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지으시되 각자가 장점과 단점을 골고루 갖도록 하셨다. 한 사람에게는 장점만, 다른 사람에게는 단점만 주시지 않았다. 이는 각자가 가진 장점으로 타인의 단점을 보완하고 보충하여 함께 조화와 균형을 이루어 살게 하심이다.

그런데 사람은 자신에게선 장점만 보고, 타인에게선 단점만 보기 쉽다는 것이 문제이다. 자신의 장점이 최고여서 타인보다 낫다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알지도 믿지도 않는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간다.

문제는 신자들도 그렇게 살아간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는 불신자들의 가치관과 생활 양식을 따르지 않아야 한다. 불신자들을 무시하는 삶을 살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가치관과 구별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살아야 불신자들에게도 덕을 끼쳐 그들을 하나님께 인도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장점과 단점에 대해 하나님의 자녀는 어떤 관점을 가지고 살아야 할까. 

불신자들은 자신의 장점만 보고 우쭐하여 그런 장점이 없는 타인을 무시하지만, 하나님의 자녀는 자신의 장점을 타인을 섬기는 데 사용해야 하고, 반면 자신의 단점은 타인에게서 배우고, 타인을 존중하는 도구로, 그래서 자신을 겸손하게 하는 도구로 사용해야 한다.

각 사람의 장점이 모든 상황에서 장점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단점도 마찬가지다. 장점이 단점이 되고, 단점이 또 장점이 될 수 있다. 지나치게 장점만 높이며 우쭐해서도 안되고, 타인의 단점에 대해 자신의 장점과 비교해 무시하는 우를 범해서도 안 된다.

예를 들어 단점으로 보이는 소심함은 조심이라는 장점이 될 수 있다. 룻 동역자는 추진력이 강해서 모험을 좋아하고 새로운 일을 개척하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반면 나는 새로운 일을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경향이 많다.

그런데 룻 동역자는 추진력이 강하다보니 끈기가 부족하고 나는 추진력이 부족하나 한 가지 일에 대해서 안정적으로 꾸준히 하는 편이다. 그래서 어떤 성향을 항상 장점 혹은 단점이라 말할 수 없다. 추진력도 필요하고, 꾸준히 유지하는 것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너무 조심만 하면 새로운 일을 하기가 쉽지 않고, 반면 새로운 일을 자꾸 벌이다보면 뒤치닥거리가 힘들어 그 일이 지속되기가 힘들다. 둘 다 필요하다.

그러므로 조화와 균형의 측면에서, 타인과의 동역에서, 자신의 장점이 최대 단점이 될 수 있다는 겸손한 자각이 어쩌면 키 포인트가 될지도 모른다. 나도 아직 이런 점에서 자세가 갖추어졌다고 볼 수 없다. 다만 배워 나가려고 한다.

더불어 관점의 변화도 필요할 것이다. 예를 들어 게으름과 여유에 대해 말해 보자. "저 사람은 일하는 것이 너무 느려. 일하는 것이 굼뱅이 기어가는 것 같아."라고 판단할 수 있다. 하지만 게으름을 여유로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즉 일을 빨리빨리 하는 사람은 자기보다 일의 속도가 느린 사람을 보면서 "아!난 여유가 없는데, 저 사람은 참 여유가 있구나" 하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빨리빨리가 항상 좋은 것도 아니며, 만사를 빨리빨리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도 좋은 것이 아니다.

부지런함은 여유 없음이 될 수 있고, 게으름은 여유 있음이 될 수 있다. 자신의 장점으로 타인의 단점을 보는 이기적, 독단적, 자기중심적 시각에서 전환하여, 자신의 단점으로 타인의 장점을 보려고 한다면 타인과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동역에서 진전을 이루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요구할 것이 없으니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존귀를 더하사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하여 돌아보게 하셨으니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나니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전 12:24-26).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빌 2:3).

저작권자 © 크리스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