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준 장로(워싱턴 주)

백향목 어린 순이 기록적으로 뜨거운 태양열에 화상을 입고 진한 갈색으로 타들어 가 불볕더위가 무엇인지 가르쳐 준 무덥고 긴 여름이 끝자락을 보이고, 하늘하늘하며 가을 바람에 일렁이는 예쁘디 예쁜 코스모스가 미소를 보내 주는 전원의 아침 햇살이 눈부시다.

올해에도 들깨 모종을 많이 심어서 키웠다. 우리집 식구들은 깻잎을 좋아하여 장아찌를 담아 먹곤 했는데, 옛날 어렸을 적 시골에서 살 때는 장독대 커다란 항아리에 메주를 쒀서 만든 간장과 된장이 가득했다. 늦여름부터 깻잎을 수확하여 된장 속에 박아 놓으면 발효가 되어 맛있는 된장 깻잎 장아찌가 된다.

결혼하고 미국에 와 살면서 된장을 담을 줄 몰라 마트에서 사다 먹는데 시간이 지나면 까맣게 변한다. 고향에서는 몇 년씩 두고 먹어도 변하지 않았는데 왜 그럴까? 생각했는데, 콩으로 메주를 쑨다는 것은 천하 진리인데 요즘은 얄팍한 상혼에 대부분의 된장 공장에서 콩은 조금 넣고 밀가루를 많이 넣고 만들어서 그렇다는 이야기다.

요리에 문외한인 아내가 간장에 깻잎을 절여 놓았다가 숙성된 후 꺼내어 각종 양념을 넣고 버무려 놓으면 그래도 맛있다 하면서 먹었다. 그런데 어느 요리 프로그램을 시청하다가 배워서 손수 만들어 보았다. 간장과 멸치액젓을 섞고 매실청, 간 마늘, 손수 담근 포도주 약간과 양파채를 넣고, 아내가 위장이 나빠 매운 것을 전혀 먹지 못하므로 안 매운 피망 고추를 다져 넣고 간을 맞추기 위하여 끓인 물을 충분히 넣은 후 된장을 풀고, 잘 손질하여 씻어 놓은 깻잎을 용기에 넣고 그 위에 부어 주었다.

얼마 후 맛을 보니 지금까지 짠 간장에 절였다 먹어온 것과는 비교가 안 되는 환상적인 맛이 입속에서 요동친다. 딸과 아내도 맛있다고 야단이다. 중이 고기 맛을 보면 빈대도 남지 않는다는 옛말이 생각나서 그린하우스 안에 있는 깻잎을 모조리 따서 씻어 놓았다.

얼마 전에 가까이 지내는 이웃이 놀러 왔다. 대화를 나누다가 아내가 텃밭에 데리고 나가 구경을 시켜 주다가 깻잎 한 줌 따가라고 했다. 모녀가 달려들어 따는데 끝이 없다. 드디어 큰 잎은 다 땄네! 하면서 끝이 났다. 그야말로 초토화되었다. 다행인 것은 세 지역에 나누어 심었기 때문에 제일 많은 한 곳만 따가고 다른 곳은 남았다.

오래 전 큰아들 돌잔치 때 생각이 난다. 손님 3-40명을 초대하여 음식 준비를 하는데 미리 오신 손님이 텃밭에 열린 고추를 보고 나 풋고추 한 주먹 따도 돼요”? 하니 어머니께서 그러시라고 하셨다, 막 따고 있는데 다른 분이 오셔서 물으니 따도 된다고 했다 하니 너도나도 달려들어 땄다. 잔치가 끝나고 나가보니 고추는 작은 것 하나도 없이 그야말로 싹쓸이했다. 8월 말이었기 때문에 그해에는 고추 맛도 못 보고 지낸 일이 있다. 따는 사람은 한 줌이지만 키운 사람은 온갖 정성을 들여 키운 것인데.......

깻잎이나 근대, 상추, 부추 등등 잎을 따먹는 채소들은 자라는 대로 따 먹어야지 그냥 두면 누런 잎이 져서 못 먹게 된다. 아껴 먹는다고 그냥 두지 말고 부지런히 따서 나누어 먹으면 항상 싱싱한 것을 먹을 수 있고 나눌 수 있어서 좋다.

우리 가게에서 30분 고속도로를 달려가면 한인이 운영하는 가게가 있다. 처음에는 가서 내가 문의하고 도움도 받고 그분들도 들러서 정담을 나누고 지냈는데, 어느 날부터 안색이 좋지 않고 몇 가지 물건값이 자기 가게보다 싸고 자기 가게와 같은 도로상에 있어서 피해가 된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25마일이나 떨어져 있는데 무슨 말씀이냐고 했다.

그 후에 내가 잡은 준치와 우리 집에서 생산한 신선한 무공해 달걀과 깻잎 그리고 각종 채소 모종을 가져다 주었더니, 얼마 후에 무와 배추를 여러 상자 가져왔다. 그분의 친구가 커다란 농장을 하고 있다.

단골손님 중에 봉사센터에서 일하는 분이 각종 채소를 모아 만든 종합채소 선물 상자를 지난해부터 격주로 두세 상자씩 가져다 주신다. 남는 채소 한 줌씩 나누다 보니 이제는 상자로 나눌 판이 되었다. 도매상 가는 길에 여섯 상자를 가지고 나가서 나누고 왔다.

며칠 전 한국에 있는 친구가 영상을 보내왔는데 박상은 의사 선생님이 강의 중에 사람의 건강을 지켜 주는 윤택하고 건강하던 상피세포로 구성된 피부가 사명을 다 감당하고 노화되면 목욕을 하며 닦아내는 때가 되어 씻어 버리게 된다고 한다. 모든 것에 시작이 있고 끝이 있다. 즉 때가 되면 사명을 다 감당한 후 때가 되어 버려지는 것이 이치다.

신기하게도 감사하면 감사할 일들이 더 많아지고 하찮은 것도 나누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나눌 것이 자꾸 생기는 것은 하늘의 이치인 것 같다. 작은 채소밭을 가꾸며 나누었더니 이제는 상자로 들어오고 나가는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신 은혜에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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