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찬송가는 204장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새찬송가 288장)입니다. 정말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 성령과 피로써 거듭났다면, 주님 안에서 기쁨을 누려야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하며, 입술에 감사와 찬송이 넘치는 간증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저는 감사가 간증을 낳고, 간증이 찬양을 낳고, 찬양이 또 다른 간증을 낳는다고 확신합니다. 또한 우리의 삶 속에 동행하시며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날마다 간증할 때, 더 큰 은혜와 감사와 간증을 주신다고 확신합니다.

알래스카에서, 남의 것을 흉내내지 않고, 중복사역을 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것을 가지고 오직 성령 운동 하는 교회를 개척하고 싶었습니다. 가족 공동체가 되어 어른을 공경하고 자녀들을 사랑하고, 나아가 지역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교회를 세우고 싶었습니다. 2005년 2월 신학교를 졸업하고, 4월에 알래스카로 돌아와 교회 개척을 놓고 기도했습니다.

그리하여 다른 곳이 아닌 앵커리지에서 교회를 개척하기로 결정하고, 7월 10일에 아내와 어머니, 아들 둘과 함께 집에서 개척 교회를 시작했습니다. 다른 지역에서의 교회 개척은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어디에서 개척을 하든 술 마시고 담배 피우던 제 과거가 곧 알려지면 문제가 될 것이기에, 처음에는 욕을 먹더라도 앵커리지에서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야 훗날 “윤호용이 목회하더니 조금 변했네” 라는 말을 듣게 될 것이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 같았습니다. 또한 지역명을 교회 이름으로 많이 사용하는데, 사도 바울의 선교 개척 정신을 본받고 싶어서, 사도 바울의 서신서를 읽을 때마다 먼저 선포하는 “은혜와 평강”을 교회 이름으로 정했습니다.

창세기 1:1 말씀을 읽고 “시작은”이라는 제목의 첫 설교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것처럼, 우리의 시작은 미약하고 힘들지만 말씀 안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하고 캐내어 가져갈 자가 바로 우리라는 사실을 알면 기쁨이 충만할 것입니다. 성부 하나님의 사랑의 말씀으로 예배가 회복되고 성자 예수님의 구원의 은혜로 지상명령을 감당하며 성령 안에서 삶이 변화되어 회복과 치유, 감사와 간증이 넘쳐나는교회가 되길 바랍니다.”라는 말씀을 전하고, 초대 교회처럼 가르치고 교제하며 선교하는 아름다운 사랑의 공동체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교회를 개척할 때부터 “우리 교회는 비록 건물도 작고 성도 수도 적지만 우리 안에 하나님께서 주신 꿈(비전)이 커서 결코 작지 않습니다.”라고 담대히 선포하며 기존 교회와 다른 교회를 꿈꿨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와 더불어 이민자들이 꿈꾸는 초대 교회를 모토로 삼았습니다. 

보통 미국 교회를 빌려 오후에 예배 드리는 것이 개척 교회의 현실인데 제 생각은 달랐습니다. 마침 교회로 사용하기에 합당한 도로변 집이 매물로 나와 있어 아내와 아들들과 함께 구경했는데 그들은 폐가와도 같은 그 집이 싫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가족에게 기도 부탁을 하고 저 혼자 땅 밟기를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하나님께서 평안과 담대함을 주셔서 9월에 전 재산을 투자해 다운페이를 하고 단층짜리 듀플렉스를 구입했습니다. 잔디밭을 주차장으로 만들고, 방 두 칸짜리 집을 성전으로 꾸미고. 차고를  친교실로 만들었습니다. 방 세 칸짜리 집은 안방을 제외하고 아들 둘이 쓰는 방은 Youth Group이, 나머지 방은 교회 사무실(재정, 성가실)로 사용하도록 했습니다. 

친교실에 컴퓨터 3대를 구입해 놓고 대학교 도서관과 같은 빠른 속도의 인터넷을 연결하여 예배 끝나면 빨리 집에 가고 싶은 자녀들이 교회에서 함께 놀도록 하고, 부모님들이 마음껏 오후 예배를 드리고 저녁 식사까지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었습니다. 10월에는 주간 한인지역신문과 교차로와 1년 광고 계약을 하고, 칼럼과 교회 행사와 활동 사진을 싣는 등, 교회 소식을 지역 주민들에게 알렸습니다. 그러자 성도님들이 한 명씩 구경삼아 오기 시작했습니다.

성전을 구입했지만 성도는 10명에 불과했습니다. 교회 건물 구입비와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청소 회사에 들어가 밤 청소를 했고 주말에 목회를 했습니다. 청소년기의 아들 둘이 사역에 동참해 청소년들이 날마다 집에 모여들었고, 토요일마다 청소년들에게 주일의 교회 출석 여부를 물었습니다. 가끔은 상담하러 온 성도님들과 밤 12시까지 대화를 나누었고, 그때서야 밤 청소를 가서 새벽 예배 때 돌아오곤 했습니다.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은 기뻤습니다. 교회를 개척한 뒤 이웃 교회 목사님이 “요즈음 어떻게 지내?”라고 물으면, 저는 항상 “예! 기뻐요” 라고 대답했습니다. 

사업을 접고 목회의 길에 들어선 뒤 항상 제 신앙을 점검하고 기도했습니다.  주님의 일이 기뻐서 목회를 시작했는데 기쁨을 잃었다면 초심을 잃은 것입니다. 오직 기도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인 “기뻐하라, 감사하라”는 말씀을 이룰 수 있습니다.

목회 초년생 때는 주일에 교회에 나오지 않는 성도들 때문에 목이 길어 슬픈 사슴이 아니라 슬픈 목회자가 되어 목이 빠져라 출입구만 바라보기도 했습니다. 예배에 나온 성도들에게 감정적인 언어를 사용해 “여러분이 잘해야 교회가 부흥한다”라고 외치기도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큰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지 사람에게 드리는 것이 아닌데, 설교자인 내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에 나온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위로하고 권면하지 못한 것을 회개했습니다. 앞으로는 출석한 성도들과 기쁨의 예배를 드리고 출석하지 못한 성도들을 걱정하자는 마음으로 사역을 펼쳐 나갔더니, 1년만에 30명의 성도들이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사실 설교 중에 성도들을 웃길 줄도 모르고 유머 예화를 사용할 줄도 모릅니다. 우스운 이야기를 하면 썰렁 그 자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나오는 예화 외에는 예화를 인용하지 않습니다. 한 번은 한 성도님이 사랑의 권면을 해주셨습니다. “목사님! 강대상에서는 마사지하지 마시고 그냥 메시지만 전하세요. 마사지는 강대상에서 내려와 교제할 때 해주세요”그 권면을 통해 강대상에서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담대히 선포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당시에 감사하는 마음만 지니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마음 한켠에서는 교만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한편 “호랑이 없는 골에 토끼가 왕 노릇 한다.”는 속담대로, 개척교회의 목회자를 가르치고 싶어하는 토끼 같은 성도들도 있었습니다. “개척 교회는 이렇게 하는 겁니다. 저렇게 하는 겁니다.”라는 훈계를 내가 받아들이지 않자, 절반의 성도들이 교회를 떠났고, 소문만 무성해졌습니다. “윤호용이가 사업한다.”는 소문이 솔솔 제 귀에 들려왔습니다. 저는 그들의 말에 맞장구쳤습니다. 

“맞습니다. 이전에는 세상 사업을 했구요. 이제는 영혼 구령 사업을 합니다.”그러는 동안 이전에는 시도해 보지 못한 청년 사역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지기 시작했습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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