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의 뜻에 순종하여 끝까지 믿음으로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는 것"

임태집 목사(로고스선교회 협동 목사)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브리서 12:1-2)

도쿄 올림픽 출전 자격을 얻는 400m 허들 육상 경기에 참여한 21세의 시드니 매클로플린(Sydney McLaughlin)은 이 경기에서 세계 신기록을 남겼다. 도쿄 올림픽 선발에서 그녀는 “내 조국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대표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지 먼저 말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시드니는 올림픽 육상 경기에서 자신의 국가를 대표해서 뛰었던 것뿐만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대표주자로서도 뛰고 있음을 명백히 모든 사람에게 알렸다. 이번 도쿄 올림픽 여자 400m 허들 결승전에서 시드니는 51.46초라는 역사상 가장 빠른 기록으로 우승했다.

그리스도인들의 경주의 목표인 예수님은 공생애 동안 하나님에 대한 철저한 신뢰를 나타내어 ‘허다한 증인들’보다 더 앞서 믿음의 길을 걸어가셨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지상 생활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성취한 자임을 나타낸다. 그리스도께서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면서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자로서 그의 경주를 완벽히 완성하시어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신 영광을 얻으셨다.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라는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와 그 수치를 참으시고 이루신 승리가 영원하며 완전함을 나타낸다. 시드니는 “나는 내 인생에서 하나님이 실패하신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내가 모든 경주에서 이기지 못하거나 내 마음의 소원을 모두 받지 못한다고 해서 하나님이 실패하신 것은 아닙니다. 그의 뜻은 완전합니다.”라고 고백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6:33에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세상으로부터의 승리를 묘사하면서 동사의 완료형으로 말씀하셨다. 말씀할 당시 아직 십자가를 지지 않으셨으므로 부활의 승리 역시 거두지 않으셨다. 그런데도 완료형 동사를 사용하신 것은 그 승리가 미래의 일이지만 완전히 확보되어 있음을 말하고, 그 승리가 영속적인 것을 내포한다. 그리고 이 승리는 그리스도 자신에게만 국한하지 않고 그와 연합한 모든 자들에게 같은 의미로 적용된다. 그래서 바울은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기느니라”(롬 8:37)라고 고백할 수 있었다. 우리가 세상을 이기는 것은 이미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있기 때문이고, 그리스도의 승리는 곧 그리스도인의 승리이다. 

시드니는 “그가 이미 이겼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웃을 수 있습니다.”라며 “내 영혼은 그분이 우리와 같지 않다는 것을 알고 평안합니다. 그분은 변하지 않으시며 결코 나를 떠나지 않으실 것입니다. 상황과 관계없이 완전히 만족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십니다.”라고 고백하였다. 세상을 이긴 주님 안에 있으면 참된 평안을 얻는다. 상대를 이겨서 승리의 전리품을 챙겼다고 온전한 승리가 아니다. 얻었지만 빼앗길 것을 생각하여 두려움에 떨면 승리가 아니다. 참 승리는 마음에 무한한 자유와 평안을 얻는다.

믿음의 경주서 승리란?

예수님은 승리를 보는 차원이 달랐다. 승리의 일반적인 개념은 소유하는 것이요, 쟁취하는 것이요, 빼앗는 것이요, 높아지는 것이요, 상대를 정복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승리를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 것으로 보았다. 예수님은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라고 말씀하셨다(요 6:38). 또한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였다(마 26:39). 히브리서 12장에서 예수님은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기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셨다. ”예수님은 이 땅에 보내신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십자가 위에 매달리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 이루었다”라고 외치셨다(요 19:30).

세상 사람들 기준으로 보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을 실패자요 패배자로 여길 것이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은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을 서서 구경하고 관리들과 로마 군인들은 예수님을 향하여 만일 메시아이고 유대인의 왕이면 너 자신을 구원하라고 비웃으며 희롱하였다(눅 23:35). 하지만 예수님은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있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자신의 양식이 될 만큼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데 모든 공생애 시간을 보내셨다. 한번은 사마리아 지역을 지나가다가 먹을 것이 떨어져 제자들이 마을에서 음식을 구하여 가지고 왔다. 요한복음 4:31-34에 “그 사이에 제자들이 청하여 가로되 랍비여 잡수소서 가라사대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제자들이 서로 말하되 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는가 한대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라고 하였다. 예수님은 영적 양식을 참된 양식이라고 생각하셨고, 그 양식은 그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하나님의 구속사역을 완성하는 것이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향하신 뜻을 분명히 알고 주님 안에서 그 뜻에 순종할 때 진정한 승리자가 된다. 예수님이 우리 앞에 당한 경주의 목표이자 표본이다. 디모데전서 6:12에,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라며, 이를 위하여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대표 주자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말한다. 시드니는 “나의 여정이 분명히 하나님께 대한 순종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나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분의 영광을 위해서입니다.”라고 고백했다.

우리는 인생의 경주를 하고 있다. 이 경주에서 온전한 승리는 남보다 더 앞서 골인하거나 더 많이 갖거나 더 높은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럴 수도 있지만, 그것이 시드니의 고백처럼 나의 만족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다. 주님께서 나를 부르신 뜻을 분명히 알고 그분의 뜻에 순종하여 끝까지 믿음으로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는 것이 세상을 이기고 결국에는 참된 의미로 승리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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