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4일 오전, 웨스트 코스트 산불로 최소 35명이 사망했다. 우리는 그을린 나무, 건물의 잔해, 검게 탄 자동차의 묵시적인 영상들을 보고 있다. 화재로 발생한 연기구름은 1백만 평방마일을 뒤덮었으며, 1,300마일 이상 퍼져나갔다.

오리건 주의 관리들은 산불이 1백만 평 이상을 태운 다름 ‘대량 사망 사고’와 맞닥뜨리고 있다. 그 가운데 한 사연이 가슴을 더 아프게 한다. 13세 소년의 시신과 소년 무릎 위의 애완견 사체가 함께 발견된 것이다. 와이어트 토프트와 할머니 그리고 그의 애완견은 오리건 주 마리온 카운티의 가족용 자동차 안에서 발견되었다. 유가족은 기자에게 “그는 자동차를 타고 대피하려고 했고, 언덕을 내려갔는데, 어떤 이유로 차가 도로 밖으로 나가는 바람에 불에 탄 것 같다. 도로가 매우 뜨거웠다.”라고 전했다.

열대성 폭풍 샐리는 오늘 허리케인으로 발전할 것이며 루이지애나-미시시피 경계 인근에 폭우가 쏟아질 것이라 예상된다. 한편 루이지애나의 농부들은 허리케인 로라가 남긴 끔찍한 문제를 해결하느라 바쁘다. 폭풍우에 의해 늪과 습지에서 몰려나온 모기떼가 내륙으로 이동해 가축과 말을 죽이고 있다. 모기떼가 어찌나 많이 짐승들을 물어뜯는지, 빈혈과 탈진으로 짐승들이 죽고 있다. 코로나19에 산불, 허리케인, 살인자 모기까지 더해져서 오늘 아침 92만4천여 명이 사망했다.

크리스천들은 전지전능한 사랑의 하나님이 계신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자연 재앙을 세상이 타락한 결과라고 설명한다. 인간이 죄를 지으면, 모든 피조물이 그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창 3:17-19 참고).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롬 8:22). 창세기 3장 이전에는 산불도 허리케인도 바이러스도 존재하지 않았다.

더 나아가 우리는 무고한 고통의 많은 부분을 자유의 오용으로 설명한다.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3-15). 만일 어떤 사람이 그들의 자유를 오용해 술을 마시고 자동차를 부순다면, 이는 하나님 탓이 아니다. 그가 내 자동차를 부순다고 해도 하나님 탓이 아니다.

그러나 전지전능하고 모두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때로 세상의 타락과 지유 의지의 오용을 막기 위해 개입하신다. 예수님은 갈릴리 호수의 광풍을 잠잠하게 하셨다(막 4:35-41). 주님은 헤롯 왕의 처형 계획으로부터 베드로를 보호해 주셨다(행 12:1-11).

때로 주님이 무고한 고통을 막기 위해 개입하셨다면, 항상 개입하시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베드로는 구하시면서 열세 살 소년을 왜 구하시지 않았는가?

내 아버지는 고교 시절에 류머티즘열을 앓았다. 그 질병은 아버지의 심장을 약하게 만들어, 33세에 심장마비가 왔고, 55세에 두 번째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 내 장남은 수년 전 암 진단을 받았으며, 수술과 방사선 치료를 받았다. 지금 그는 건강해졌지만, 그가 겪은 고통은 타락한 세상의 또 다른 결과물이었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나 그 주변 사람들 가운데 그러한 고통을 여러 번 겪은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전지전능한 사랑의 하나님이 계시다고 믿을 수 있는가?

논리적인 대답은 믿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적인 대답은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논리적인 차원에서 전지전능한 사랑의 하나님은 더 큰 선을 위해 우리를 고통에서 구하신다고 단언하신다(롬 8:28). 하나님은 전지하시므로 우리의 고통을 아신다(히 4:13; 요일 3:20). 하나님은 사랑이시므로, 우리에게 최고의 것을 주길 원하신다(요일 4:8). 하나님은 전능하시므로, 더 큰 목적을 위해 무엇이든 구원하실 수 있다(마 19:26).

우리는 영원의 측면에서는 그러한 구속을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아직 볼 수 없는 것을 믿을 수 있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고전 13:12).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고후 5:7).

실제적인 차원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힘을 가장 필요로 할 때 거부해선 안 된다. 우리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는 그때가 특히 우리가 볼 수 없는 것을 보시는 하나님을 신뢰해야 할 때이며(잠 15:3), 조건 없는 은혜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해야 할 때이다(디도서 2:11). 우리의 고통이 최대치일 때가 위대한 치료자를 가장 필요로 할 때이다(요 5:1-9). 삶이 가장 고통스러울 때, 하나님의 사람들은 가장 많이 무릎을 꿇어야 한다.

우리는 산불이 기승을 부리는 지역에 비를 내려달라고 기도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비극에 노출된 사람들을 보호해 주시고 힘을 달라고 기도할 수 있다. 우리는 허리케인의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다. 코로나19로 고통을 겪는 이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다.

우리는 사랑과 은총을 내리시는 실제적인 기도 응답으로 우리를 써달라고 하나님께 요청할 수 있다.

크리스천 빌보드 차트에서 28주간 1위를 차지했던 로렌 데이글의 “You Say”의 후렴구는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렸다.

“사랑을 느낄 수 없을 때 당신은 내가 사랑받고 있다고 말해요
약하다고 생각할 때 당신은 내가 강하다고 말해요
그리고 한계에 이르고 있을 때 당신은 나를 품에 안고 계신다고 말해요
아무 데도 속하지 못할 때, 오 당신은 내가 당신의 것이라고 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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