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 이야기 (2)

한국 생활 속담에“앙꼬 없는 찐빵”이라는 말이 있고, 아랍권에는 “기술 없는 재능은 오아시스 없는 사막과 같다(Talent without skills is like a desert without an oasis)”는 말이 있다. 모두가 핵심이 빠진 것을 빗대어 말하는 속담들이다. 컴퓨터도 마찬가지이다. 소프트웨어 없는 하드웨어는 고철에 불과하다. 성경에도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있다. 하드웨어는 하나님의 법, 결혼, 약속과 같은 제도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소프트웨어는 그 제도를 원만하게 움직이도록 하는 정신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여러 가지 정신 중에‘헤세드’가 있다. 이‘헤세드’라는 정신이 제도들을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구약에서 이‘헤세드(דסֶחֶ)’라는 명사는 255회 나타나지만 여러 다른 의미로 번역된다.‘신의,’‘충성,’‘사랑,’‘인애,’‘우정,’‘친절’등, 여러 가지 의미로 번역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부끄러운 일’(레 20:14) 혹은‘욕되게 하는 것’(잠 14:34) 등으로도 해석할 수 있기 때문에 정확한 의미를 도출해 내는 것이 어렵다. 그러나 문맥을 통해서, 성경 전체에 담긴‘헤세드’의 제도와 정신을 비교하면 정확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한 예로, 룻기 3:10에 나타난‘헤세드’의 번역을 살펴보자.“그가 이르되 내 딸아 여호와께서 네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네가 가난하건 부하건 젊은 자를 따르지 아니하였으니 네가 베푼 인애가 처음보다 나중이 더하도다.” 이렇게 개역한글 성경은‘인애’라고 번역했고, 표준새번역은‘갸륵한 마음씨’로, 그리고 공동번역은‘효성’이라고 번역했다. 영어 성경들도 마찬가지다. KJV, NASB, NIV, ESV Bible 등은‘kindness’로, NET Bible은‘devotion’으로, TNK Bible은‘loyalty’로 번역했다. 그 문맥은 타작하는 즐거운 날,‘룻’이라는 한 여인이‘보아스’라는 남자에게 결혼해 줄 것을 간청하는 것이다. 현대인의 시각으로 이 문맥을 읽는다면, 룻은 경건치 못한 여인으로 우리에게 읽힐 것이다. 국제 결혼했던 가난한 미망인이 현지인 재력가에게 꼬리치는 꽃뱀 정도로 비칠 것이다. 하지만 구약시대의 법 제도에는 형사취수(兄死娶嫂)제와 비슷한 법이 존재했다. 이 법은 한 형제가 상속할 자녀 없이 죽었을 경우, 다른 형제가 그 죽은 형제의 아내를 자신의 아내로 맞이하여 죽은 형의 가계를 잇게 하고(창 38:1-30; 신 25:5-10), 죽은 형제의 아내를 포함하여 그 재산을 보호하는 법이다(민 36:8-9). 그러니 룻이 보아스에게“당신이 기업을 무를 자가 됨이니이다”라고 말했던 것은 정당하고 합법적인 것이었다(룻 3:9). 이것은 룻이 그런 법적 제도 안에서 보아스가 베풀어 줄 수 있는 인애(헤세드)를 바랐다. 

 

보아스는 다른 자처럼 룻의 간청을 거절할 수 있었다(룻 4:6). 자기 재산에 손해가 나기 때문이다. 나오미와 룻을 먹여 살려야 하는 비용이‘엘리멜렉’과‘말론’이 남겨 놓은 땅에서 나오는 이득을 상회하므로 재정적인 손실이 나는 것이다. 하지만 보아스는 룻을 아내로 맞이하여 유다지파의 한 가계(엘리멜렉-말론)가 끊어지지 않게 만들었고(룻 4:10), 그들에게 있는 모든 것을 나오미에게 값을 주고 사므로 다른 지파에게 땅이 넘어가지 않게 만들었다(4:9). 보아스는 법적인 제도를 지킬 뿐만 아니라 그 법에 담긴 정신인‘헤세드’(인애)도 베푸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모습은 룻에게도 찾아볼 수 있다. 자신의 남편‘말론’이 세상을 떠난 후, 룻은 자신의 동서‘오르바’처럼 모국인 모압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룻 1:14-15). 하지만 룻은 결혼이라는 법제도 안에서 죽은 남편뿐만 아니라 살아계신 시어머니 나오미와 신실한 관계를 맺는다(룻 1:15-18). 이것이 결혼의 언약이고 이 언약 안에 있어야만 하는 정신 곧 인애를 품고 시부모를 부양한 것이다. 이것이 보아스가 말한 룻의 첫 번째 인애이다. 

두 번째 인애는 보아스에게 보인다. 젊은 미망인 룻은 얼마든지 젊은 사람과 재혼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시 한번 법제도 안에서 보아스라는 기업 무를 자를 만나게 되고 그의 나이를 상관하지 않고 청혼을 하게 된다(룻 3:9-10). 이것이 룻이 보인 두 번째‘헤세드’이다. 보아스는 이 두 번째 인애가 첫 번째 나오미에게 보인 인애보다 크다고 말한다(룻 3:10). 

법적인 제도 가운데 그 이득만 보고 인애(헤세드)를 베풀지 못했던 사람들은 룻기 이야기의 변방으로 밀려난다. 결국, 룻의 동서인 오르바와 유다 지파의 어느 기업 무를 자는 역사 속의 엑스트라(a background actor or extra)처럼 사라진다. 반면 룻과 보아스는 구속사의 주류를 차지한다. 이들은 법 제도라는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인애라는 소프트웨어도 잘 작동하게 만든 사람들이다. 

룻과 보아스의 인애(헤세드)는 결혼이라는 제도 속에 앙꼬처럼 오아시스 역할을 한다. 결혼뿐만 아니라‘헤세드(דסֶחֶ)’는 친구 사이에 있어야 하는 신의로(삼하 16:17), 사회 안에서 베푸는 인애로(수 2:12; 느 13:14), 하나님이 언약 백성에게 베푸시는 인애로(출 20:6; 신 5:10; 시 144:2), 하나님의 성품(출 34:6-7; 민 14:18-19; 시 59:17)으로‘헤세드’는 모든 곳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적인 요소이다. 
그렇다면 그 한 예로, 언약과‘헤세드’에 관해 하나님은 무엇을 하실까? 특히 언약과 헤세드라는 단어를 함께 붙여 놓아 관용어처럼 만들어 놓은 것이 구약에 여섯 번이나 나타난다(דסֶחֶהַוְ תירִבְּהַ רמֵוֺשׁ: 신 7:9; 왕상 8:23; 대하 6:14; 느 1:5; 9:32; 단 9:4). 이 모든 구절에서 하나님은 언약과‘헤세드’를 지키시는 분으로 묘사되고 있다. 언약으로 맺은 제도와 당신의 성품을 따른‘헤세드(정신)’를 함께 지키시는 것이다. 특히 당신의 백성들을 향한 이‘헤세드’를 하나님은 끊어버리실 수 없는 것이 된다. 하나님 당신 자신을 부인하실 수 없는 것처럼 당신의 백성들을 향한 이‘헤세드’를 잊어버리실 수 없는 것이다. 

신약성경 탄생 전, 구약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칠십인역은 이‘헤세드’를 ἔλεος(kindness or mercy)로 번역했다. 또한 신약성경에서도 예수님께서 겉모양에만 묶여 있고 본질을 놓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꾸중하실 때,“... 율법의 더 중한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마 23:23)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할 것이다. 이때 사용하신‘긍휼’이 바로 ἔλεος(kindness or mercy)이다. 이것을 우리들이 행하길 예수님은 바라신다. 하나님도 이 언약과 뗄 수 없는 헤세드를 지키시는 분이기에 그 자녀 된 우리들에게도 요구하시는 것이다. 제도와 그‘헤세드’정신은 늘 함께 있어야 한다. 둘이 다 중요하고 그중에서도 빠져서는 안 되는 정신이‘헤세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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