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근래에 기드 모파상의 단편소설집을 읽었다.  그는 사실주의의 대표적인 작가로 근대 단편소설의 창시자 중 하나로 평가받는데, 10년 남짓한 짧은 창작 기간 동안 무려 300여 편의 단편소설과 6편의 장편소설, 그리고 수필, 기행문, 희곡 등을 남긴 천재적인 작가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인생을 마감하기 몇년 전부터는 늙고 병들고 죽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 빠져 과대망상 등 정신착란 증세가 심해, 급기야는 자살을 시도했고, 그 후 정신병원에 수용되어 있다가 43년의 짧은 인생을 마감했다.  화려한 창작 활동에도 불구하고, 그는 죽음의 무게 때문에 심한 갈등과 고뇌의 삶을 살았기에, 결코 행복하지 못했던 것 같다.

오래 전 연구 생활을 할 때, 인간의 뇌와 고양이, 쥐의 뇌가 신경 해부학적으로 너무나 비슷한 데 놀랐고, 어떻게 인간만이 삶의 존재 이유와 목적을 생각하고, 절대자를 찾으며, 영원을 사모하는 영적 존재인지를 심각하게 질문했던 적이 있다.  아마 창세기 2:7의 말씀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에서만 그 대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사람은 과연 무엇에 의해 사는가?”라는 질문은 자기 자신의 앎의 문제를 깊이 탐구하는 철학의 대명제일 것이다. 위에 언급한 모파상의 단편 소설 『마드무아젤 페를』에는 “사소하고 무의미하지만 감미로운 것들이 인생의 골조, 그 기반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라는 말이 나오는데, 그의 인생관을 표출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가 하면 영화 <서편제>에서는 주인공 송화가 어머니에게 들은 말 “그저 살다보면 살아진다”라는, 삶의 의미를 애써 외면하는 듯한 말을 동생 동호에게 해주는 장면이 있다.  과연 우리의 삶은 그런 것인가?

솔제니친의 소설 『암병동』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환자 한 명이 '사람은 무엇에 의해 사는가?'란 제목의 단편을 읽으면서 암병동의 환자들에게 같은 질문을 던진다.  아조프킨이라는 환자는 “월급에 의해서지.  식량 배급과 현물 지급으로 말이야”라고 대답하고, 좀카라는 젊은이는 “우선 사람은 공기에 의해서 살아가요.  그리고 물에 의해서, 그 다음은 음식에 의해서”라고 대답한다.  또 다른 환자는 “자기 능력에 의해서 살아요”라고 그럴싸한 대답을 하고, 또 다른 환자는 “태어난 고향, 자기가 태어난 땅에서 살아간다”라고 대답하기도 한다.  환자중에 지식인을 자처하는 고위 관리는 “사람은 사상성과 사회적 욕구에 의해서 살고 있다”라는 지위에 걸맞는 정치적 대답을 한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사람은 무엇에 의해 사는가?”라는 제목의 책은 톨스토이의 단편으로 그 책에는 “사람은 이기심에 의해서가 아니라, 남을 위한 사랑에  의해서 살고, 사랑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은 그 사람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라고 쓰여 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과연 “사랑”만큼 중요하고 필수적인 것이 있을까?  세상살이가 험하고 결코 만만치 않지만, 아직도 이 세상에는 자기를 희생하며 남을 위해 사랑으로 헌신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이 세상은 아름답고 살 만한 세상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의 회장을 역임한 손봉호 교수는 그의 저서 『나는 누구인가』에서 “사랑이 삶의 참다운 목적이다.”라고 말했다.

한국을 몹시 사랑했고, 『25시』라는 책으로 유명한 게오르규는 'Life'란 단어의 어원은 'love'라고 밝혔다. 

만약 우리에게 사랑이 없다면 인생은 그야말로 지옥 그 자체일 것이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겠다.  이 글을 쓰는 동안,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마태복음 4:4)라는 진리의 말씀이 귓전을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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