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준 장로(워싱턴 주)
내가 어렸을 적인 60~70년 전까지만 해도 신부의 집에서 결혼식을 하고 신부가 꽃가마 타고 시집가던 광경을 종종 볼 수 있었다. 가난한 시절이었기 때문에 신랑이 말 타고 장가가는 풍경은 보지 못했다.
2명이나 4명이 가마를 메고 가면 날이 좋거나 더운 날에는 가마의 작은 창문을 열어놓고 가는 경우가 있는데, 개구쟁이들이 따라가며 연지곤지 찍은 신부를 구경하며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 신부를 맞은 신랑 집에서는 동네 잔치가 벌어지고 초야에는 여인들이 모여들어 창호지 문에 손가락으로 침을 묻혀서 구멍을 내고 신방을 훔쳐보며 웃음꽃을 피우기도 했다.
사생활을 중하게 여기는 지금 세상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 되어버렸지만, 그 당시에는 당연히 그렇게 하는 것으로 알며 살았다. 여러 시간 걸려서 시집갈 때 신부는 중간에 소변을 참아야 하므로 미리 물을 먹지 않고 준비했다고 한다. 물론 아주 먼 거리에는 요강을 준비했다.
2년여 전에 지금의 가게를 사서 들어온 후 이 지역 주민들과 많은 교류를 하고 있다. 한국전에 참여하셨던 90세 넘은 할아버지께 무료로 커피나 음료수를 제공하는데, 할아버지께서는 연어 부화장에서 알을 채취하고 난 생선을 얻어다가 주신다.
지난해 맥주 2상자를 훔쳐 달아난 범인을 CCTV로 확인한, 이 동네에 거주하는 경찰이 누군지 알 것 같다고 했다. 며칠 후 범인이 100달러를 가지고 와서 사과하고 돌아갔다. 이렇게 인연이 된 경찰이 거의 매일 가게에 찾아와 친하게 지내고 있다. 지난 토요일에 같이 살고 있던 여자 친구와의 결혼식이 있었다. 둘 다 재혼이었다.
여자 친구는 아들 셋을 키우고 있는 40대 초반의 상냥하고 친절한 우체부 아줌마이다. 얼마 전에는 우리 가게에 와서 정리 정돈도 도와주고 친하게 지내는 사이다. 이런 좋은 관계의 손님이 결혼식 초청을 하니 기쁨으로 참석했다.
미국에서 산 지 어언 43년, 미국인과 한국인의 결혼식에는 많이 참석하였으나 미국인들끼리 하는 결혼식에는 처음이어서 호기심을 갖고 갔다. 우리 집에서 가까운 데 있는 그들의 집은 45에이커, 5만여 평의 넓은 대지에 그림같이 아름다운 집이다. 대부분 숲으로 둘러싸여 있고 닭과 말과 개를 키우고 있으며, 큰길에서 드라이브 길을 따라 들어가며 앙 옆에 넓은 초원이 있다.
이미 수십 대의 차량이 잔디밭에 세워져 있고 하객들 대부분이 우리 가게 손님들이기 때문에 반갑게 인사하고 대화를 나눴다. 결혼식의 주인공 신랑이 평상복을 입고 지게차를 몰고 얼음을 나르며 일하고 있었다. 언제 옷을 갈아입으려고 저러고 있나? 생각했는데 잠시 후 그대로 입장했다.
나는 그래도 남의 집 결혼식인데 하고 양복바지에 구두를 신고 더운 날씨인데도 와이셔츠를 입고 갔다. 그런데 하객들 대부분이 청바지에 셔츠 차림이었다. 여자들도 모두 평상복이었다. 식장은 넓은 풀밭이었다. 한편에 며칠 동안 나무를 직접 다듬고 깎아서 네 기둥을 세우고 연결하여 장미 넝쿨이라도 올렸으면 좋을 조형물을 만들어 놓고 바닥에는 사냥하여 잡은 곰 가죽을 깔아놓았다.
하객들을 위하여 마른 풀단을 방사형으로 늘어놓고 그 위에 마대를 깔아서 앉도록 했다. 사회자도 청바지에다 셔츠 차림이었다. 세 아들이 들러리로 입장하고 6살짜리 막내가 링 보이 역을 했다. 신부의 부모님이 손을 잡고 입장하고 신랑의 어머니가 휠체어를 타고 신랑이 밀면서 들어왔다. 드디어 신부가 평상복을 입은 그대로 부케를 들고 입장했다.
한쪽에는 천막을 치고 음식을 진열하여 놓고 식탁 테이블과 접는 의자가 놓여 있었다. 백오십여 명의 동네 사람들과 친척들이 모여서 새로운 출발을 축하했다. 격식과 허례허식이 없는 자연스러운 분위기가 좋았다. 뒤쪽에는 긴 트레일러 위에 밴드가 있었다.
우리 부부는 식사가 끝난 후 가게 일을 해야 하므로 돌아왔는데, 드넓은 잔디밭에서 밤늦게까지 바베큐 파티를 하고 춤을 추었으며, 여러 사람이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내가 살아온 스타일과 전혀 다른 미국 사람들의 축제에서 새로운 모습을 본 것 같았다. 소박하고 꾸밈없는 모습이 정감 가고 좋았다. 양복은 서양사람들이 입는 옷인데 세계적인 예복이 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한국 사람들이 너무 격식에 얽매여 예복을 입고 있는 것 같다.
자유롭고 아름다운 지역에서 그들과 정을 나누며 살 수 있는 은혜에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