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은 찬송의 보석함과 같다. 시편에는 보석처럼 아름다운 찬송들이 들어 있다."

로고스 채플 강단(4)

하나님께서 우주 만물의 창조주이심을 깨닫고,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해 주시고, 질병과 사고에서 치유해 주시며, 날마다 삶에서 축복해 주신다면 감사와 찬양이 샘솟을 것이다. C. S. 루이스는 말했다. “모든 기쁨은 자연스럽게 찬양으로 이어진다.” 

모세와 미리암은 성경 최초로 애굽 군대를 물리쳐 주신 하나님을 찬송한다(출15:1-18, 19-21).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출 15:1-2).

시편 104편은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창조하신 피조 세계를 묘사하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세상 모든 것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고 노래한다. 하나님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것이 없기에, 생명이 있는 동안 영원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리라고 고백한다. “내가 평생토록 여호와께 노래하며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내 하나님을 찬양하리로다”(시 104:33). 

베드로전서 1:3-4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그리스도의 유업을 잇게 하신 하나님을 찬송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요한계시록 5:12에선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라며, 하늘나라에서도 어린 양의 보좌 앞에 모여 창조주 되심을 찬양하고, 구원자 되심을 찬송한다.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으며 우리를 살리신 그 사랑을 알게 되고 경험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찬송이 나올 것이다. 내 죄가 너무 크다는 것을 깨닫고 회개하며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순간, 주를 향한 찬송이 넘쳐날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을 향한 찬송을멈추지 말아야  한다. 특히 감사의 계절에, 팬데믹으로 성가대와 회중 찬송이 멈춘 이때에, 개인적으로나 전 세계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놓인 지금 찬송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실 때, “(…) 제자의 온 무리가 자기들이 본 바 모든 능한 일로 인하여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여 이르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하니 무리 중 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선생이여 당신의 제자들을 책망하소서 하거늘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 하시니라”(눅 19:37-40)라고 하신 말씀처럼 찬송은 주님의 뜻이다. 

하프를 연주하는 다윗 왕, Gerard von Honthorst

개인적으로, 교회적으로 찬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어떻게 찬송이 가능할까? 성경은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찬송한 이야기를 들려 준다. 남유다 여호사밧 왕은 재위 20년 즈음, 하나님을 대적했던 모압과 암몬 연합군의 기습 공격을 받는다. 여호사밧 왕은 북이스라엘과 연합하고 군대를 동원해 싸우는 대신에, 유다 백성들에게 금식을 선포하고, 온 백성으로 하여금 하나님께 도우심을 구하도록 했다.

그리고 “백성과 더불어 의논하고 노래하는 자들을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진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게 하였더니 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어 유다를 치러 온 암몬 자손과 모압과 세일 산 주민들을 치게 하시므로 그들이 패하였으니 (…) 그들이 서로 쳐죽였더라”(대하 20:21-23)라고 성경에 기록되었다. 

한편 사도행전 16장은 바울과 실라가 귀신 들린 여종 주인들의 고소로 인해 감옥에 갇히는 이야기를 들려 준다.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행 16:25-26)라는 말씀에서 보듯이,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억울하게 매 맞고 감옥에 갇혔는데도 바울과 실라는 찬송하고 있다. 

기독교 작가이자 변증가인 C.S. 루이스는 자신의 책『헤아려 본 슬픔』에서 아내 조이를 암으로 잃은 절망과 슬픔을 고백한다.  루이스는 이전에 고통의 문제를 변증하며, 하나님은 근원적으로 선하다라는 결론을 내렸는데, 조이가 사망하자 하나님에 대해 분노하고 원망한다. “하나님이 선하다면 자신이 만든 피조물들에게 완벽한 행복을 주고 싶어할 것이며, 하나님이 전능하다면 그 소원대로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피조물들은 행복하지 않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선하지 않은 존재이거나 능력이 없는 존재이거나 선하지도 않고 능력도 없는 존재일 것이다.”

기독교 변증학의 교과서라 할 수 있는 『순전한 기독교』의 저자가 변증적으로 스스로 무너진 것이다. 하지만 루이스는 “오직 극심한 고통만이 진실을 이끌어 낼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이나 사랑의 자질을 알아보려고 시험하시는 게 아니다. 그분은 이미 알고 계시니까. 모르는 쪽은 오히려 나였다. 그분은 언제나 내 요새가 카드로 만들어진 집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신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렇듯 어려운 상황에 처할 때 우리는  믿음의 진실을 알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려운 상황에 처할 때마다 찬송할 수 있을까? 감옥에 갇힌 바울과 실라도, 불치병에 걸린 욥도, 생존의 위기에 놓인 여호사밧과 다윗도 저절로 찬송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알고 찬송이 무엇인지 알았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그리고 그들이 찬송했을 때,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났다. 

찬송의 가장 좋은 가이드라인은 시편이다. 시편은 찬송의 보석함과 같다. 시편에는 보석처럼 아름다운 찬송들이 들어 있다. 예배를 드릴 때마다 개회 기도를 위해 시편을 열면 늘 아름다운 보석을 찾을 수 있었다. 

시편 150편 중에 73편 가량을 다윗이 지었는데, 시편 3편은 압살롬의 반역을 피할 때 지은 시이고, 시편 51편은 밧세바와 간통 후에 회개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지은 시이다, 성경의 다른 책에서는 알 수 없는 다윗의 마음을 시편을 통해 읽을 수 있다. 우리는 시편 기자의 마음이 되어 시편으로 기도할 수 있다.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생각하면서 읽는 것 자체가 찬송이기에, 시편을 묵상할 때 우리는 그분을 보게 되며 그분을 찬송하게 된다. 시편을 통해 찬송하는 삶을 살다 보면, 어려운 상황에서도 우리의 입에서 찬송이 멈추지 않고 흘러 나오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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