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집 근처의 커뮤니티 파크에서 아침마다 산책을 한다. 나처럼 반려견과 함께 산책을 하는 사람, 달리기나 조기 축구 등 운동을 하는 사람, 잔디를 깎는 사람 등 이른 시간이지만 늘 사람들이 있다. 파크에 나가는 시간대가 비슷해 거의 매일 보게 되는 사람이 있다. 백팩을 멘 중년의 백인 남자인데 간편한 옷차림에 멋진 저먼 셰퍼드와 함께 나타난다. 

그런데 이 남자는 산책만 하지 않고, 공원 여기저기를 다니면서 쓰레기를 줍는다. 잘 꾸며진 파크이지만 이용자들의 문화 수준이 의심스러울 만큼 버려진 마스크, 일회용 음료컵, 과자 봉지 등이 많다. ‘미국 시민도 별수 없네. 나라가 퇴보하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남들이 버린 쓰레기를 줍는 주민을 보니 희망과 존경의 마음이 생겼다. 동참하는 마음으로 나도 눈에 띄는 쓰레기들을 주워 쓰레기통에 넣고 있다. 조만간 인사도 나누고 교제도 해볼 생각이다. 
 

 

둘, 코로나 때문에 아직도 온라인 수업을 하고 있는 대학생 아들이 얼마 전부터 맥도널드에서 파트타임 일을 하고 있다. 최근 판매를 시작한 BTS 세트 메뉴에 대한 반응이 어떠냐고 물었더니 찾는 사람이 꽤나 많다고 한다. 한글이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한국적인 맛이 가미된 소스를 발라서 먹는 치킨 요리는 맛 이상의 즐거움을 가져다 주었다. 전보다 한국 음식점이 늘었고 한국을 아는 타인종이 많아졌음을 확실히 느낀다. 한국인과 교제하고 문화를 경험하기 위해 한인교회 대학 청년부 예배를 방문하는 미국인 이야기도 어렵지 않게 듣곤 한다. 

한국의 인지도를 높여 준 대중 스타들, 박찬호, 박세리, 김연아, 류현진, 싸이, BTS, 블랙핑크가 고맙다. 정서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한국 경제와 한국인들이 얼마나 많은 덕을 보고 있는가. 소규모 자영업자는 물론 대기업들도 그들에게 한턱 크게 쏘아야 하지 않을까? 

셋, 미국 역사를 공부하며 독립전쟁이나 남북전쟁 이야기, 토마스 제퍼슨, 에이브러햄 링컨, 수전 앤서니,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등이 한 일과 그 시대 상황을 살피다 보면, 오늘의 미국이 저절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미국에 와서 고생 끝에 정착하고 자녀세대를 위해 한인 사회를 이루어놓은 1세대 선배님들의 이민사를 들여다보면 ‘한인회가 어떻네’ 라고 뒷담화하기에 앞서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한국은 또 어떤가? 가장 가난한 나라였는데 세계 10대 경제대국을 논할 만큼 발전했다. 대통령을 탄핵할 정도의 정치적 행동, 좌파 정책이나 사회주의 정치체제를 공공연히 논할 정도로 언론과 사상, 표현의 자유를 누리고 있다. 이렇게 되기까지 치열한 민주화 투쟁이 있었고 많은 혼란과 억울한 희생이 있었다. 

한 송이 국화꽃도, 가을의 대추 한 알도 저절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자유는 결코 공짜가 아니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나온다. 메모리얼 데이나 현충일을 단순한 휴일로만 보낼 수 없는 이유가 여기 있다. 

한국 복음화 과정도 마찬가지다. 토마스 선교사나 주기철 목사, 한경직, 옥한음, 하용조, 김준곤 목사 등, 전도와 양육에 온 삶을 바쳤던 신앙 선배들의 노력 덕분에 현재의 한국교회는 한국사회에서 목소리를 당당히 낼 수 있게 되었다. 6,70년대의 교회 전도팀들과 선교단체들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거슬러 올라가 한국 땅에 복음을 전한 외국인 선교사들, 더 올라가서는 예루살렘을 벗어나 이방 땅에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해 준 바울과 누가 등 헬라파 기독교인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근원적으로는 하나님 나라의 문을 열어 주기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희생이 선명하게 다가온다. 
 

 

넷, ‘그들이 없었다면 오늘의 내가 이런 것들을 누릴 수 있을까? ’현재 내게 주어진 환경을 당연시하고 불평과 아쉬움을 말하기는 쉽다. 누군가의 삶을 비판하고 폄하하기는 쉽다. 하지만 우리는 지나간  시대의 사람들이 이루어 놓은 역사의 상속자들이다. ‘그 역사’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로마는 없고, 함부로 판단할 수 없는 속사정이 있다는 걸 생각한다면, 역사 앞에서 조금 더 진지해야 하지 않을까? 더구나 남겨진 유산이 발전적이고 훌륭한 것이라면 그 역사와 그것을 위해 수고한 분들을 잊지 않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우리 모두는 ‘빚진 자들’이다. 빚진 자를 채무자라 한다. 바울은 빚진 자로서 반드시 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 역사에 빚진 우리, 그 역사의 유산인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옷깃을 여미며 깊이 묵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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