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혜 3

예수님은 사역 초기에 주변에 모여드는 사람들 중에서, 또는 어떤 사람을 직장으로 찾아가서 제자로 부르셨다. 열두 명을 확정하시기 전날 밤에 철야 기도를 하신 것을 보면(눅 6:12) 신중하게 결정하신 것 같다. 이 부분이 늘 의아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데 기도하실 게 있었을까? 

선교지에 와서 내가 했던 기도 내용들을 떠올리다가 ‘아,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시니, 기도할 게 참 많았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눅 22:31-32).

열두 명의 제자들을 보실 때마다 얼마나 기도할 것이 많으셨을까? 나도 현지인들을 위해 기도할 것이 많은데, 예수님은 제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할 내용이 얼마나 많았을까?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셨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사람을 아셨다고 하셨다(요 2:25b). 늘 넘어지는 연약한 인간, 상황만 되면 배신 때리는 인간을 한두 명도 아닌 열두 명이나 제자로 삼으셨으니, 그것도 하늘 나라를 건설할 위대한 사명을 맡길 제자로 뽑으셨으니, 얼마나 기도할 것이 많았겠는가?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처음부터 가룟인 유다가 배신 때릴 자이며 마귀임을 알고 계셨다는 흔적을 찾을 수 있다(요 6:64-65; 70-71). 다 아시면서도 예수님은 가룟인 유다를 차별하거나 무시하거나, 사명을 몰수하거나, 돈궤 맡은 보직을 박탈하시지 않으셨다. 사람들은 돈 궤 맡는 보직을 아무에게나 맡기지 않는데, 돈 훔쳐가는 것을 아시면서도(요 12:6) 그냥 두시고, 더 나아가 끝까지 사랑하셨다(요 13:1-2). 

그뿐만 아니라 가룟인 유다를 포함하여 모든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다(요 13:4-11). 어쩌면 선교할 때, 교회 일꾼을 선출할 때 사람 됨됨이에 마음  쓰지 말고, 기도에 힘쓰라고 본을 보여 주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어떻게 가룟인 유다를 앞에 앉혀 놓고 얼굴 한 번 붉히시지 않고 말씀을 가르치실 수 있었을까? 혹시 변화되기를 기대하신 걸까? 함께한 11명의 제자들이 3년이나 눈치 채지 못하도록 하시면서 가끔  본인만 알아듣도록 옆구리를 찌르셨을까?

예수님은 자신의 일에만 충실하셨다. 가라지 뽑는 일은 하시지 않았다. 가라지와 알곡을 가려내는 일은 하나님 아버지께 맡기고, 끝까지 그들을 사랑하시고, 훈련하시고, 그들이 변화되기를 바라며 기도하셨을 것이다. 우리는 터럭 하나 희거나 검게 할 수 없는 사람이다. 그러니 의심하지 말고, 속지 않으려고 애쓰지 말고, 끝까지 사랑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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