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기훈 장로(민영 소망교정시설 교도관)

올 가을에는 은근히 뿌듯한 기분이 이어지고 있다. 자기 만족이다. 여름에도 틈틈이 책을 읽었지만 서늘한 가을 기운이 스며들 무렵, 책 읽는 재미가 한층 더했다. 한 달에 두 권을 읽어야지, 목표로 삼았던 게 그 배는 되지 싶다. 몇 년 전부터 나는 새해가 되면 생활 목표를 기록하여 수첩 표지 안쪽에 꽂아 놓고 있다. 제목이 그럴 듯하다. 0000,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위하여〉이.

그 밑에 구체적인 생활 목표와 성경 구절도 써 놓았다. 예닐곱 개나 되는 생활 목표 가운데 성경 2(개정 개역, 현대인의 성경)’ / ‘2*12=24권 이상 읽기등이 있다. 하지만 성경 읽기는 의무처럼 되었고 이런저런 핑계로 책 읽기도 소홀해지곤 하였다. 전체 1,189장으로 이루어진 성경도 하루에 3, 주일에 5장을 읽으면 일독하게 되는데, 올해는 꾸물거리다가 그 진도를 놓치고 말았다.

급기야 9월 들어 10, 20장 읽으며 속도를 내었더니 연말이 오기 전 넉넉하게 일독할 수 있을 것 같다. 매년 그렇게 성경을 읽었더니 소망공동체에 온 이후만 해도 열 번 넘게 읽었다. 하긴 군대 시절 신약과 시편이 붙은 포켓 성경은 두 달에 한 번꼴로 읽어서 수십 번 읽은 기록이 남아 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계획대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결국 모든 일이 유익하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8:28, 현대인의 성경).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37:4, 개정 개역).

이 두 말씀은 내가 생활 목표 가운데 크게 써놓고 자주 묵상하는 성경 구절이다.

이제 읽은 책 이야기를 해야겠다. 지난 여름에 읽었던 이어령 선생의 저서 지성에서 영성으로는 초신자가 아니어도 신앙적으로 깊이 되새기게 하는 유익이 컸다. 사실 이 책은 나온 지 꽤 오래되었다. 이 책을 꼭 읽어 봐야지 하면서 입때껏 미루고 있었던 것이다. 마침내 일독을 하였고 느낌은 명증했다.

한 시대 인문학적 지성이 탁월한 저자는 지성과 영성을 겸비한 학자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흔히 간증이란 명목 아래 신앙적 체험이 대부분인 다른 기독교 서적에 비하여 이 책은 문학적 영감 속에 생생한 하나님의 비밀을 드러내었다. 불치병에 걸린 딸을 통하여 인본주의 학자가 하나님께 인도되면서 세례를 받고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는 과정이 특유의 해박하고 유려한 문체로 기록되었다. 한 번 더 읽고 이해를 넓혀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있다.

가을이 깊어갈 무렵, 좋아하는 월간 수필 잡지와 시집은 물론 글쓰기 관련 책 네 권, 또 다른 책들을 신나게 읽었다. 그중에서도 인문학을 하나님께 1·2·3은 두드러졌다. ()마다 300쪽이 넘는 두꺼운 책이어서 단숨에 읽지는 못했다. 저자는 이미 기독교 방송이나 언론에서 많이 알려진 한재욱 목사이다. 요즘도 하루에 1권 이상의 책을 읽으면서 믿음의 시선으로 인문학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그의 통찰력이 대단하게 다가왔다. 문학뿐 아니라 역사, 철학, 예술에 이르기까지 크리스천이 지적인 오류에 빠지기 쉬운 함정을 명쾌하게 풀어내어 성경적으로 깨닫게 하였다. 독자들에게 인문학적 영성을 심어 주기에 넉넉한 영감(靈感)의 산물이었다.

일독을 권유한다. 짧은 시 한 편을 풀어가는 예를 소개한다. 유명한 나태주 시인의 풀꽃을 그는 이렇게 감상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시인 풀꽃전문)

가까이 자세히, 오래 보아야 보이는 세계가 있다. 세상은 작고 하찮아 보이는 것에 대해 냉정하다. 낮고 헐한 것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래서 이런 것들을 가까이 보고 자세히 보고 오래 보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땅에 내려오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충분히 가까이 오셨던 분이다. 우리와 함께 울고 웃으면서, 우리의 연약함을 누구보다도 자세히 오래 보셨다.” (한재욱, 인문학을 하나님께 3, p.79)

나에게는 사십 년 가까이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자줏빛 책갈피가 있다. 그해 종로 서점에서 판촉물로 끼워 준 것을 예사롭게 여기지 않고 보관해 온 것이다. 책갈피에 쓰인 경구(警句)가 뜨겁다.

사람들은 밭에 거름은 줄 줄 알면서 자기 마음에 거름 줄 줄은 모른다.” (산이 높으면 마땅히 우러러볼 일이다중에서, 東文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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