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가슴 속에는 언제나 부흥에 대한 갈망이 있다. 우리는 처음 예수님을 믿고 교회에 갈 때부터 부흥을 위해 늘 기도해 왔다.

우리 각자가 하나님의 임재에 강하게 붙들려 말씀으로 인도함을 받고 하나님의 영광을 목도하길 원하고, 함께 모여 예배할 때 하나님의 강한 능력의 역사로 회개와 치유가 일어나는 모습을 기대하며, 우리가 속한 사회와 국가가 거룩하고 분별 있는 리더들에 의해 변화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방향으로 세워지길 열망하며, 나아가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온 땅에 가득하도록 주의 택한 일꾼들이 열방을 향해 줄지어 헌신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 당대에 일어나길 간절히 기도했다.

로이드 존스 목사는 부흥을 경험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함, 우리의 죄인됨과 회개,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에 대한 확신,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그 구원을 알게 되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이러한 결과로 우리의 마음 속에 평화와 기쁨이 찾아온다. 사랑으로 충만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에 몰두하며, 누구를 만나든지 이런 변화에 대해 얘기하고, 모이고 싶어하고, 밤이 새는 줄도 모르고 계속 예배하고 싶어한다. 자신의 가족과 불신자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

한국 교회는 초창기부터 사경회, 부흥회 등을 통해 부흥에 대한 갈망을 고취시켜 왔다. 적어도 한 세대 전까지는 교회에서 부흥회를 할 때 큰 기대를 갖고 몇 달 전부터 기도하고 은혜 받으려고 준비했던 기억이 있다. 교회의 부흥회, 기도원의 특별집회, 혹은 연합 수련회에 참여할 때에도 현재의 문제가 해결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겠다는 결심들이 있었고, 앞자리에 앉으려고 일찍 집회에 가서 준비하곤 했다. 실제로 한국 교회에는 그런 기대와 열심에 비례해 수많은 성도들이 위와 같은 변화들을 경험했다.

요즘은 부흥회에 대한 인식이 무척 달라져 있다. 기대감이 없어졌다. 부흥에 대한 영적 갈망이나 필요가 없어진 것은 아니다. 우리는 여전히 부흥에 목말라 있고, 코로나 시대에 사는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부흥이 필요하다.

그런데 왜 우리는 부흥회에 대한 기대감이 없는 걸까? 아마도 부흥회를 통해 부흥에 대한 영적 실재를 좀처럼 볼 수 없기 때문인 것 같다. 부흥회의 목적은 심령의 변화인데, 그러한 영적 실재가 없으니 부흥회를 이야기하는 것이 공허해 보이고, 현실적이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예전처럼 부흥회에 참석해서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뜨거운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 직장 동료들에게 간증하고, 친구들을 열심히 교회에 초청하는 사례들이 많다면, 대부분의 교인들은 부흥회나 특별 집회를 여전히 사모할 것이다.

코로나 시대에 시카고 지역에서 연합부흥회를 갖는다. 부흥회 자체에 대한 순수한 관심이 식은 이때, 그것도 온라인으로 갖게 되니 효과가 어떨지 걱정부터 하는 분들이 많다. 연례행사를 기계적으로 해야 한다면, 부흥회에 영적인 실재가 없음에도 무언가를 시도해야 하기에 하는 것만으로도 잘하는 일이라고 해야 하는가? 아니다!

부흥회를 준비하면서 분명한 확신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의 부흥을 간절히 소망하신다는 것이다. 부흥을 통해 아버지 집에 살고 아버지 집의 부요한 영광을 보며 기뻐하고 평안함을 누리길 바라신다.

9월 둘째 주에는 시카고 지역의 모든 교회들이 하나님 앞에서 부흥을 부르짖기를 원한다. 코로나로 진실한 그리스도인이 더 잘 드러났다. 교회들마다 형식적으로 하나님을 예배했던 교인들은 코로나로 교회와 더 멀어진 양상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사모하는 그리스도인들은 그 어느 때보다 영적인 계기를 구하고 있다. 이번 부흥회가 교회마다 그런 모멘텀이 되었으면 좋겠다.

불쌍한 그리스도인은 없다. 그리스도인은 아버지의 영광의 집에서 살기에 그분의 보호를 받는 행복한 사람이다. 부흥회를 통해 코로나를 지나는 우리들이 다시 한 번 부흥을 경험하여 행복한 그리스도인으로서 현재의 삶을 해석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길 소망한다.

“원하건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출 3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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