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간증 현상 공모 장려상

 

한 해를 열어 갈 달력을 받고, 큰아이 결혼이 있을 3월에 동그라미를 그리며, 2020년은 여느 해보다 기대와 설렘으로 첫 장을 넘겼다. 한국에서 올 신부 가족들과 인터넷 상견례를 하며, 결혼 준비로 분주한  새해를 시작했다. 그런데 2월이 되면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한국에 들어왔다는 불안한 소식이 들려왔다.

바이러스 전염을 우려하여 모이기를 피하는 것이 주일의 예배를 흔들고 있었다. 삼월 첫 주일에는 한국에서 온라인 예배를 드렸다는 광고를 보고, 우리가 경험치 못했던 예배를 마음으로 준비하며, 한국교회를 위해 함께 기도하였다. 첫 주일이 지나자 미국 내  한인교회들도 술렁이기 시작했다, 한국을 다녀온 성도나 한국에서 온 분들은 스스로 2주일 동안 자가 격리를 하여, 예배에 빈 자리들이 늘어 갔다.   

신부 부모님과 친척들이 미국에 오면 2주 동안 자가 격리를 해야 한다는  불안함이 더해 갔다. 결국 신부 어머니는 준비를 위해 먼저 비행기를 탔고, 일을 해야 하는 아버지는 조금 뒤에 오기로 했다. 결혼식 진행과 데코레이션, 테이블마다 손님을 맞이하기 위한 예쁜 이름표와 꽃들, 식사 메뉴 점검을 하며, 하루하루 기대와 기쁨으로 채워 나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더 예사롭지 않은 상황들이 결혼식을 하게 될 필라델피아에서 펼쳐졌다.  급기야 큰아이가 섬기는 교회에서 온라인 예배를 준비하기 시작했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것을 자제하며, 또 한국에서 온 사람을 만난 경우에 2주간 예배에 나오지 말고 자제하라는 교회 방침이 정해졌다.  

결혼 예식을 맡아 주실 목사님께서  “한국에서 오는 분들이 2주간 격리를 하지 않는다면 결혼식에 참석할 수 없다.”고 하셨고,  교회 친구들과 청년부도 참석을 못한다고 울먹이며 전화했다. 함께 결혼 준비를 해온 친구들마저 참석이 힘들다고 했다. 한국에서 오신 신부 아버지의 며칠이 부족한 격리 기간 때문에 꺼리는 것이었다. 우리의 이해와 상식을 적용할 수 없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자고 일어나면 예상 밖의 또 다른 소식들이 앞을 가로막았다. 동부 뉴욕 주에서 모임  인원을 제한 하는 발표를 했고, 호텔과 컨벤션 센터의 예약이 취소되거나 규모를 줄인다는 소식을 접했다. 결혼 장소로 정한 곳에서 전화하여 참석 인원을 줄여야 하며, 식사 준비를 위해 며칠 내로 인원 수를 결정해 주지 않으면 예약금을 돌려 줄 수 없다는 통보를 하였다. 

처음에는 친구들과 섬기는 교회 사랑부 아이들까지 함께하기로 하여 초대했는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난처해 하며  신부의 손을 잡고 딸의 결혼을 열어 주실 아버지를 배제한 결혼식을 거론하는 지경까지 되었다. 또 하루가 지난 다음날에는 숫자가 더 줄어서 50명으로 결정되었다.

이때  “네가 믿는 바 그 믿는 것이 무엇이냐” (이사야 36:4), 랍사게가 히스기아 왕에게 한 질문이 바로 나에게 묻는 것처럼 들려왔다. 불안과  초조함으로,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흔들리는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랍사게의 이 질문이 터져 나왔다.  지금까지 기도하면서 헤쳐 나왔던 일들이 기억나며,  이 순간에도 하나님은 살아 계시고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고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나는 바로 그 자리에서 말씀을 찾아 들고, 다니엘의 기도를 작정했다. 아침 기도 때에는 잠언 말씀으로 지혜를 구했다. 말씀을 읽으며, 매일 급변하는 상황에 어떻게 대처하고 큰아이의 결혼 준비를 어떻게 진행할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기도하며 매일 기도 일기를 적어 나갔다. “입을 열어 지혜를 베풀며 그의 혀로 인애의 법을 말하며”(잠언 31:26). 이 말씀을 써 놓고 기도했다. 어린아이와 같이 하나하나 여쭈어 보고, 이해되지 않으면 다시 질문하며 기도했다.

먼저 우리가 결혼식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생각을 바꾸어 주셨다. 하나님께서 두 사람을 하나로 맺어 주시고, 아름다운 믿음의 가정으로 세워 주시는데 부모님과 친지, 친구들이 진정으로 축하해 주면 최고이지, 한국에서 온 부모님을 모시지 못하는 결혼식을 해선 안 된다는 결정을 하고, 모든 결혼식 준비를 재정리하였다. 

게스트 하우스에서 가족과 친척, 꼭 참석하고  싶어하는 친구들이 함께하기로 하였다.  마침 신부가족의 출석교회 권사님 두 분이 뉴저지에 이민 오신 권사님의 초대를 받아 작년부터 예약해 둔 미국 여행을 결혼식에 맞추어 신부 아버지와 함께 오게 되었다.

특별히 아끼고 어머니처럼 기도해 주는 권사님께서 이 딸의 결혼식에 맞추어 오셨고 참석하시게 되어서 너무 감사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온 분들을 꺼리는 분위기였지만 내 안에 담대하게 일을 해결할 힘을 주셨다.

본질보다는 그 숫자에 맞추어 가는 나 자신을 보며, 지난 역사 속에서 전염병들이 지나간 것을 지금 돌이켜 볼 때,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지혜와 담대함으로 이겨 내게 하셨다는 확신이 들었다. 우려하는 2주일 간의 격리 기간도 우리가 만든 틀이기에 넘어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아침마다 주시는 말씀을 묵상노트에 적고 그 말씀이 내 삶에 어떻게 적용되었는지 매일 적어 나갔다. 그런데 이렇게 기도하면서 말씀이 나를 움직여 가는 것에 나 자신이 놀랄 때가 많았다. 경우에 합당한 말씀을 주시고, 묵상했던 말씀이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나의 힘이 되었다.  “우리 서로 나눈 그 기쁨을 알 사람이 없도다.” 정말 그랬다. 내 안에 계시는 성령님께서 부족한 나를 불쌍히 여기시어 이끌어 주신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밤낮으로 간구하는 자녀의 손을 잡아 주신 것이었다.

 어려운 상황에서 저녁 시간에는 이사야 말씀으로  혼란스러운 세상을 살아 낼 힘을 주시길 온 힘을 다해 기도했다. 이때부터 교회는 온라인으로 주일예배를 드리기 시작했고, 새벽기도 등 작은 예배들이 모두 중단되었다.  이제는 홀로 선 아이처럼 하나님의 능하신 손만 바라 보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기도했다. 모든 상황은 여전히 힘들게 지나고 있었지만, 놀랍게도 내 마음에는 평안과 환경을 보는 담대함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할렐루야! 
드디어  결혼식을 위해 필라델피아로 가던 중, 공항에서의 살벌한 위기 속에서도 나는 이 결혼식을 하나님의 은혜로 덮어 주시기를 기도했다. 결혼식에 오기로 한 친구들도 이런저런 이유로 오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 천군천사를 보내 주셔서, 하나님 앞에서 시작하는 믿음의 가정을 위해 좋은 날씨를 허락하시고, 오시는 분 모두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은혜를 나누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불말, 불병거를 본 엘리사 사환의 눈을 허락하시어,  하나님께서 이 결혼을 은혜로 덮으시는 것을 볼 수 있는 영안을 허락해 주시길 소망했다.

구름 덮인 날씨가 우리를 맞이 했지만, 마음은 가볍게 게스트 하우스로  가족, 친척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내일 입을 옷을 걸고, 서로를 반기며, 자기 방을 정하는 재미있는 이벤트도 했다. 저녁에는 한국에서 오신 가족들과 저녁 식사를 나누며  신랑, 신부의 성장 이야기, 두 가정의 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웠다. 결혼식 진행을 위한 역할 분담과 어떻게 실내를 장식할지 서로의 아이디어를 나누었다. 특별히 감사한 것은, 두 분 권사님께서 뉴저지 권사님의 도움을 받아 갈비, 잔치국수, 약식을 비롯해 모든 잔치 음식 준비를 해주신 것이다. 예식을 맡아 주실 목사님도 모시고, 사진과 꽃과 음악을 더하여,  축복하는 마음들이 모여 신부를 맞이할 하얀 양탄자가 되어 가며 게스트 하우스를 가득 채웠다.  

오랜만에 찾아온 눈부시게 화창한 봄날, 벚꽃, 자목련, 개나리 등 봄꽃이 활짝 피었다. 신랑 신부의 행복한 미소와 함께 참석한 우리 모두는 야외 촬영을 하는 동안 공원에 나온 모든 이들과  하나가 되어 새롭게 탄생하는 부부를 마음껏 축복해 주었다. 어떤 이들은 이 결혼이 코로나19로 우울한 시기에 희망의 메시지가 되어 감사하다며 함께 사진을 찍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이 온전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은  아름답고 진정한 결혼식이 되었다. 함께 찬양하며 눈물이 났다. 감사의 이유가  일만 가지만일까. 비록 ‘closed’ 팻말이 붙어 있었지만, 게스트하우스 바로 뒤에 큰 교회가 있어, 그곳 계단에서 모두 예쁜 하트 모양을 만들고 사진을 찍었다. 

잔치집의 포도주가 떨어질 때 항아리에 물을 부어 포도주가 되게 하신 예수님 생각이 났다.  지금 우리에게 주신 모든 상황들이 포도주로 여겨졌다.  3월의 초봄에 따뜻한 날씨를 주시고,  친구들이 멀리 와서  축하해 주고, 한국 잔치 음식이 계속 우리를 기다리고 있어서  저녁이 되어도 게스트 하우스는 웃음이 그치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에도 권사님들이 준비해 주신 김밥과 호박죽, 시금치국 등으로 게스트 하우스에선 잔치가 이어졌다.  300명 성도들의 주일 점심을 준비하시던 권사님들이 50인분의 식사 준비는 거뜬히 하신다며 기쁜 마음으로 해주셨다. 어제 눈물이 나서 축가를 잘 부르지 못했다는 신부 동생의 노래와  장로님의 멋진 답례 찬양이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었다, 

내가 보아왔던 이전의 결혼식에서 느낄 수 없는 귀한 것을 배웠다.  보이는 것으로 평가하고 내면을 볼 시간이 없는 결혼식과 달리,  며칠 동거하며 함께 밥을 먹고 진정 서로를 알아 가고, 그 사람 안에 있는 귀한 것들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정말 귀한 가족이 생긴 것이다.  두 가정에서 또 하나의 믿음의 가정을 이루게 해주신 복을 받았다. 시카고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남편이 “내년 아이들 결혼기념일에는 당신에게도 다이아 반지를 끼워 줄게.”라고 말했다.  이에 나는 자신있게 대답했다. “나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다이아몬드보다 더 빛나는  보물 상자가 내 안에 있어요.” 

혈루병을 앓던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만 만져도 나을 수 있다고 믿었던 그 믿음, 예수님께 나아 가면 딸이 살아 날 것을 확신한 회당장의 믿음도 성경에서 말하는 겨자씨 만한 믿음으로 시작한다는 아주 큰 교훈을 배웠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역사하는 힘이 있다는 이 놀라운 일을 나는 자랑하고 싶다. 

오늘도 나는  내 안의 보물상자 속에 또 하나의 보물을 담기 위해 성경을 펴고 묵상노트를 적는다.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그 빛을 따라 나는 오늘도  힘차게 찬송하며 나아간다.  

“좁은 길을 걸으며 밤낮 기뻐 하는 것, 주의 영이 함께 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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