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22:1-2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 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하지 아니하오나 응답하지 아니하시나이다”(시 22:1-2).

한 해가 저무는 세밑이면 늘 듣는 말이지만, 올해는 “다사다난(多事多難)”이란 말이 유난히도 실감납니다. 한 마디로 2021년은 특별히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러운 한 해였습니다.

그칠 줄 모르는 테러와 내전의 와중에서 쏟아지는 난민 문제로 국제사회가 몸살을 앓았습니다. 미중 간의 패권 경쟁이 격해지며 세계의 정치 질서가 크게 흔들렸습니다. 북한의 끊임없는 핵도발 위협으로 한반도에 흐르는 긴장감은 누그러질 줄을 몰랐습니다. 지진과 태풍, 화산 폭발 등 천재지변의 빈번한 발생과 설상가상으로 코로나19 전염병이 온 세상에 창궐하는 팬데믹 현상에까지 이르러 인류를 불안과 공포에 몰아넣었습니다. 

이미 코로나19의 침범으로 사랑하는 가족을 잃어버린 가정도 있습니다. 난치의 병마와 싸우며 병상에서 연말을 맞이하는 이도 있습니다. 벌여 놓은 사업에 전심전력했으나 누적된 적자 결산서를 받아든 이도 있습니다. 

눈앞이 캄캄해지는 좌절과 실의의 경험으로 이어진 한 해였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시편 22편 1절 말씀이 우리 입에서 새어나오는 비명으로 들립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그런데 이 시편의 처절한 비명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마 27:46). 히브리어와 아람어로 된 성경 원문인데, 엘리 엘리는 히브리어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이란 뜻이고 “라마 사박다니”는 아람어로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란 뜻입니다. 

예수님 당시 히브리어는 종교 용어였고 아람어는 보통 유대인의 생활 용어였습니다. 그러므로 “엘리 엘리”는 하나님을 향해 하신 말씀이요, “라마 사박다니”는 보통 사람이 다 알아듣도록 하신 말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대단히 중요한 몇 가지 의미를 발견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우리 인간과 똑같이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캄캄절벽 같은 좌절의 순간을 경험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마치 우리들처럼 “하나님, 어디 계십니까?”하고 울부짖으셨습니다. “라마 사박다니”라고 모든 사람이 알아듣게 부르짖으셨습니다. 지도적 위치에 있는 사람은 자신의 약점이 노출되는 것을 지극히 꺼립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이 얼마나 약해졌는가를 숨김없이 공개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경험하는 좌절과 절망을 잘 아시는 분이 되었음을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이 전혀 보이지 않는 캄캄절벽 속에서도 “엘리 엘리”라고 하나님을 상대로 말씀하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 부재의 경험 속에서도 하나님께 부르짖는다는 것은, 어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만이 피난처요 구원이요 도움이심을 믿는 믿음이 유지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인간은 좌절하면 하나님을 찾는 일마저 중단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캄캄할수록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그에게 부르짖어야 합니다. 하나님만이 온전한 피난처요 도움이요 구원이라는 절대 진리는 불변이기 때문입니다. 

구소련의 대표적인 반체제 작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이 추방당해 영국에 머물 때, 뜻깊은 말을 했습니다. 그는 세계가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고 촉구하면서 하나님이야말로 참 문명이라고 갈파했습니다. 솔제니친은 15세 때 마르크시즘에 도취되어 철저한 공산주의자가 되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점점 나이가 들면서 공산주의의 오류를 발견하고 글을 써서 비판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그는 소련 공산당에게 체포되어 시베리아 유형 7년 언도를 받았습니다. 유형 생활은 문자 그대로 지옥과 같았습니다. 그는 병이 깊어져 소생의 가망이 없게 되었습니다. 캄캄절벽을 만난 것입니다. 드디어 그는 십자가상의 그리스도와 같이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 어디 계십니까?” 그리고 끝내 그와 함께 계신 하나님을 만났다고 고백합니다. 

우리가 가장 절망적인 곤경에 처할 때가 바로 하나님께서 가장 가까이 계시는 때임을 알게 됩니다. 모든 것을 다 빼앗기고 오직 하나님께 매달리는 것만이 유일한 피난처임을 깨닫게 될 때, 그때에 바로 절망의 장벽에 돌파구가 열리는 것을 솔제니친은 경험한 것입니다. 

우리가 캄캄절벽 앞에서 절망할 때 하나님은 어디 계실까요? 하나님은 영광의 보좌에 좌정해 계시지 않고 일어나 우리 가운데 내려오시되, 십자가에 달리신 모습으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부르짖고 계십니다. 절망의 장벽에 돌파구를 여시고 구원의 하나님께로 통하는 고속도로를 내시기 위해 친히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좌절의 골짜기를 통과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지금 어디 계실까요? 하나님은 우리의 베들레헴 마구간에 오셨고, 우리의 갈보리 고난의 현장까지 오셨습니다. 하나님이 어디 계실까요? 보이지 않는 그때에도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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