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성환 목사(PMI 바울사역원 대표)

마트에서 물건을 사고 있었던 나는 휴대폰 진동 소리에 전화기를 들여다보았다. 모르는 번호였다. 여러분이라면 받겠는가? 나는 이름이 저장되지 않은 번호의 전화는 받지 않는다. 열에 아홉은 스팸 전화이기 때문이다. 잘못 걸려온 전화인 경우도 많다. 꼭 필요한 전화인 경우도 있지 않겠느냐고? 그런 경우에는 메시지를 남겨 놓기에, 나중에 리턴콜을 하는 방식으로 소통한다. 

그런데 그날은 괜히, 그냥 괜히 전화를 받았다. 지금도 의아하다. 전화기를 귀에 갖다 댔지만 입은 한 박자 늦게 열렸다. 헤엘~로우? 상대방은 DMV의 직원이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자신이 내 운전면허증과 크레딧 카드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정말? 부랴부랴 주머니를 열어 확인해 보았다. 진짜 없었다. 어찌된 일이지? 직원은 어떤 사람이 주차장에서 주웠다고 하면서 데스크에 놓고 갔다고 말했다. 일단 고맙다, 알았다 하고는 당장 달려가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희미하게 떠오르는 불과 몇분 전의 내 행적. 자동차 번호판 스티커를 새로 받아 DMV 주차장에서 바로 붙이는 작업을 했다. 그때 한 손에 들고 있었던 크레딧 카드와 운전면허증을 땅바닥에 놓았고 스티커를 붙인 후 그냥 차를 타고 현장을 떠났던 것이다. 30분 만에 다시 만난 직원에게 민망한 표정으로 다가갔다. 전화를 받을 때까지만 해도 크레딧 카드를 잃어버렸는지 몰랐다고 말하자, 직원은 환하게 웃으며 정말 럭키한 하루라고 말했다. 안도감과 기쁨보다는 부끄러움이 더 크게 느껴졌다. 잃어버렸는지도 모르고 태연히 다른 일을 하고 있는 카드의 주인공을 위해 데스크에 가져다 준 그 사람이 너무나 고마웠다. 

혹시 카드를 가져다 준 사람의 신상 정보가 있느냐고 물으니 아무 말 없이 주고만 갔단다. 일부러 남의 차 문을 열고 지갑을 훔치는 사람도 있는데(실제로 두어 달 전 집의 드라이브 웨이에서 세워둔 차 안에 두었던 지갑을 ‘도난’당한 적이 있다. 내가 신고하기 전에 두 곳에서 카드를 사용했다) 이런 사람은 정말이지 복을 더블로 받아야 한다. 갈수록 멍청해지는 듯한 나를 자책하며 그날의 연결 고리들을 되짚어 보았다. 만약 주차장에 떨어져 있는 카드를 주운 사람이 그냥 가져갔다면, 가지고 가서 사용했으면 어찌 되었을까? 

더 신기하고 이해되지 않는 것은 전화를 받은 나 자신이었다. 소지품을 잃어버린 나는 이해가 되는데 모르는 번호의 전화를 받은 나는 지금도 알쏭달쏭하다. 평소처럼 전화를 받지 않았다면, 이후의 사태 해결을 위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허비했을 것이다. 정신적 스트레스는 또 얼마나 컸을까? 왜 그날따라 전화를 받았지? 이런 걸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증거라고 간증 또는 큐티 나눔을 해도 될까? 성령님의 역사? 

살다 보면 평소의 생활 패턴이나 예상 또는 노력과 상관없이 일어나는 일들이 있다. 우연이란 말로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그 일은 어떤 경우엔 좋은 일이 되고, 어떤 경우에는 대참사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무계획적이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일의 발생이라는 점에서 우연은 무질서 또는 혼돈의 일부이다. 그런데 그 우연의 사건이 어떤 질서와 과정과 계획과 연결되면 한 사람의 인생이 바뀌고 나라의 역사가 바뀌는 계기가 된다. 아직까지 과학계는 우연의 원인을 다 밝혀내지 못했다. 종교계는 그것을 신의 섭리라고 말하고 믿는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연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 우연에 대처하는 일일 것이다. 우연에 인생을 모두 거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도박과도 같다. 반대로 우연을 무시하고 부정하면서, 모든 것이 계획한 대로, 예상대로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교만한 일이다. 

우연의 존재와 가능성을 인정하되 계획과 경험의 법칙에 성실하게 순응하며 살아가는 것. 아니 순서를 바꾸어, 계획과 경험의 법칙에 성실하게 순응하되 우연의 존재와 가능성을 인정하면서 살아가는 것.  이것이 불완전한 인간의 최선의 삶 아닐까? 비율은 어느 정도가 좋을까? 50: 50? 아니면 99:1? 

우연이 존재한다는 것은 우리가 결국 세상을 다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시에 불확실하고 어두운 미래를 바라보면서도, 우리가 예기치 못한 일을 경험하고 다채로운 미래의 가능성에 희망을 두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도 의미한다. 그 우연에 마음을 열고 하루를 시작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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