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성환 목사(PMI 바울사역원 대표)

그는 중동 사람답게(?) 턱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마른 체격이었지만 이목구비만으로도 충분히 출신 지역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함께 온 아내는 히잡을 쓰고 있었다. 난민이나 이주 근로자 가족이 아니라 공부하러 온 유학생인데도 여전히 히잡을 쓰고 생활하는 것을 보니 전통 의식과 종교성이 강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에서 살면서 꼭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내가 이들과 정말 마음 편하게 지낼 수 있을까?’ 의지만으로 다가가기에는 정서적 이질감과 선입견이 큰 장애물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무슬림’, 이름도 모하메드라고 했다. 

참고로 내 영어 이름은 Paul(바울)이다. 떠오르는 단어와 연상 장면들은 시아파, 수니파, 전쟁, 라마단, 모스크와 아잔, 메카 순례, 압사 사고 그리고 테러... 부정적인 생각을 떨치려고 머리를 흔들었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모두 하나라는 말씀을 힘주어 설교했던 내 모습을 떠올렸다. PMI의 I 가 international의 첫 글자라는 사실도 되새겼다. 거기엔 흑인과 아프리카 대륙과 중국뿐 아니라 중동 지방과 그 지역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겠지?

만난 지 한 달여가 되었다. 한 가지 분명하고 새롭게 느낀 것은 그도 나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미루어왔던 식사 모임 날짜를 정했다. 굳이 식사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그리고 크리스천 목사인데 무슬림을 집으로 초대해서 식사를? 베드로도 식사하다가 멈춘 적이 있는데? 머리 한켠에 이런 생각이 있었지만, 마음은 이미 식탁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무슨 메뉴로 할까? International 하려면 한식을 주 메뉴로 하면 안 되겠지? 스테이크 요리가 제일 편하고 대접받는 느낌도 줄 수 있긴 한데 말이야. 아들이 돼지고기는 안 먹을 거라고 말해 주었다. 그 정도는 나도 알아. 그런데 생선은 먹나? 참 지난 번에 할랄 푸드 어쩌구 하던데... 식사 시작할 때 기도는 함께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의외의 고민거리들이 줄을 이었다. 

이슬람 문화와 무슬림 생활 양식에 대해 인터넷을 뒤져보았다. 그리고 대범한(?) 결정을 했다. 할랄 마켓에서 소고기를 샀다. 제사 음식 문제로 고민하던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생각났다. 한국에서 할랄 단지를 조성하려던 계획을 기독교인들이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는 뉴스를 본 기억도 났다. 

식탁 위의 메뉴를 보고 모하메드는 조심스럽게, 그러나 그런 상황에 익숙한듯 “고기는 안 먹어요(못 먹어요)” 라고 말했다. 걱정하지 말라고, 할랄 마켓에서 사온 고기라고 말해 주었다. 순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모하메드의 얼굴이 환해지면서 너무 좋아하는 표정! 고맙다는 말을 연거푸했다. ‘식사 초대받으면서 얼마나 고민스러웠을까?’ 식사는 맛있고 모임은 밝고 수다스러웠다. 일상의 이야기들과 자신들의 고국에 관한 이야기들은 새롭고 흥미로웠다. 

낚시를 좋아한다는 모하메드는 그 외에 또 어떤 취미가 있느냐는 질문에 자동차에 관심이 많고 고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나도 그렇다고 맞장구를 쳤다. 그리고 집에 1년 가까이 세워둔 차가 있는데 아직 못 고치고 있다고 말했다. 그때 난 또 한 번 확연히 느꼈다. 모하메드의 동공이 확대되고 있음을. 그는 자신이 봐줄 수 있다고 했다. 그래 주면 좋겠다고 했더니, 바로 보자고 했다. 밤 9시인데? 

그 길로 우리는 차고 앞으로 갔다. 모하메드는 먹이를 발견한 맹수처럼, 물 만난 고기처럼 신나서 달려들었다. 엔진룸을 들여다보고 자기 차에 있는 도구들을 가져와서 이것저것 해보고 원인 규명과 해법 제시, 임시 방편의 해결과 시운전까지. 다음날 나는 그가 제시한 대로 부품을 교환하고 차를 굴릴 수 있었다. 1년하고도 3개월만에 폭스바겐 비틀즈 안에서 감탄사를 연발하면서 말이다. 차만 보면 고구마 먹는 기분이었는데, 그날은 사이다를 1리터 이상 마신 듯했다. 

그 일을 계기로 우리는 한층 더 가까워졌다. “Hi, Mohammed!”  “Hi, Paul!” 예수님의 선교 명령인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말씀을 달성하려면 먼저 ‘가야’ 한다. 여기서 간다는 것은 단지 공간적 이동이나 돌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과의 ‘만남’ 즉 관계를 맺으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한 만남은 일방적 주입식이 아니라 상호 존중과 배려의 과정을 거치며 서서히 만들어지는 것임을, 그래야만 하는 것임을 실습하고 있다. 요즘 모하메드와의 만남이 참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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