자인 경우가 더 많았을지도 모른다. 상처는 상한 감정으로 숨어 있기 마련이다. 이를테면 상처를 입게 되면 이해와 용서의 감정보다 순간적인 반감은 물론 분노로 드러나기 일쑤다. 그래서 상처는 잘 다스리고 꼭 보듬어 주어야 한다.

언젠가 상처에 대한 시를 한 편 쓴 적이 있다. 제목이 ‘상처는 별이다’였다. 내가 받은 상처의 울분을 삭이며 진액이듯 우려낸 시다. 시를 쓰면서 고치고 다시 쓰고 거듭 다듬으면서 마침내 그 상처가 아물었다고나 할까. 아니 마음에 빛이 되었다는 게 정직한 고백이다. 그 시를 쓰고 나서 스스로 이렇게 풀었다.

당신이 입은 상처는 / 지금 별처럼 빛나고 있다고 말하라 / 그 별이 내 영혼까지 비춘다고 …….


상처는 별이다
여리고 여린 내 마음에
홀연히 뜨는 별이다
상처가 별이라니,
상처를 별처럼
생각하라는 뜻 아니다
애오라지 아픈 만큼 깊어지고
흘린 만큼 채워지는
가난한 자의 눈물꽃이다
마침내 그 꽃,
소리 없이 피어나
내 안의 빛으로 삼을 일이다
이윽고 상처가 별처럼 반짝일 때
그 영혼 어둡지 않다
어둠을 밝힌 샛별들
밤 지나 눈부신 아침이 오면
기쁘게 스러지듯
스러지듯

- 졸시(卒詩) ‘상처는 별이다’ 전문

저작권자 © 크리스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