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생, 나의 목회(9)

 

사람들은 대부분 아픈 상처를 가슴에 묻고 살아갑니다. 그 상처는 아물지 않습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해도, 그때 그 일은 잊히지 않습니다. 말 그대로 죽은 자는 말이 없고, 고통은 산 자의 몫입니다.

살아가면서 소중한 무엇을 잃는 일은 한없는 슬픔이요 고통입니다. 누군가에게 아픔으로 기억되는 날이 있습니다. 그날이 다가오면 사랑했던 사람이 좋아한 음식을 먹거나 함께했던 장소를 지나면서 그를 추억합니다. 특히 코로나19로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가족을 잃는 슬픔을 겪었던 지난 일년,  사랑하는 가족의 마지막 순간에 함께하지 못한 아픔을 겪었던 지난 일년은 전 세계 모든 이들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날들로 기억될 것입니다.

‘2012년 7월 13일(금)’은 제 인생에서 가장 큰 아픔의 날이며, “고통은 산 자의 몫”이라는 걸 절실히 느낀 날입니다. 20년 6개월이란 시간을 함께하며 기쁨을 주었던 큰 아들 태원이가 교회 캠프에서 불의의 사고로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날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평범한 날일지 모르지만, 우리 가족에게는 평생 지울 수 없는 날입니다.

그날 청소년들과 청년들, 부목사님과 전도사님은 여름 성경 학교(VBS)를 마치고, 앵커리지에서 2시간 떨어진 캠프로 갔고, 어른들은 교회에서 금요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캠프에 가지 않은 청년들이 뒤에서 왔다갔다하는 모습이 보여  예배 분위기를 어수선하게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설교를 계속했습니다. 그런데 밖에 나가 전화를 받고 들어온 아내가 제게 “목사님! 캠프에서 사고가 났나 봐요. 우리 태원이가 숨을 쉬지 않는대요.”라고 전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설교를 마친 다음 “캠프에서 불의의 사고가 났다고 합니다. 우리 함께 기도합시다.”라고 말하고, 성도님들과 함께 기도했습니다. 그동안 장로님이 캠프에 있는 부목사님과 계속 통화하고 있었습니다.

모든 순서를 마치고 마무리 기도를 하자, 장로님이 강대상에 올라와서 “목사님! 태원이가 천국 갔대요.” 라고 전했습니다. 저는 “예, 알았습니다.” 응답하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희 아들 태원이를 주님의 품으로 인도하심에 감사드립니다. 기쁘게 받아 주시옵소서!”

강대상에서 내려오는 제게 권사님이 다가와 “목사님! 감사합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끝까지 강대상을 지켜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순간 너무 감사했습니다. 의식 중이든 무의식 중이든 아들이 사망했다는 말을 듣고도, 끝까지 말씀을 선포할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목사님! 우리 태원이 건강하잖아요. 장기를 기증해요.”라고 아내가 제안했습니다. “주의 성령이 나와 아내의 마음 가운데 평강을 주셨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더더욱 감사했습니다. 하지만 병원 밖에서 갑자기 사망할 경우에는 장기를 검사하지 못했기 때문에 사용할 수 없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습니다. 결국 두 개의 안구(눈)만 기증할 수 있었습니다. 

아들 사망 소식만 들려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태원이와 함께했던 자매가 혼수 상태이며, 헬기를 타고 병원으로 이송 중이라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그때 함께했던 목사님이 태원이가 있는 캠프로 가자고 해서 저와 두 분 목사님은 캠프로 갔고, 아내는 장로님들과 함께 병원에 가서 상태를 확인하고, 그 자매의 부모님에게 사과하러 갔습니다. 이 상황을 어떻게 수습할 것인지를 생각하며 사고 현장에 도착했을 때, 이미 경찰이 와서 조사하고 있었습니다.

자식을 잃은 슬픔보다 그 자매가 회복되길 바라는 마음이 더 컸습니다. 사고 현장에서 밤을 새우다시피 하고, 이른 아침 병원에 있는 자매를 심방하고, 그의 부모에게 다시 한 번 정중히 용서를 구하고,  교회에 가서 무릎 꿇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의 죄를 용서하소서!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불평하지 않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런데 하나님! 부족한 종이 영적으로 무지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합니다. 우리 자매님이 온전히 회복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알기 원합니다. 우리 태원이의 죽음이 헛되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길 원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기 원합니다.” 그리고 결단했습니다. 천국 환송 예배를 드릴 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사랑하는 나의 아들 태원이는 이제 천국 갔으니까 천국 소망을 가지고 우리 태원이를 만나려면 삯꾼 목사는 되지 말아야겠습니다.”라고 다짐했습니다.

복음성가 “오직 예수(one way Jesus)”를 누군가 부르면, 사랑하는 아들 태원이가 생전에 찬양 리더로서 오른손을 치켜들고 열정적으로 부르던 모습이 생각났습니다. “이 땅에 오직 주밖에 없네”라는 찬양을 부르지 않으면, 말씀을 전할 수 없었습니다. 

무엇으로 눈물샘을 막을 수 있을까요? 오직 주님의 위로밖에 없습니다. 무엇으로 슬픔을 기쁨으로 바꿀 수 있을까요? 오직 주님의 평안밖에 없습니다. 그때 주님이 주시는 위로와 평안이 없었으면, 그 아픔을 이기지 못해 슬픔에 잠겼을 것이며, 맡겨진 사역을 감당하지 못해 하나님의 영광을 가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알지 못하고 세상이 주지 못하는 평안이 있기에, 미약한 제 신앙을 주님께 고백하며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제 안에 새겨진 말씀이 있었기에, 고난이 유익(시 119:71)임을 깨닫고, 절망과 좌절에 빠지지 않고, 소망의 하나님을 바라보며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그 후로 은혜 없이, 주 없이 살 수 없음을 고백하는 날들이 이어졌습니다.

알래스카 아시아나의 주재원으로 와서 온 가족이 예수 믿고 3년 동안 신앙생활을 하다가 승진해서 한국으로 돌아간 조 집사님이 아들 태원이를 잃은 슬픔을 위로하는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목사님, 사모님, 상상할 수 없는 비보를 접하고 큰 슬픔에 잠기셨을 목사님 내외를 생각하니 마음이 매우 아픕니다. 항상 강건하고 의연하신 목사님이신지라, 지금도 자식 잃은 슬픔을 표하기보다 주변 분들에게 죄스러운 생각을 더 갖고 계실 것 같네요. 때로는 자식 때문에 화가 날 때도 있었겠지만 기쁠 때가 훨씬 많았겠죠. 20여 년 이상 부모에게 기쁨과 웃음을 준 자식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 기간 충분히 행복했었다고...”

올해는 김광석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이란 노래를 자주 듣게 됩니다. 코로나19로 인해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이들을 잃었습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태에서 받은 충격인지라, 그 강도는 상상을 초월하고, 말로 다 표현 못할 사연들이 넘쳐날 것입니다. 해마다 누군가에게 기억되는 날이 너무 아픈 사랑과 사연 가득한 날일지라도, 다른 누군가와 함께 기억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기간 충분히 행복했었다고...”라는 이메일 한 구절이 제게 위로를 주었듯이, 지금 말 못할 아픔 가운데 있는 이들을 평강의 주님께서 위로해 주시길 소망합니다. 위로와 용기를 얻길 바라는 마음으로, 미국의 서정시인 랜터 윌슨 스미스의 시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This, Too, Shall Pass Away!)’의 첫 연을 옮겨 봅니다. 

“큰 슬픔이 거센 강물처럼 네 삶에 밀려와 
마음의 평화를 산산조각내고 
가장 소중한 것들을 네 눈에서 영원히 앗아갈 때면 
네 가슴에 대고 말하라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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