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4일 뉴욕에서 제76차 유엔 총회가 시작되었다. 기후변화에서 코로나19에 이르기까지 당면 문제들이 토론의 주를 이루겠지만, 오늘은 유엔 대사 인증과 유엔 총회 연설을 요구한 탈레반에 주목해 보려고 한다. 지금은 탈레반이 아프간을 통치하고 있지만, 전 아프간 정부가 유엔의 인증을 받은 상태이다. 그러나 유엔의 인증을 받은 전 아프간 정부의 대표들은 대부분 아프간을 떠났다.

유엔은 올해 총회 회기 중에는 결정이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지만, 연말에는 상황이 바뀔 수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탈레반의 유엔대사를 인정하는 것은 탈레반 정부를 인정하고 합법화하는 것으로 보일 것이기에, 많은 국가가 경계심을 내비치고 있다.

유엔은 테러 정부의 변화를 기대하며 그런 지위를 당근으로 이용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집권 후의 인권 침해 문제들의 해결일 것이다.

예를 들어, 국제 앰네스티는 탈레반이 지난 20년 동안 획득한 인권들을 계속 해체하고 있다. 탈레반은 민간인과 항복한 정부군들을 살해했고, 인도주의적 구호물품을 차단했는데, 이는 국제법상 범죄에 해당한다. 게다가 탈레반은 여성, 표현의 자유 그리고 시민 사회를 다시 제한한다고 경고했다.”라고 금주 초에 보고했다.

탈레반은 국제적인 국가 판단 기준에 따라 통치할 마음이 없음을 보여 주고 있다. 중국을 비롯해 유엔대사가 있는 국가들 역시 유사한 기준에서 유죄이지만, 아프간의 새 지도자들은 누가 보아도 높은 수위의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탈레반이 아프간 공식 정부로 인정받으려는 노력이 저항에 부딪히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만 그들이 국제적으로 합법적인 정부가 되고 싶어 한다는 것은 좀 더 의미 있는 발전이다. 그들이 그러한 목표를 드러내는 것은 급진적인 이슬람 단체나 테러리스트들의 행동과는 다르다. 알카에다 같은 그룹들은 이슬람 방어나 최소 그들의 주장을 위해 서구 국가들을 공격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는 데 반해, 탈레반은 오랫동안 다른 목표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들에게 아프간은 지하드의 출발점이 아니라 조국이다. 수 세기 동안 탈레반에게 아프간은 조국이었다.

그들의 생각 중 많은 부분은 다른 테러리스트 집단과 일치하지만, 그들은 합법적인 조국의 책임자로 보이길 원한다. “유럽과 아시아, 기타 이슬람 국가들과 외교 관계를 맺는 것을 포함해 우리 정부를 인정하는 것이 유엔의 책임이다라고 진지하게 이야길 할 수 있는 이유이다.

세계가 그들에게 동의할 것처럼 보이지 않는 것은 그런 수준에 합당하다고 스스로의 가치를 매기는 일보다는 덜 중요한 문제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정권 강탈자 이상의 대우를 해야 한다는 데에는 어떤 생각이 들어 있을 것이다. 카타르 정부가 지적했듯이, “그들을 거부하면 분열과 반작용으로 치닫겠지만, 대화하면 열매를 거둘 수 있다.”라는 생각 말이다.

만일 탈레반이 과거 통치 방식의 재확립보다 국제적인 인정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면, 아프간인들의 상황이 개선될 수 있다고 희망해 볼 수 있다. 그러나 타협을 원치 않는 경향을 보이는 이슬람 테러 집단들과의 관계가 어떻게 될 것인지 분명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기독교인들은 그들의 변화를 위해 기도할 수 있고 기도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지 않는 것에 대해 기도하는 일은 쉽지 않으며, 그건 우리 다수의 문제이다. 이미 아프간 상황은 미국인 대다수의 집단 의식에서 희미해지기 시작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비정상적으로 나쁜 일이 생기지 않는 한 우리는 아프간 문제를 크게 고민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네 삶의 다른 부분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점 역시 타락하고 유한한 인간임을 보여 주는 측면이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완전하고 무한한 하나님을 섬긴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진다면,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집중해야 할 곳을 가리키실 것이다.

지금 하나님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볼 수 있게 도와 달라고 기도하라. 기독 목록의 맨 위에 있어야 할 사람과 장소를 떠올리게 해달라고 요청하라. 그런 다음 뒤로 물러나 하나님께서 일하실 수 있도록 침묵하라.

우리의 생각을 주도할 수 있는 권위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일상이 될 때, 우리는 기도와 세상을 바라보는 인식이 실제로 달라졌음을 알아차리기 시작할 것이다. 페이스북의 글들이 기도 요청으로 보이고 대화에 깊이가 더해질 것이다. 오랫동안 생각하지 않았던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생각하길 원하셨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가 어떻게 살고 생각하지를 주님이 책임지신다면, 날마다 새로운 차원의 목적과 의미가 생길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기꺼이 하나님께 구하지 않는 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 편집자 주- 문화사역자 짐 데니슨 박사의 9월 23일 칼럼 발췌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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