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의사의 간증(1)

Henry Shin(자비량 단기 의료선교사, CMM기독의료상조회 이사)

삶의 위험한 고비를 지나

나이 70 중반을 넘으니 종종 ‘다들 어디 갔어?  왜 나만 아직  여기 있지?’라고 생각하고는 소스라치게 놀라곤 한다. 해가 지나면서 주변의 친구들이 하나둘씩 이런저런 이유로 세상을 떠나더니 이젠 거의 다 떠나고 없다. 학창 시절부터 오랜 세월 동안 전우애 같은 느낌을 가지게 했던 친구들 아니었던가?

돌아보니 나 역시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질병으로, 사고로 죽을 뻔한 경우가 족히 다섯 번은 있었던 것 같다. 지나간 그 언젠가는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는 옛말처럼 ‘아! 이젠 떡 본 김에 제사 지내 버리지!’라며 낙심하여 나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안타깝게 하기도 했다.

자가면역 질환

인생길 30대 중반에 자가면역 질환(Autoimmune disease)의 하나인 악성 궤양성 대장염(Ulcerative Colitis)의 초기 증상이 나타났다. 이후 50대 중반 쯤  절정에 이르렀다. "고생과 수고가 다 지난 후 광명한 천당에 편히 쉴 때…" 이제 그만 쉬고 싶어 이 찬송이 자주 입에 오르곤 했다.

언젠가 환자 앞에서 갑자기 항문에 급한 소식이 왔는데 이를 조절할 수가 없었다. 순간 피 설사가 바지를 타고 내리며 신발을 덮쳤다. 화장실에 가서 ‘오! 아버지!’ 하며 통곡을 한 적이 있다. 또 그 언젠가는 ‘The Passion of the Christ’ 영화에서 철퇴 맞으신 예수님의 몸처럼 그런 흉측한 모양의 상처가 나의 대장 전체 내벽에 있는 것을 내시경으로 보면서 너무 측은한 생각에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1990년대 중반, 시애틀에서 열렸던 암 학회에 참석하고 돌아온 후 멈추지 않는 혈변 때문에 입원하였다. 마치 어렸을 때 즐기던 단팥죽 같은 출혈이 일주일 내내 계속되었다. 입으론 전혀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고 수액 공급으로 탈수를 간신히 면하였다. 몸은 쇠약해져서 체중이 줄고 빈혈이 생겼으며 얼굴은 몹시 초췌해 갔다.

자가면역을 감소하기 위해 고농도의  코티손을 혈관 투여해도 효과가 없었고, 당시 남은 의학적 치료 방법은 자가면역 공격 대상인 손상당한 대장 전체를 제거하고 인공 항문을 붙이는 시술만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한편 주변에서는 “모두 떼어내고라도 살아야지”, 또 다른 이들은 “그래도 하나님이 주신 장기를 보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야지”라고 권면의 말을 했다. ‘어느 쪽이 내게 맞는 치료의 길인지?’ 분명한 음성이나 확신이 있으면 좋겠는데 알 수가 없었다. 답답했다.

간절한 기도

‘확신을 하게 하는 하나님의 음성이라도 들리면 얼마나 좋을까?’ 하며 기도하고 깊은 고뇌에 들어 가곤 했다. 바울 사도께서 로마서 8:26-28에 “빌 바를 알지 못하는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성령님이 하나님의 뜻대로 믿는 자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말씀하신 것처럼 성령님께서 간구하시는 그 음성이 내게 들려 인도해 주시기를 진정 바라고 있었다. 

그런 막연한 생각이 드는 순간에 문득 ‘기드온의 기도와 응답’(삿 6:11-18)이 머리를 스쳐 갔다. ‘옳지, 그래. 기드온처럼 확실한 표징을 받아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하나님, 내일 아침에 처음 나오는 분비물이 정상적인 변이면, 그것은 수술을 받지 말라는 말씀으로 알고, 피똥이 계속 나오면 수술을 받으라는 신호로 알겠습니다.’라고 간절히 기도하며 병상에서 잠이 들었다.

새벽이 되었다. 떨리고 두려운 맘으로 변기에 앉았다. 무엇인가 나오는 느낌이 들었다. ‘단팥죽 같은 혈변? 혹은 다른?’ 시간이 조금 흐른 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변기 안을 내려다보았다. ‘아! 놀랍게도 아이스크림 콘에 곱게 쌓인 것 같은 노란색의 변이 쌓여 있지 않은가?’ 너무 감동하여 사진을 찍어 한동안 보관했다. 나의 아내가 하나님 앞에서 이에 대한 산 증인이다.

다윗 왕이 밧세바가 낳은 아이가 죽었음을 알았을 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목욕재계하고 식탁에 앉았던 것이 떠올랐다. 그래서 간호사에게 깔개를 달라고 하여 바닥에 깔고 병상을 붙들고 걸음마를 조금씩 시작했다. 선하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느끼며 음식 조절과 약물 치료로 호전되어 40일 후에는 다시 의료인으로서 삶을 이어갈 수 있었다. 지금은 약물 치료를 안 하지만 먹는 것 마시는 것 일체를 지극히 조심하며 2년마다 대장 내시경(Colonoscopy)으로 대장 내벽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의료 단기 선교

2001년 3월 은퇴 후, 첫 단기 의료선교를 그 당시 세계에서 가장 경제적으로 열악한 나라 방글라데시 찔마리 지역 KDAB로 갈 기회가 생겼다. 그곳 선교사님들로부터 성경 말씀대로 복음 전파와 작은 자들을 섬기는 법을 보고 배웠다. 그리고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뱅골인들을 보며 하나님께 더욱 감사와 절제를 배우는 복된 훈련 기간을 경험했다. 선교 여행을 하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급한 설사 한 번 없이 무사히 돌아올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

하나님께 징표를 보여달라는 요구는 케냐 나이로비 선교병원(Kijabe Mission Hospital)에서 말라리아 뇌막염 환자를 두고도 했는데 이에 대해 응답받은 이후부터는 더 하지 않았다.  왜나하면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기(마 4:7) 위해서였다. ‘한 번 확인해 봐!’라고 하나님을 시험해 보고자 하는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서였다.

지금 있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

나이 60이 되었을 때, 회갑 잔치를 성대히 했다. 원근 각처의 친지와 믿음의 형제자매, 친구들을 초청해서 잘하였다. 병으로 지질히 고생하면서도 인생 60이 됐으니 진정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 예배였다. 아내와 대학에 다니던 세 자녀가 합심해서 정성껏 준비한 성대한 회갑연이었다.

20년이 지난 오늘도 ‘내가 왜 지금 여기 있지?' 위태했던 삶의 연속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함께하신 이유를 묵상한다. 항상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며(롬 1:20) 찬양하기를(시 150:1) 원한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창 3:1-5)라고 외쳐본다. 이 땅에 있는 그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게 하신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나의 모습이 지속되길 원하며 ‘주여 긍휼히 여기소서!’라고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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