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양숙(일리노이)

희생하는 자유

드레스룸에서 나오는 줄리는 큰 체구가 힘에 겨운지 거칠어진 호흡 때문에 몸을 구부린 채 잠시 숨을 고른다. 곧 있을 딸의 결혼식에 입을 드레스를 수선하러 온 줄리는 큰 체구에 마스크까지 쓰고 있어 여간 힘들어 보이지 않는다.

2차 백신 접종까지 마친 상태라 너무 힘들어하는 줄리에게 잠시 마스크를 벗으라고 권했지만 손을 내저으며 괜찮다고 한다. 

벌써 2년 가까이 코로나19 팬데믹이 계속되면서 백신 접종 후에도 변이 바이러스로 인해 다시 마스크를 쓰다보니 사람들의 피로도가 상당하다.

줄리는 거친 숨을 고른 뒤 연신 흐르는 땀을 닦아낸다. 잠시 마스크를 벗으면 좀 나을 텐데도 줄리는 나와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하거나 불안하게 하면 안 된다며 본인의 불편함을 감수한다.

서둘러 줄리의 드레스 재단을 끝내고 밖으로 나가 마스크를 벗게 하니 숨을 크게 몰아쉬는 줄리의 모습에  안타까운 마음과 고마운 마음이 함께했다.

타인의 유익을 위한, 줄리의 희생하는 자유가 아름답다.

절제하는 자유!

세탁물을 들고 들어오다가 다시 돌아서 나간 토니는 차에서 잊어버린 마스크를 찾아 쓰고 들어온다. 씨~익 웃으며 들어온 토니는 매번 마스크 쓰는 걸 잊어버리는 자신이 한심한지 머리를 쥐어박는다.

이 모습! 우리 모두의 모습이리라.

“내가 썼으니 한 번쯤은 봐줄게.”라고 말해도 투덜거릴지언정 반드시 다시 나가 마스크를 쓰고 들어온다.

학교 선생님인 토니는 본인이 안 지키면 학생들에게도 마스크를 쓰라고 할 수 없다면서 성가신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비록 마스크로 인해 갑갑하긴 해도 온라인 수업때보다 아이들을 보면서 수업하는 게 훨씬 행복하단다. 마스크 때문에 새 학기가 되어 바뀐 학생들의 얼굴을 익히는 게 힘들다고 한다. 

이해가 된다. 나도 새로운 손님의 얼굴을 기억하기가 쉽지 않으니까. 학생들과 이웃의 안전을 위해  자기의 자유를 절제하는 토니 선생님이 멋져 보인다.

위태로운 자유!

벌써 몇번째 경고를 무시하는 건가? 

‘Please, wear a face mask. Thank you!’라는 사인을 가리키며 마스크를 써달라고 부탁하지만, 피터는 백신접종을 마쳤으니 걱정 말라며 짜증을 낸다. 반복된 경고를 받아서인지 피터는 마스크를 써달라는 사인에 화를 낸다. 

마침내 피터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도 가짜이고, 백신도 가짜이고, 제약회사들이 돈을 벌기 위해 꾸며낸 거짓 선동이라며 분노를 쏟아내고 한참 훈계하더니 다시는 안 올 것처럼 가버린다.

자기의 자유를 확대하기 위해 이웃의 생명을 위협하는 건 위험한 자유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씁쓸하다. 어쩌면 코로나19가 이기적이었던 “나의 삶” 에서 “우리의 삶”으로 초대하는 것 아닐까?

나를 위해 썼던 마스크를 너를 위해 쓰고, 나아가 우리를 위해 써서 “우리 공동체” 를 만들어내는  기막힌 신의 한 수가 되길 기대해 본다.  

“네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태도가 진정한 자유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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