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의 양들과 함께 사는 양재철

세상 사람들은 성공이냐 실패냐? 크냐 작으냐? 높으냐 낮으냐? 금상이냐 동상이냐?에 관심을 갖는다. 그러나 성경은 아버지의 뜻이냐 내 뜻이냐?를 묻는다.
 
야고보는 3년이나 예수님의 수제자로 훈련을 받고도 선교 한 번 제대로 못하고 죽었으니, 실패한 삶 아닐까 하는 세상의 성공 논리에 오래 사로잡혀 있었다. 베드로는 감옥에 있었을 때, 천사가 와서 기적적으로 탈출시켜 주었으니, 베드로의 믿음은 크고 야고보의 믿음은 작다고 세상의 성공 논리대로 생각했다.

한편‘왜 하나님은 성령 충만한 스데반과 수제자 중 한 명인 야고보를 먼저 데려 가셨을까?’하는 의문이 풀리지 않았다.

어느 날 “스데반과 야고보의 순교는 초대 교회의 핍박 시대와 복음을 전하다가 핍박 받고 순교 당하던 교회 시대에 많은 순교자들의 초석이 되었고, 담대하게 순교하는 본이 되었다.”라는 설교를 들었다. 그때 야고보는 믿음이 없고, 베드로만 믿음이 강한 것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하나님의 섭리요 뜻이었던 것이다. 

의사 누가는 데오빌로 각하 한 사람을 위하여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썼다고 한다(행 1:1). 한 사람을 전도하려고 이렇게 많은 분량의 편지를 썼다니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은, 한 영혼을 위하여 그런 비효율적인 일을 한 누가를 하나님은 2,000년이 흐른 지금까지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읽으면서 은혜 받도록, 많은 사람들이 순교하는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성경 저자 중 한 사람으로 만드셨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비효율적으로 일했다고 하시지 않고, 한 영혼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과 수고를 정말 많은 영혼을 위한 성경으로 만들어 주셨다. 야고보처럼 전도 한 번 제대로 못하고 죽은 분, 누가와 같이 비효율적인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분도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하나님 나라 건설에 크게 쓰임 받은 분들이라는 걸 알아야겠다.

오늘도 내 기준으로 초라해 보이는 사역을 내 하나님의 기준으로 보면서, 낙심하지 말고 감사하면서 살아가자고 다짐해 본다.

“그 때에 헤롯 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에서 몇 사람을 해하려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행 12:1-2).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행 1:1-2)

“너희 중에 다른 신을 두지 말며 이방 신에게 절하지 말지어다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시 8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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