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은퇴자의 삶을 살면서, 특히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으로 주로 집안에서 생활하다 보니 가끔은 삶이 지루하다고 느낄 때가 있다.  지루하다는 느낌은 생존을 위해 치열한 싸움을 해야만 하는 분들에게는 미안한 사치스러운 감정이요, 나이에 관계없이 열정적으로 삶을 살아내시는 분들에게는 게으름으로 여겨질 것이다.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지루함은 특별한 걱정거리나 문제가 없는 평범한 일상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이므로,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우리는 종종 잊고 살지만,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각종 질병과 위험에 휩싸여 사는 우리들에겐 별 일 없이 하루를 지낼 수 있다는 것이 엄청 감사할 일이다.

바로 얼마 전 캘리포니아에 사시는 80대의 누님이 사고를 당했다.  동네에서 누님이 기르는 애완견을 걸리던 중에 목줄을 벗어나서 달려온 큰 개가 누님에게 달려들었고, 놀란 누님이 넘어지면서 다리뼈에 금이 가는 사고를 당했다. 

그런데 그 개의 주인은 개를 데리고 사라졌고, 주위 사람들이 누님을 도와 집으로 데려다 주었는데, 점점 심해지는 통증으로 병원의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게 됐다.  통증약을 복용하며 다친 다리의 무릎부터 버팀목(brace)을 착용하여 그쪽 발을 쓸 수가 없게 되었고, 완전 회복에 약 4개월이 걸린다고 한다. 

누님의 사고를 목격한 많은 사람들이 도망간 개 주인 때문에 몹시 흥분하고 그 사람을 찾아내려고 애쓴다는데, 막상 누님의 태도가 잔잔한 감동을 준다.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는 누님은 그분에 대해 분을 품고 속상해하면 자기만 손해라고 마음을 바꾸어 본인이 넘어졌다고 생각하고 마음을 편히 먹는다고 한다.  또한 머리를 다치지 않고 한쪽 다리만 다친 게 오히려 감사하다고 말한다.  사실 누님이 기르고 있는 애완견의 관리 문제도 있고, 불편한 몸으로 일상생활을 하기가 많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이러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신앙의 힘이라고 생각된다.

더욱 아름다운 이야기는 그 동네에서 개를 걸리며 자주 만나던 사람들이 누님을 도와 주겠다고 자원했다고 한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누님은 그간 너무 자기 혼자만을 위한 삶을 살았던 것을 반성한다고 했고, 자기 몸의 불편함 때문에 몸에 장애를 지니며 살고 있는 장애우들을 많이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한다.  사실 누님은 알게 모르게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 주어 왔으나, 이번에 주위 사람들의 호의를 경험하며 남을 도와 주고 섬기는 삶의 진정한 보람과 기쁨을 새삼 깨닫게 된 것 같다. 

유대인의 지혜서 탈무드에서는 지혜자를 “감사할 줄 아는 사람, 늘 배우려고 하는 사람”으로 정의했다는데, 이렇게 볼 때 누님은 지혜의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통계적으로 보면 세계 인구의 약 10%가 장애인이라고 한다. 우리 모두는 언제라도 질병과 사고로 장애를 입을 수 있는 예비 장애인이며, 전지전능하시고 완전하신 하나님 앞에서 모든 인간은 불완전한 장애인임에 틀림없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우리가 가지기 쉬운 우월감으로 인한 교만한 마음 혹은 열등감으로 인한 자기 비하의 마음이 많이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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