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1:13-16

허영진 목사(revhuh@gmail.com)

새해를 맞이합니다. 왜 새해입니까? 왜 첫날입니까? 사실은 새해 첫날도 묵은해의 마지막 날과 꼭 같은 날입니다.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다만 사람이 마음으로 새 결심을 하고 그 결심대로 살기를 시작한다는 의미에서 새해라 부르고 첫날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옳은 결심을 못하고, 결심했어도 결심대로 살지 못한다면 새해도 첫날도 무의미한 말이 되고 맙니다.

어떤 책에 이런 문구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첫째요, 마지막이다. 그러므로 내가 하나님을 찾든지 하나님이 나를 찾아오시든지 해야지, 그렇지 않는 한 나는 시작한 것도, 끝난 것도 아니다.” 그런데 요즈음 사람들은 이 말을 다르게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돈이 첫째요, 마지막이다. 그러므로 내가 돈을 찾든지 돈이 나를 찾아오든지 해야지, 그렇지 않는 한 나는 시작한 것도 아니고 끝난 것도 아니다.”

예수님은 돈의 양면성을 다 보셨습니다. 돈의 부정적인 면으로, 돈과 소유가 인생을 파괴할 수도 있다고 경고하셨습니다. 성경에 이런 말씀이 적어도 열다섯 차례 정도 나옵니다. 예수님과 부자 청년의 대화는 대표적인 예라 하겠습니다.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가라사대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막 10:21). 그리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재물이 있는 자는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막 10:24,25). 제자들은 이 말씀을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오늘의 그리스도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워싱턴 D. C.에 있는 국립 화랑에 16세기 화가 보쉬의 작품이 있습니다. 한 사람이 병상에서 죽어가는 모습의 그림입니다. 침상 한 옆에는 천사가 그 사람의 시선을 그리스도에게 향하게 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다른 한쪽에는 악마가 돈주머니를 보여 주며 그 영혼을 꾀고 있습니다. 자, 둘 중에 누가 이길까요? 이 그림은 어찌 보면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오늘날 인간을 괴롭히는 난치병들을 퇴치하려고 노력하는 많은 기관과 단체들이 있습니다. 심장병, 각종 암, 에이즈, 알츠하이머,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에 이르기까지 질병과의 싸움은 치열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러나 치명적인 또 하나의 질병, 이른바 돈병을 퇴치하기 위한 연구 기관은 없습니다. 돈 사랑이야말로 우리를 장애인으로 만들 수 있고, 무력하게 할 수 있고 심지어 파멸에 이르게 할 수 있는 난치병입니다. 돈병은 좌절과 불안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육체적 질병을 유발할 수도 있습니다. 결혼을 깨뜨리고 가정을 파탄시킬 수 있습니다. 돈병은 살인을 하게도 만들고 자살을 하게도 만듭니다.

의사들의 임상경험에 의하면, 돈과 재물에 대한 환자의 태도가 병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 치료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한 환자가 정신과 의사에게 말했습니다. “저는 이제야 돈이 참 행복을 가져다줄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이미 돈을 5백만 불이나 벌었습니다. 이제는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우리가 이 말을 들었다면 아마 이런 대꾸를 할지 모릅니다. “5백만 불 내게 주시오. 내가 행복을 찾아 보일 테니까.”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눅 12:15).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새해에 우리 자신에 대해 먼저 발견해야 할 일은 우리가 예수님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새해 결심의 참 기초가 되어야 합니다. 새 결심의 시간은 예수님을 다시 생각할 최적의 시간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벧전 1:16). 우리는 이 시대의 돈 문화에 너무나 깊이 물들어 있기 때문에 거룩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당신 자녀들의 존재 상태라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어떤 사업가가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 중에서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만 있어도 큰 일을 이룰 수 있다는 구절을 발견했습니다. 장사꾼은 옳다구나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장사에 이용해 먹기로 했습니다. 금으로 테를 두른 작은 수정 구슬 안에 진짜 겨자 씨 한 알을 넣은 장신구를 보석상에서 팔기로 한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광고를 해댔습니다. “신앙이 다시 유행하고 있습니다. 겨자씨 수정구슬은 팔찌로도 우아하고 목걸이로 이용해도 매력 만점입니다.”

그리스도는 최신 패션을 가르쳐 주러 오신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 자신이 변해야 세상도 변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려고 오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가던 길을 어떻게 하면 더 평탄하게 할 수 있는가를 알려고 애씁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완전히 돌아서서 전혀 새로운 길을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더 좋아 보이는 것을 포기하고 어리석어 보이는 것을 붙잡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원수를 십자가에 못 박지 말고 자신의 저속한 자아를 못 박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심령의 모든 더러운 것을 깨끗케 하고, 증오를 미워하고, 우리의 영혼을 자기 중심에서 타인 중심으로 바꾸고, 탐심과 모든 형태의 사욕을 버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는 인생의 우선순위 첫자리를 돈에게 주기를 거부하고 거룩의 상태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는 사랑을 믿으려면 거룩의 상태를 회복해야 한다고 권고하십니다.

심령 깊은 데서부터 이 결단을 하시기 바랍니다. 이 결단을 한 사람은 이렇게 고백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선물이 제게는 너무 소중합니다. 저는 제 모든 삶을 통틀어 그 사랑에 응답하겠습니다. 제 시간, 제 재능, 제 감정, 제 마음, 제 몸, 그리고 제 돈까지 모두 이웃을 섬김으로 하나님께 드리겠사오니 성령 충만의 세례를 베풀어주옵소서. 아멘~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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