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신 씀 / 해냄 펴냄(2018)

저자는 30여 년간 정신과 의사로 활동하며 12천여 명의 속마음을 듣고 나누었다. 최근 15년은 정치인, 법조인, 기업 CEO와 임원 등 자타가 인정하는 성공한 이들의 속마음을 나누는 일을 했지만, 동시에 우리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트라우마 현장에서 피해자들과 함께했다.

국가폭력 피해자들을 돕기 위한 재단 진실의 힘에서 집단상담을 이끌었고, 해고노동자와 그 가족을 위해 심리 치유 공간 와락을 만들었다. 세월호 참사 직후 안산으로 이주해 치유공간 이웃을 만들어 피해자들의 치유에 힘썼다. 서울시와 함께하는 힐링프로젝트 누구에게나 엄마가 필요하다를 통해 시민들에게 공감의 힘을 전파하고 있다.

저자는 지금 우리 사회에는 정신과 의사나 심리상담사 등 전문가에게 의지하지 않고도 치유할 수 있는 치유법이 시급하다고 진단한다.

그래서 적정심리학이란 새로운 그릇에 손수 지어서 허기를 해결하는 집밥처럼 자신의 심리적 허기와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근본 원리를 담았다. ’적정심리학은 저자가 현장에서 수많은 사람을 살린 결정적 무기인 공감과 경계를 기본으로 하는 실전 무술 같은 치유법이다.

저자는 자격증 있는 사람이 치유자가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사람이 치유자라고 말한다.(저자 소개글 중에서)

이명수 심리기획자는 이 책을 부작용 없는 약이고 사람을 살리는 비종교적 간증이라고 비유한다. 현장과 내공을 집대성해 놓은 쉽고 전문적인 책이며, ’공감행동 지침서라고 소개한다. 이 책을 읽고 충조평판(충고, 조언, 평가, 판단)'만 안 할 수 있어도 공감의 절반은 시작된 거라고 강조한다.

이 책의 1장에서는 존재의 개별성을 무시하는 현실과 사회적 시선을 통해 오늘날 우리 모두가 아픈 이유를 들여다본다. 2장에서는 우울증 등 정신과적 진단이 남발되고 일상이 외주화되는 문제들을 제기하면서 심리적 CPR의 중요성을 환기시킨다. 3장에서는 공감에 대해 갖고 있던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고 진정으로 도움 되는 공감의 방법을 제시한다. 4장에서는 공감의 정확성을 높이는 경계 짓기를 제안한다. 5장에서는 사랑에 대한 욕구, 콤플렉스, 집단사고 등 공감을 방해하는 허들을 짚어 본다. 6장에서는 존재를 살리는 한 사람이 되기 위하여 유념해야 할 실전 치유 팁을 실례를 통해 가르쳐 준다.

저자는 모든 사람에게는 진정으로 공감받고 공감할 수 있는 한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공감의 과정에서 타인에 대한 공감 이전에 자기 보호가 우선이라고 당부한다. 자신과 자신이 아닌 것 사이에 건강한 경계를 세우고, 공감을 방해하는 허들을 넘어서라고 말한다. 진정한 공감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배워야 하는 것이며, 일방적이 아니라 쌍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본문 중에서)

- 나는 일상에서 사람들을 만날 때 요즘 마음이 어떠세요?”라는 질문을 자주 던지곤 한다. 존재 자체에 대한 주목이다. 이 질문 하나가 예상치 않게 심리적 심폐소생술(CPR)’을 시작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 질문은 심장 충격기 같은 정도의 힘을 발휘한다.

- 심폐소생술이 심장과 호흡에만 집중하듯이, 심리적 CPR라는 존재 자체에만 집중해야 한다. 그런데 어디가 라는 존재 자체인가? ‘라는 존재의 핵심이 위치한 곳은 내 감정, 내 느낌이므로, ‘의 안녕에 대한 판단은 거기에 준해서 할 때 가장 정확하다.

- “요즘 마음이 어떠세요?” 이 질문은 모든 것을 다 제치고 자연인으로서 존재 자체, 그 중에서도 존재의 핵심인 감정에 대한 주목과 안부를 묻는 질문이다. 그때부터 이야기를 내놓기 시작한다. ‘이야기는 무엇일까. 내 취향이나 기호, 견해나 신념이나 가치관이 아니고, 내 상처에 대한 이론이나 상처 자체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다. 내 존재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나 살아 있다. 감정이나 빛깔, 파동, 굴곡은 늘 달라진다. 내 상처의 내용보다 내 상처에 대한 내 태도와 느낌이 내 존재의 이야기다. 내 상처가 가 아니라, 내 상처에 대한 나의 느낌과 태도가 더 라는 말이다. 내 느낌이나 감정은 내 존재로 들어가는 문이다. 느낌을 통해 사람은 진솔한 자기 존재를 만날 수 있다. 느낌을 통해 사람은 자기 존재에 더 밀착할 수 있다.

- 누군가 고통과 상처, 갈등을 이야기할 때는 충고나 조언, 평가나 판단(충조평판)’을 하지 말아야 한다. 충조평판은 고통에 빠진 사람의 상황에서 고통을 제거하고 상황만 인식할 때 나오는 말이다. 고통을 제거하면 그 상황에 대한 팩트 대부분이 유실된다. 알지 못하는 사람이 안다고 확신하며 기어이 던지는 말은 비수일 뿐이다.

- 전문가만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내 고통에 진심으로 눈을 포개고 듣고 또 듣는 사람, 내 존재에 집중해서 묻고 또 물어 주는 사람, 대답을 채근하지 않고 먹먹하게 기다려 주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상관 없다. 그 사람이 누구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그렇게 해주는 사람이 중요한 사람이다. 한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산다

- 누군가에게 공감자가 되려는 사람은 동시에 자신의 상처도 공감받을 수 있어야 한다. 공감하는 일의 전제는 공감받는 일이다. 타인에게 집중하지만 동시에 자기의 중심을 한순간도 놓치지 않아야 한다. 공감은 본래 상호적이고 동시적인 것이다.

- 자신에 대한 성찰을 건너뛰고 타인의 마음을 공감하는 일로 넘어갈 방법은 없다. 자신에 대한 성찰이 멈추는 순간 타인에 대한 공감도 바로 멈춘다. 자기 성찰의 부재는 공감을 방해하는 허들이 된다.

- 마음과 느낌은 충조평판의 대상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존중받아야 할 존재의 고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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